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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영화, 몰락하고 있다
위기의 한국영화, 몰락하고 있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5.0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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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시대와 관객의 변화 읽지 못하는 영화산업

□ 영화 「넘버3」

한 편의 영화가 천 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한 명의 영화감독이 시대를 대표하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어 언론매체를 장악하는 등 한국영화의 새로운 전성기가 도래했다고 입을 모았던 것이 바로 엊그제의 일인 것만 같은데, 어느새 한국 영화의 위기, 한국영화의 침체 혹은 한국영화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실정이 됐다. 10년도 되지 않은 그 짧은 기간 동안 과연 한국영화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어떤 산업도 지속적인 성장만을 거듭하지는 못하며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에 가까운 일이다. 영화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의 불황기나 침체기를 겪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한국영화 제 2의 전성기라 불리던 90년대 이후에도 계속해서 위기론이 등장했었지만 그때마다 그 위기 상황들을 잘 극복해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은 과거의 사례들을 확인하며 안심하기에는 곤란한 몇 가지의 위험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몰락의 징후를 보여주는 구조적 요인들
1990년대 나타났던 한국영화산업의 비상은 새로이 영화계에 유입된 인력들이 새롭게 영화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한 자본과 결합한 결과였다. 기존의 도제식 교육을 받은 인력이 아니라 대학의 정식 영화교육을 받거나 아니면 대학의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영화를 익혔던 새로운 인력들이 영화계에 들어오고 이들이 새롭게 영화계에 진입한 대기업의 자본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IMF를 계기로 대기업 자본이 철수하고, 뒤 이어 창투사로 대표되는 금융자본과,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와 같은 대기업이 새롭게 영화계에 진입한다. 이들의 일시적인 집중투자로 인해 한국영화계는 순간적인 풍요의 시기를 누렸다. 안정적 투자를 바탕으로 많은 영화들이 제작됐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의 수익률을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대다수 금융자본들은 영화에서 철수하고, 후발 대기업은 보다 선별적인 투자로 돌아섬에 따라 영화에 투자되는 자본이 급감하게 됐다. 문화의 전 영역으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가는 이동통신사들이 새로운 투자자들로 부각되고 있지만 아직은 그 투자가 전폭적이거나 대규모로 확대된 것은 아니다. 현재의 상황은 기존의 투자자들은 이미 철수했거나 위축된 상황에 새로운 투자자는 아직 시장진입을 주저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한국영화의 수익률 감소이다. 2006년도의 경우 총 108편의 개봉작 중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영화는 22편, 2007년의 경우는 총 112편의 개봉작 중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영화는 13편에 불과하다. 영화산업이 기본적으로 고위험고수익 사업이기 때문에 투자성공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현재와 같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영화가 20%를 밑도는 상황은 성공적인 투자를 유치할 수 없는 조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한국영화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의 첫 번째 요인인 안정적인 투자 자금원 확보의 실패라면, 그 두 번째 요인은 스크린쿼터제의 무력화다. 스크린쿼터제는 극장에 걸리는 한국영화의 최소 상영일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로서 모든 극장에서 전체 상영일수의 40%, 즉 146일 동안 의무적으로 한국영화를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극장은 영화라는 문화상품이 1차적으로 판매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고(미국의 경우, 한 편의 영화가 올리는 총 수익에서 극장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가 채 안된다. 한국 영화의 경우 그 비율은 90%가 넘는다. 극장에서 관객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면 나머지 창구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 힘들어진다는 점에서 극장수입은 단순한 퍼센티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극장의 수는 제한적이며 강력한 자금력에 기반을 둔 배급사에 거의 종속돼 있다는 점에서 한 영화의 흥행과 개봉의 사활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스크린 확보는 단순히 영화의 질이나 관객의 선택과 같은 작품 내적인 요소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배급과 투자분야에서 이뤄지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2007년 한미 FTA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일수를 73일까지 줄임으로써 사실상 스크린쿼터제가 보장하던 한국영화의 다양성 확보와 상영기회보장은 사라지게 됐다. 투자/배급사의 힘의 논리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대형 한국영화들은 여전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상대할 수 있는 대규모의 개봉과 홍보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들을 제외한 소규모의 영화들은 스크린을 확보할 기회조차 얻기 힘든 상황이 됐다. 스크린쿼터제의 무력화는 다양한 소규모의 한국영화가 상영될 기회를 급감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다양한 소규모의 한국영화가 제작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의 감소와 더불어 스크린쿼터제도의 무력화는 결국 1)한국영화 제작 편수의 급감, 2)배급과 홍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초대형 영화로 투자금액 집중, 3)한국영화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영화 인력과 기획의 고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맹목적인 재생산이 미학 부재 초래


1990년대 들어서 한국영화산업의 비약적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영화들은 작가주의 영화들이 아니라 「결혼이야기」와 같은 상업적 장르영화들이었다. 기획영화라는 이름이 붙었던 이 장르영화들은 서사나 표현방식에서 관습적 요소들을 차용한다는 점에서는 그리 새로운 영화는 아니었다. 그 새로움은 장르가 아니라 기존의 장르들을 동시대의 관객들의 호흡에 맞도록 변형시킨 치밀한 준비에서 비롯됐다. 할리우드 영화로 친숙해진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우리의 현실에 맞도록 변형시키고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게끔 섬세하게 조율함으로써 장르라는 관습적인 요소가 현실의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현재 한국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들로 꼽히는 요소들을 보자면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하는 비슷한 소재들의 영화와 졸속으로 기획된 영화들의 등장이다. 첫 번째 요소는 장르화에 따른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영화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그렇게 부정적이진 않다. 특정한 유형의 영화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것이 관객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그 영화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들이 현실의 쟁점들을 우회적이거나 간접적으로라도 다루고 있으며, 한 국영화산업이 패턴화된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 정도의 제작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문제는 과잉투자 시기에 반복적인 졸속제작이 이뤄졌고 그 결과 창의적인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저변을 확대시키지 않은 채 현재의 능력을 낭비해버렸다는 점이다. 변화하는 관객들의 욕구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관습적인 요소들을 표피적으로 나열함으로써 한국영화들에 대한 관객들의 호의를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조폭코미디라 불리는 일군의 영화들일 것이다.

조폭코미디의 효시로 불리는 영화는 송능한 감독의 「넘버3」(1997)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는 3류인생들의 분투를 조폭이라는 소재를 차용해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허위의식과 배금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함으로써 할리우드 풍의 장르영화들이 담아내지 못했던 풍자의식과 비판을 잘 보여준다. 이 영화의 성공이후 웃음이라는 코드로 조폭을 다루는 영화들이 줄지어 나왔지만, 웃음과 조폭이 보여주는 폭력성만이 반복되며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기 보다는 욕설과 폭력과 과장된 웃음이라는 관습적인 표현만을 반복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조폭이라는 소재를 반복적으로 다루거나 희화화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무런 반성 없이 그리고 새로운 가치나 관점의 제시 없이 맹목적으로 재생산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보여주듯이 현재의 한국영화가 처한 미학적인 문제는 특정한 소재의 반복이나 상업성의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다양하게 변용시키고 현재화해 시대와 관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다.

투자/제작/배급의 환경이 한국영화산업에 불리한 쪽으로 계속 변화해가며, 영화계 내부에서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획기적인 시도나 변화의 움직임이 아직은 본격화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기는 힘든 실정이다. 외부적인 조건이 단시일 내에 좋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결국 위기의 극복은 내적인 변화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과거의 사례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연구에 바탕을 둔 치밀한 기획, 그리고 개별 창작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일과 같은 영화계 내부의 변화야말로 지금의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병철/동의대·영화학

필자는 중앙대에서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나타난 한국적 특수성에 대한 연구’ 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빛과 그늘』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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