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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건 인내와 노력
지금 필요한 건 인내와 노력
  • 교수신문
  • 승인 2008.05.0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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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남북한 학술 교류의 한계와 과제

최근과 달리,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학술회의를 통해 남북한 학자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북한 학자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북한 학자들을 만나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촉각을 세웠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근해 대화를 더 나눠보는게 참석자 대부분의 소망이었다. 그러나 우리 기대보다 그들은 그리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기대가 아쉬움으로 때로는 실망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았다.

남북한 학술교류 초기 단계인 1990년대 초, 남북간 학술교류는 주로 중국을 비롯한 제3국을 접촉 통로로 활용했다. 이후 남북한 직접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기관과 단체 간의 직접 왕래가 이뤄지고 있다. 개최 지역도 북한 평양이나 금강산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남한에서 열리는 경우도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학술교류는 빈도나 참가자 수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고려학회와 중국 연변대학은 남북한 학술교류 추진 초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두 기관은 남북 학자들이 만날 기회를 만드는 데 일찍부터 참여,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 1993년부터 총 8차에 걸쳐 오사카, 북경, 하와이, 심양, 런던 등지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북한 학자들이 참석해 남북한을 비롯, 세계 각국 한국학 학자들이 공동 학술토론을 가진다. 

또 연변대학 민족연구원은 중국의 조선족 문화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해 북한과의 오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남한과 북한 학자들 간 중개 역할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 조선사회과학자협회가 참여하는 남북한 공동학술회의는 총 19회에 걸쳐 추진됐다. 그 동안 다룬 주제는 언어, 역사, 문학, 예술, 교육 등으로 다양하다. 또 남한의 여러 단체, 기관이 참여해 북한의 사회과학원을 비롯 대학, 연구소 전문가들이 참여한 공동학술회의도 이어졌다.

남북한 학술교류의 한계와 과제

남북한 학술회의는 학자, 전문가들이 각 분야에서 학문 연구 현황과 성과를 이해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중요한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남북한 공동의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교류활동을 통해 상호이해를 도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목적과 기대가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학술회의의 목적은 우리 모두가 기대하고 염원하는 남북한 학술회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학술회의에 또 다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북한은 학술교류에 대해 두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학술교류를 통해 북한의 이념과 체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학술회의의 대가로 물질적인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반면 남한 학자들은 학술교류를 통해 북한 학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한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현실을 북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은연중에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학술회의에 대해 남북한 상호간 기대와 요구가 다른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남북한 학술회의는 아직 학술적인 토론의 장면이 되기에는 한계가 많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 학술회의에서는 남북한 학술적인 관점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남북한 학술회의에서 질의응답이나 충분한 토론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북한 학자들은 남한 학자들이 발표하는 논문에 정치적 관점이 개입돼 있다고 보고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남북한 학술교류는 지속돼야 하며, 이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몇 가지 과제를 적어 본다.

한 숟갈에 배부를 수 없다


첫째, 남북한 학술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단 한 번의 학술회의나 방문으로 북한을 전체적으로 이해한다거나 성과를 거둔다는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접촉하고 교류왕래하면서 이해의 폭을 확대하고, 친숙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다양한 주제로 학술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학술적인 간격을 좁혀가기 때문이다.
둘째, 학술회의에서 토론과 논쟁은 어찌됐건 간에 중요하다. 서로간 관점의 차이, 이해의 폭이 좁아서 생기는 오해로 때로는 반발하고, 퇴장하거나 여러 가지 형태로 문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상황을 대화로 절충하고 타협해 나가는 절차 또한 중요한 경험이다. 남북간 이질성을 극복해 나가는 데 필요한 훈련 과정이다.

셋째, 국제기구와 외국도 북한과의 협력 사업을 활발하게 진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UN, EU, UNESCO, UNICEF 등 많은 국제기구들이 북한과의 학술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거나 계획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EU의 전략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의 경제사회 개발을 목표로 정부 관리와 전문가 연수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유네스코와 유니세프는 교과서용지와 인쇄기, 학교비품 지원, 교육과정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남한과의 직접적인 교류나 지원에는 신중하지만 국제기구나 제3국을 경유하는 교류협력 사업은 잘 활용하는 편이다.

한만길 / 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위원

필자는 강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육개발원 통일교육연구팀장과 교육정책연구실장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통일시대 북한 교육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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