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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실리주의’ 표방 … IT·BT 인재양성 강조
‘교육 실리주의’ 표방 … IT·BT 인재양성 강조
  • 교수신문
  • 승인 2008.04.2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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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최근 북한 대학교육의 변화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교육 부문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육 인프라 파괴, 출석률 저하, 교육의 질 저하, 교사의 권위 실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2000년대 들어 ‘교육에서의 실리주의’라는 일종의 발전교육론이 교육 부문의 핵심 전략으로 채택됐다. 그 일환으로 과학기술교육, 특히 IT분야의 인재 양성, 중등 및 고등교육에서 영재의 발굴과 육성, 교육의 질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들이 취해졌다. 교육 정상화와 개혁을 위한 노력은 특히 고등교육 부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고등교육체계는 ‘정규 고등교육 체계’와 ‘일하면서 배우는 고등교육 체계’로 구분된다. 정규고등교육체계로는 4~6년제의 종합대학과 단과대학, 2~3년제 전문학교가 있다. 일하면서 배우는 고등교육 체계로는 공장, 농장 등에 부설된 공장대학, 농장대학, 어장대학과 일반대학의 야간부 및 통신부, 방송통신교육기관이 있다. 또한 남한의 대학원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으로 박사원이 있다. 북한의 대학은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고려성균관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이 단과대학이고, 학과도 상당히 세분화돼 있다. 현재 북한의 대학은 320여개 정도, 대학생은 31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남한과 비교하면 대학은 4분의1 정도, 대학생은 약 10분의 1 정도의 규모이다.

북한 대학 320여개, 대학생은 31만명


최근 북한의 대학에서는 교육개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광범위한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IT, BT 등 첨단과학기술 관련 학과의 증설이 두드러지고 이 분야의 인재 양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경제 각 부문의 정보화, 자동화 추세를 반영해 컴퓨터와 기계자동화 관련 단과대학이 늘어나고 있다. 1999년 9월에 김일성종합대학에 컴퓨터과학대학이 설립됐고, 김책공업종합대학에는 정보과학기술대학과 기계과학기술대학이 설립됐다. 최근에 고려성균관대학을 종합대학으로 격상하고, 그 이외에도 20여개 대학을 중앙대학으로 특별 육성하고 있는 것도 첨단기술 관련 인력 수요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비롯한 주요 대학에 전자도서관을 확충하는 등 교육 정보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둘째, 학과 통합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이공계 단과대학 위주의 대학 구조와 세분화된 학과 구조, 생산현장과 밀접히 연계된 교육과정은 북한 대학교육의 주요한 특징이다. 이는 노동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며 졸업생의 직장을 국가가 계획해 배치하는 북한의 현실에서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체계에서 양성되는 인력은 최근의 기술 융합과 고도화 체제에서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거나 산업의 구조조정을 선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북한은 최근 들어 학과 통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례로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경우 유사학과를 통합해 80여 개에 이르던 학과수를 과반수 이하로 조정했다. 

셋째, 전반적으로 교육기간을 단축해 인력을 조기 양성하도록 하고 있다.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는 5~6년이었던 교육기간은 4~4.5년으로 단축했고, 2002년에는 6년제로 운영되던 리과대학을 4년제로 개편하는 등 대학의 교육기간을 전반적으로 단축하고 있다. 또한 2002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등 4개 대학에서 대학 졸업 후 박사원에 바로 진학하는 연계과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북한의 중등 영재교육기관인 제1중학교를 확대 강화하는 정책과 병행되면서, 20대, 30대의 젊은 나이에 준박사 및 박사학위를 받고 사회로 진출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넷째, 학제 및 학과 개편에 따라 교육과정도 개편되고 있다. 수업연한이 단축되고 학과가 통폐합되면서 그 특성에 맞는 교육과정안으로 조정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외국 대학의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학문과 기술의 발전을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있다. 특히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과학기술교육 내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여 과학기술인재문제를 푸는 것”이 “강성대국건설의 관건적 고리를 푸는 근본방도”라는 인식하에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분야의 교육과정 개편에 주력하고 있다.

다섯째, 영재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교육학자들은 영재들을 선발해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과학기술교육의 전반적 수준을 높이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이러한 영재교육의 성과는 대학에서 결실을 맺는다고 보고 있다. 1996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비롯한 대학의 자연과학 부문의 학부들에 ‘수재학급’을 따로 구성하고 교육연한도 조정할 것을 지시했다. 이런 지시에 따라 2000년대에 이르면 주요 대학의 자연과학 부문 학과에 ‘수재반’이 구성돼 일반학생반과는 다른 별도의 교육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별도의 분리교육을 실시할 뿐만 아니라, 학급 내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에도 학생들의 평균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우수한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교육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 교수 출신의 한 새터민의 증언에 의하면 2000년도 초반에 교육성에서 “대학교육은 선두주자 기준해서 나가라”는 지침이 하달됐다고 한다. “뒤처지는 사람 따라붙고 안 따라붙고 간에, 졸업생 백 명 중에 수재 두 명만 채워 넣으면, 그 두 명이 백 명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해외 유학을 비롯해 외국의 대학과의 교류가 증가하고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는 역시 중국으로, 북한은 매년 400명 정도의 유학생을 중국으로 보낸다고 한다. 유학생 파견은 주로 중국과 구 동구권 지역에 집중되고 있기는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미국이나 EU 국가에 유학하는 학생 수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소재 국제교육연구소(IIE)는 2001~2002학기에 미국에 유학한 북한 유학생이 113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쿠바, 일본 등지로 유학한 후 대학 간 교류 프로그램에 따라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으로 오거나, 미국 대학과 북한 대학 간의 직접 교류를 통한 단기유학생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시라큐스대학에서는 2007년부터 5개년간 매년 5~6명의 북한의 이공계 대학교수들을 초청해 3개월간의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공계 교수들 미국 연수 …  대학 입시비리도


이런 대학교육 개혁의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극복해야만 하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우선 북한은 국제적인 최신 이론과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가 제한돼 있어 첨단과학기술 분야의 인재 양성에 한계가 있다. 외국과의 직접적인 교류는 물론 인터넷도 외국으로는 연결돼 있지 않고 국내 연구기관 및 대학 간의 인트라넷 형태로만 운영되고 있다. 기술서적은 주로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통해 들어오는데, 학생들은 인민학습당에나 가야만 원서를 볼 수 있고, 그나마 지방의 도서관에서는 원서가 드물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입시비리와 시험부정의 확대 등 사회주의적 관행에 의한 정책의 왜곡과 교육 수준의 전반적 저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90년대 말 이후 수학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대거 부정입학함으로 인해 대학교육과 졸업생의 질적 수준이 크게 하락했다. 경제난 시기에 국가적 지원이 중단되자 대학당국은 자체적으로 학교 유지와 교원의 식량 확보 방안을 강구해야 했는데, 부정입학을 통한 자재와 식량 확보도 그 한 가지 방도가 됐다. 지방 대학들은 ‘석탄 한 차’, ‘도료 몇 통’과 같은 조건으로 자격 미달의 입학생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입시비리의 규모가 커지고, 금전적 거래의 성격이 명확해졌다.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참말로 공부 잘한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많건 적건 ‘돈을 찔러주고’ 입학한다는 새터민들의 증언으로 미루어볼 때, ‘안면관계’나 뇌물에 의한 부정입학은 상당히 보편화되고 있는 듯 보인다.

북한의 대학교육 개혁은 교육의 수월성 추구와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 양성을 통해 ‘단번도약’을 이루려는 북한 당국의 강한 정책의도를 보여준다. 폐쇄적 사회구조와 부정적 관행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러한 교육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한 별다른 자원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남한과의 교육 교류 협력은 성공의 문을 열 수 있는 황금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정아 / 통일연구원·연구원

필자는 서울대에서 ‘산업화시기 북한의 노동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 교육·노동과 통일교육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북한의 교육과 과학기술』(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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