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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춘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인터뷰] 나춘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 교수신문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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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3 11:37:25
법문사, 박영사, 다산 출판 등 5백여 학술 및 대학 교재 출판사들이 “지적소유권에 대한 대학사회의 불감증에 인내의 한계를 느꼈다”며 출판 중단을 선언하고 나섰다.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나춘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회장 김정흠), 한국복사전송권관리센터(이사장 이기수) 등 6개 단체는 지난 달 23일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불법 복사에 정부의 획기적인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학술 도서의 저술과 출판을 무기한 중단하고, 이 달 말까지 5백여 개 출판사의 등록증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출판사들이 이같이 극단적인 선언을 들고 나온 까닭을 대한출판문화협회의 나춘호 회장으로부터 들어보았다.

△최근 출판사들이 학술도서와 대학교재의 출판을 중단하고 출판사의 등록증을 반납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1천여 군데가 넘는 대학가 주변의 복사점들이 예전과 비교도 안될 만큼의 고성능 복사기로 학술 도서와 대학 교재들을 불법 복제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원본과 복사본이 구분이 안 될 정도여서 더욱 기가 찹니다. 더군다나 복사본은 원본의 절반값 이하로 팔립니다. 학술도서는 1천부가 손익분기점인데, 출판사에서 5백부를 찍어도 대략 70∼80부 정도밖에 팔리지 않습니다. 반품률이 85%에 달합니다. 자선사업체가 아닌 이상, 손해볼 것이 뻔한데 누가 출판을 하겠습니까. 지난 해 7월 저작권 보호를 위해 출판업계에서 만든 ‘한국복사전송권권관리센터’를 통해 단속을 하고 있지만, 사법권이 없어 적발을 하더라도 당장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학술도서의 책값이 비싸다는 말도 많습니다. 최근 5년 사이에 철학 및 사회과학 서적 등 학술도서의 책값이 눈에 띄게 올랐지 않습니까.

"사실 5년 전에 비해 철학 및 사회과학 서적의 정가가 각각 45% 이상 인상됐습니다. 이는 발행부수와 발행종수의 급감과 관련이 있습니다. 발행부수의 감소로 인한 손실을 정가 인상으로 어느 정도 보전하려고 한 겁니다. 만약 불법복사·복제가 성행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로 오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 책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닙니다. 비싸다는 핑계로 책을 통째로 복사하는 것은 지적소유권에 대한 박약한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줍니다.”

△결국 지적소유권에 대한 인식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지적소유권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저급한 수준입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지금까지 그래 오지 않았느냐며 가볍게 대처합니다. 그러한 관행이 우리나라를 ‘불법복제 우선 감시 대상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불법 복제의 죄를 묻는 법조계조차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습니다. 이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에게도 해당됩니다. 학생들이 불법복제한 교재를 들고 와도 가만히 내버려 둡니다. 자신들이 공부할 때 불법 복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래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책을 사는 독자들이 복사·복제가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께서는 IPA(국제출판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적 소유권과 관련하여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를 대체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한국의 불법복제의 실태는 창피할 정도입니다. 중국이 가장 문제시되는 국가이기는 하지만,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지적 소유권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깁니다. 우리나라가 지적소유권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시각이 강합니다. 한국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습니다. 우리나라와 계약할 때 주저하는 나라도 많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출판사와의 계약을 통해 인세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5천 부 정도의 완성된 책을 만들어서 그 책을 한국의 출판사에 팔려고 합니다. 불법복제로 인해 인세를 적게 받느니, 한국의 출판사에 5천부를 팔아 그만큼의 이익을 남기려고 합니다.”

△전국 복사전송업협회(회장 이원근)에서는 현재 한국복사전송권 관리센터의 불법복사단속이 그 내용이나 방법에서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초기단계라 센터에서의 시행착오도 많으리라 봅니다. 출판업계와 복사업계의 갈등은 불법 복제에 무감각한 사회 정서와 맞물려 있습니다. 불법복제가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대가 없이 중간에서 가로채는 부도덕한 일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이들이 드뭅니다.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서부터 얼마나 지적소유권을 가볍게 여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향후 출판업계의 활동 계획과 입장을 말씀해 주십시오.

"출판업계는 현재 정부에게 불법복사 단속원에 준사법권을 부여하는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대학 내부에서 자정 노력과 사업체의 저작권법 준수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불법복제에 대해 정부가 대책을 조속히 강구하지 않으면, 학술출판을 중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5백 여 출판사의 등록증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모두 모아서 금년 말에 문화부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책이 마련돼야 할 만큼 중차대한 문제라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출판계는 이미 인내의 한계에 다달았습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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