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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 일군 ‘출판저널’·‘서평문화’… 심층 서평 어디있나
대중성 일군 ‘출판저널’·‘서평문화’… 심층 서평 어디있나
  • 이종찬 객원기자
  • 승인 2008.04.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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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_ 국내 서평매체 어떤 것이 있나

출판계는 현재 ‘디자인 혁명’ 중이다. 판형은 작아지고 이에 따라 무게 또한 가벼워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점점 컬러풀해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책은 ‘팬시’해져 간다. 출판계의 주요한 소비계층인 20~30대 여성 독자들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 중 내용이 아닌 표지 디자인만으로 책을 구매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지금 출판계에 불고 있는 ‘디자인 혁명’의 분위기에서 감지할 수 있듯 국내 독서 시장은 양적으로 적지 않은 규모의 성장을 거듭하는 중이다. 2007년 한해 신간도서의 발행부수만 해도 무려 1억 3250만부로 그 전년과 비교해 17.1%나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이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화려한 외피의 신간 서적들의 홍수 속에서 정작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럴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서평지일 것이다.

학술서평지 <아카필로>의 휴면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 국내 서평지의 가짓수는 얼마나 될까. ‘한국에서 서평이 잘 이뤄지고 있는 매체를 자유롭게 꼽아 달라’는 교수신문 467호 <비평>의 질문에 답한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반적으로 종합해 보면 상당부분 중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응답자들이 밝힌 서평매체로는 주로 일간지에서 주말마다 선보이는 북 섹션과 계간지들이 있었다. 독립적인 서평지의 경우 <출판저널>이 많이 언급됐다.


<출판저널>의 경우 한국에서 흔치 않게 적지 않은 역사를 지닌 서평지다. 1987년 출간된 이래 2008년 현재까지 척박한 출판 현실에도 불구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보기 드문 사례에 속한다. 다만 <출판저널>은 2002년 6월 20일자를 마지막으로 3개월 동안 휴간한 이후 제호와 호수를 이어받은 채 발행 주체가 출판금고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편집권 독립을 둘러싼 논란 및 출판금고 시절의 전 직원이 해고되는 등의 적지 않은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그밖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서평문화>가 단연 눈에 띈다. 다양한 계층의 선정위원회(12명)로 구성된 <서평문화>는 각 분야별로 신간 도서들을 선정하고 있는데, 대중성과 학술성을 두루 갖춘 모범적인 서평지라 평할 만하다. 아울러 일종의 독서운동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 10권을 선정해 발표하며, 매분기 청소년 권장도서 발표도 병행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현재 국내에서 전문적인 학술서평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카필로>라는 전례가 있기는 하다. <아카필로>는 민간 철학 커뮤니티인 ‘철학아카데미’에서 발행하던 철학 전문지로, 전문 학술서평지로서는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당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재정의 어려움 및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 장기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8호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후속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아카필로>의 모토는 무엇보다 공론장의 형성이었다. 당시 <아카필로>의 편집주간이자 철학아카데미 대표였던 이정우씨는 ‘비꼬는 것’이 아닌 ‘학문적 비판’을 강조하면서 <아카필로>가 생산적인 학문적 논쟁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이 ‘논쟁’이란 것이 사실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은 성질의 문제이다. ‘주례사 비평’이란 해괴한 말에서도 입증되듯 사회문화적으로 비판 내지는 비평을 꺼리는 우리네 풍토 때문이다. 이는 교수신문 <비평>의 설문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절반을 넘는 수의 응답자가 실제로 차후 ‘저자와의 관계’를 의식하고 있었다.

물론 그간 서평 공간에서의 논쟁이 완전히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출간된 천규석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실천문학사)는 당시 유례없는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핵심개념인 ‘유목주의’ 문제를 둘러싸고 이정우씨와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 사이에 논쟁이 전개됐던 것이다. 이후 이 논쟁에 이진경 교수가 가세한다. 또 최근에는 계간지 <비평>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호, 리듬, 우주』(인간사랑)를 평한 문광훈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의 서평에, 저자인 김성도 고려대 교수(언어학)의 반론 서평이 실린 것이 그것이다.

서평 공간 확장됐지만 ‘질적 수준’ 회의적


그렇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서평의 ‘질’에 있다. 상대적으로 서평의 공간은 확장됐는지 모르지만 막상 양질의 서평과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여러 평자들에게서 공통되는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몇 가지 간추려볼 수는 있겠다.

우선 서평이 연구업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서평은 ‘심층성’을 요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인식이 암암리에 전제돼 있다. 실제로 현재의 학술서평이 “비평의 작업”이 아니라고 말한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와, “수준이 낮고 읽을 필요를 못 느낀다”고 답한 장영준 중앙대 교수(영어학)의 언급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상당부분 지금까지의 주된 서평관행의 흐름과도 관계가 깊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제까지의 서평은 출판사에서 작성한 책 소개 보도 자료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지나친 전문성의 경우도 역시 문제로 제기된다.
이 경우 사용되는 ‘용어’는 지나치게 폐쇄적인 속성을 띠게 마련이다. 좋은 서평이 갖춰야 할 덕목은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가이드의 역할 혹은 전문성의 영역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서평은 책을 소개하는 것임과 더불어 일종의 상호 대화적 ‘비평’ 행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이할 만한 사항으로는 이제 서평매체는 단지 지면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TV 브라운관을 통해서도 서평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KBS ‘TV 책을 말하다’이다. 얼마 전 종영되긴 했지만 EBS의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도 TV로 접할 수 있었던 서평매체이다. 특히 ‘TV 책을 말하다’는 단순한 책 소개에 그치는 것에서 탈피, 책을 둘러싼 논의들을 주고받는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포맷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또한 서평의 주된 기능 중 하나로 독자들의 도서 구매 여부를 결정짓는 바로미터 역할을 들 수 있다면 각종 인터넷 온라인 서점에서 볼 수 있는 ‘리뷰’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서평매체일 것이다. 실제로 현재 적지 않은 수의 도서 구매자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서점을 방문하는 대신 간편하게 인터넷을 통한 구매를 선호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이라는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

단점으로는 매체의 속성상 모든 리뷰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고 들쑥날쑥한 점을 들 수가 있겠지만, 그 와중에서도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과 필력으로 고정 독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모 온라인 인터넷 서점에서 ‘로쟈’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알린 이현우 서울대 강사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이현우 강사는 온라인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서 이제 지면에서도 그 이름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가 있다.
서평매체는 이렇듯 빠르게 진화하는 중이다. 발전하고 있는 매체의 속도만큼이나 매일같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책들의 수도 무시 못 할 수준이다. 까딱하면 이 홍수와도 같은 신간의 파도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얼마 전 번역 출간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저자 피에르 바야르는 이 같은 추세 속에서 썩 흥미로운 제안을 던지고 있다. 저자는 그저 책들을 많이 읽었느냐보다 자신이 읽어낸 책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책읽기를 스스로 자제할 것을 역설한다. 책이 아니라 자기 얘기가, 혹은 책들을 통한 자기 얘기가 궁극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책은 경외나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종찬 객원기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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