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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넓이와 보이지 않는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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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08.03.3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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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 노르베르트 볼츠 지음 | 유현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 | 1만8천원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 노르베르트 볼츠 지음 | 윤종석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 | 1만1천원

현재 매체와 관련된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그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취급받든 또는 그렇지 않든간에 매체는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왜냐하면 현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매체 없이 하루도 살기 힘든 ‘매체 또는 기술 장치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매체를 끊고 매체 중독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를 써도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매체를 접할 수밖에 없다.

버스, 식당, 터미널 등등의 공공 장소와 거리에서 우리는 무차별적으로 흘러넘치는 영상 이미지들과 소리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TV·라디오·인터넷 그리고 휴대 전화 없는 현재의 나는 상상이 불가능하다. 만약 내가 매체와 연결되지 않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면 나는 아마도 극심한 ‘매체 금단 현상’에 빠지게 되며,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소외된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제 매체 없이 외부 세계를 체험한다는 것은 점점 더 불가능한 현실이 됐다. 인간의 존재 방식은 이제 매체 의존적이 돼 버린 것이다. 매체와 접속함으로써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지 매체를 도구나 수단으로 파악할 수만은 없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매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체가 있음으로 해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와 버렸기 때문이다. 즉 도구로 취급받던 매체가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이 가상에서 벗어나 본질로 취급받기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매체에 관한 이론은 이제 매체의 도구성과 수단이라는 목적을 위한 성격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매체가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영역을 연구한다.

이러한 매체 현실들이 철학의 영역에서도 ‘매체 철학’, ‘매체 미학’ 또는 ‘매체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되고 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매체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의 핵심은 매체로 인한 시공간의 변화와 인간 지각 방식의 변화에 대한 연구다. 이를 자신이 택한 방법론을 가지고 철학적 관점에서 또는 미학적 관점에서 또는 매체학적 관점에서 진행할 뿐이다.

이렇게 진행된 연구들은 80년대 중반 이후 이미 많은 연구 성과들을 내놓았다. 이러한 많은 매체 연구 성과들 중에서 특히 독일의 매체 이론가인 노르베르트 볼츠의 연구 성과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일찍이 매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매체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 많은 연구물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단지 연구를 하고, 연구 성과물들을 많이 내놓았다고 해서 주목해야 하는 이론가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가 주목받은 이유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아주 직접적으로 그리고 도발적으로 매체의 중요성과 매체가 가져온 변화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약간은 주저함과 동시에 우려의 눈길로 관조하고 있는 현실을 그는 조금의 주저함 없이 지금의 매체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그렇지 않으면 디지털 매체 시대에 매체 리터러시가 없는 디지털 시대의 문맹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이 바로 볼츠 이론의 장점이 됨과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다. 주저함이 없는 당당한 태도는 논의의 명확함을 가져옴과 동시에 논의의 깊이에 대한 문제점과 성찰의 문제를 동시에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때문에 볼츠의 이론들은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독자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에 따라 매우 다르게 평가받을 수 있는 이론인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볼츠는 매체 이론가이자 트렌드 분석가이자 일종의 미래학자다. 그는 1990년대 초반에 가상(Schein)에 대한 철학적 재평가를 시도한 이후 매체와 디자인 그리고 트렌드에 대한 많은 이론서들을 출판했다. 다행스럽게도 몇 년전부터 그의 책들이 우리말로 번역됐다. 독일어라는 제약 때문에 그의 이론에 접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행운일 것이다. 그의 책 중에서 가장 최근에 번역된 책은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다. 그 이전에 번역된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부터 최근의 번역서까지 총 5권의 책이 출판됐으니, 결코 적지 않은 그의 책과 공저들이 번역됐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매체 미학과 매체 철학을 연구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볼츠를 비롯한 매체에 관련된 많은 책들이 번역되는 현상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특히 볼츠는 독일 매체 이론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학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의 번역된 저서들을 보면 그의 연구 관심사가 분명히 드러난다. 철학과 문학에서 출발한 그는 매체 연구에 주력하고 지금은 디자인을 비롯한 트렌드 연구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번역된 그의 책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는 그가 지금까지 매체와 트렌드에 관해서 출판한 책들의 종합판이자, 일종의 대중서라고 할 수 있다. 매체에 대해 주로 분석하고 있는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와 『컨트롤된 카오스』(윤종석 옮김, 문예출판사, 2000)와, 트렌드가 주된 분석대상인 『컬트 마케팅』(노르베르트 볼츠·다비트 보스하르트 지음, 고재성 옮김, 예영커뮤니케이션, 2002)을 종합한 것이다. 물론 볼츠의 이론에서 매체와 트렌드를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는 없다. 그의 이론에서는 매체에 대한 분석과 트렌드에 대한 분석이 서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매체에 관한 분석이 곧 트렌드에 관한 분석이 되고, 이것이 바로 컬트 마케팅을 형성하고 경제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를 먼저 매체 이론가로서의 볼츠를 중심으로 보자. 이 책에서 볼츠는 매체 이론가로서의 논의의 깊이를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책은 매체 이론만을 다룬 책도 아니고 전문적인 학술서의 성격을 띠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어쨌든 이전에 그가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에서 보여준 지금의 매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도발적인 주장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애석하다. 일찍이 볼츠는 80년대부터 그 당시 독일에서 새로운 학문 분야로 각광받고 있는 매체 미학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이론을 전개했다.

그렇다면 매체 미학이란 무엇인가. 매체 미학은 두 가지 전제로 출발한다. 하나는 전통적인 미학(sthetik)과 달리 감성학(Aisthetik)으로서의 미학을 강조하는 것이다. 매체 미학은 무엇보다도 전통적 미학이 지금의 일상적, 심미적 또는 예술적 상황을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볼츠 또한 이 점을 강조한다. 미학이 스스로 예술에 대한 철학 또는 철학적 미학을 강조함으로써 감성이나 지각과 일상적 생활에서의 심미적 체험 등을 설명하기에 어렵다는 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매체 미학의 대상을 예술에만 한정시키지 않는다. 광고, 영화, 디자인 등등 이미지 체험을 제공해 주는 모든 것들이 그의 매체 미학의 분석 대상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시 예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 또한 제기하면서 모던적 예술의 종말을 주장한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을 모던적 가치, 즉 진리나 비판이라는 범주로 해석하려고 하는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예술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재미를 주는 ‘삶의 자극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뭐가 예술이고 뭐가 예술이 아닌지 구별해서 규정하는 것도 그에게는 무의미한 작업이다. 왜냐하면 삶의 자극소 역할을 하는 것이 반드시 예술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영상 매체들이 만들어내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 오히려 삶에 활력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늘 그러하듯이 말이다. 

다른 또 하나의 전제는 매체다. 매체 미학은 현대 사회가 매체 없이 무언가를 경험하고 체험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사회이며, 특히 많은 영상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이미지에 대한 관심과 감각적인 것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볼츠 또한 누누이 ‘미학’이 아닌 ‘감성학’을 강조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앤드류 달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제 중요한 것은 이해와 해석이 아니라, 스펙터클과 센세이션이 중요하게 취급된다. 다시 말해서 이미지들을 느끼고 체험하고 즐기는 것이 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보다 일차적인 것이 됐다. 이 때 주도적인 매개체 역할을 하는 매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특히 이전에 수동적인 수용자들이 스스로 매체들을 활용해서 능동적인 생산자가 돼 가고 있는 지금, 디지털 매체로 인해 생긴 여러 가지 변화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볼츠 또한 그렇다.

볼츠가 이야기하는 감성학으로서의 미학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현대 사회가 문자를 기반으로 한 사회, 즉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끝나고, 새로운 이미지의 시대가 대세라는 것이다. 이는 볼츠만의 독특한 이론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현대 사회를 진단하는 아주 일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진단에서 볼츠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매체와 매체성에 주목한다. 또한 이를 바로 앞서 말했듯이, 예술의 논의와 연결시켜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종말뿐만 아니라, 모던적 예술과의 종말 또한 언급한다. 이는 문자 문화가 가지고 있는 이성 중심의 합리성과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문자 대신에 이미지가, 예술 대신에 디자인이 주요 역할을 하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매체 이론은 디자인 이론, 또는 디자인 미학 또는 트렌드 연구로 전환된다. 디자인과 트렌드는 바로 경제의 문제와 연결된다. 디자인은 상품에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상품이 예술과 달리 사용 가치를 주된 가치로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상품에 어떤 옷을 입혀도 되는 사회는 이미 예전에 지나갔다. 물론 예술도 상품의 형태를 띠게 됐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제 상품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심미적인 가치이며, 이 심미적인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디자인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고 트렌드 분석가로서의 볼츠가 그의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에서 제시하는 트렌드 분석에 대해 살펴보자. 그는 현재 서구 시스템을 소비주의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주의가 대세가 된 사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소비주의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이라고 볼츠는 주장한다. 그는 “유용한 트렌드 분석”이야 말로 “그 자체로 골동품적이지 않은 문화학”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론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낡은 문화학이 아니라, 진짜 현실에 부합하는 현재적인 문화학, 즉 트렌드 분석을 위한 지표를 제공하는 것 말이다. 

이러한 문화학, 즉 트렌드 분석을 위해 그는 방법론적으로 네 가지 분석 지평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① 구조적 표류 현상: 이는 개별적인 사례에서 보편화해야 하는 것이다. 간단히 컨트롤의 약화로 표시할 수 있다. ② 메가트렌드: 단지 묘사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글로벌화·비물질화·지식 사회와 세계 커뮤니케이션/새로운 매체라는 메가트랜드를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 ③ 트렌드: 피드백이 가능하다. 장면-마케팅을 가장 성공적인 피드백-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 ④ 유행: 일명 ‘트렌드 선도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전달된다. 실제로 이들은 유행을 만들어낼 뿐 진정한 트렌드는 ‘선도’할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바로 ‘메가트렌드’라는 분석 지평이다. 그는 메가트렌드를 글로벌화·비물질화·지식사회와 세계 커뮤니케이션/새로운 매체로 규정하고 이를 단지 묘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 바로 이러한 내용들을 단지 묘사하는 것을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볼츠는 이 책에 그가 메가트렌드라고 정의한 것들을 방대하게 ‘정리’하고 이를 묘사하고 있다. 이 메가트렌드야말로 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가 현대 사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볼츠는 그가 설명했던 것처럼 이 책에서 이러한 메가트렌드를 단지 묘사만 하고 있다. 그 묘사의 넓이와 묘사를 수식하기 위한 지식의 넓이에 놀랄 수밖에 없다.

이미 이 책의 역자가 역자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이 책은 그가 이전에 썼던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를 경제학 또는 트렌드학이라는 관점에서 변형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이전의 책이 좀 더 이론적인 관점에서 매체와 디자인 등에 대해 꼼꼼하게 다뤘다면,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에서는 엄밀한 분석과 비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백화점식으로 많은 지식들을 그저 나열하는 듯하다.

물론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끝에서』에서 그가 매체에 대해 분석한 그리고 디지털 매체의 고유한 특징으로 분석한 내용들, 예를 들어 상호 작용성 등에 대한 입장에 변화를 약간은 보인다. 즉 상호 작용성은 디지털 매체 사회의 물신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더 나아가 “실제 상호 작용은 모든 행동과 마찬가지로 매우 힘든 일”이며 디지털 매체에 의해서 매체 작용에 적극 참여하게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이상주의적 인류학의 환상”일 뿐이라고 까지 주장한다. 그리고 새로운 매체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낡은 매체가 새로운 매체에 의해 ‘재매개화’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언급만 한다.

볼츠가 디지털 매체의 상호 작용성에 대해 이러한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기 전에 이미 독일의 매체 학자 디터 다니엘스가 상호 작용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었다. 디지털 매체가 가지고 있는 상호 작용성에 감추어져 있는 지배와 기술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지적하며,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했었다. 또한 볼츠가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를 출판한 후 볼터와 그루신이 ‘재매개화(Remediation)’라는 개념을 통해 낡은 매체와 새로운 매체가 서로 상호 작용하고 있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러한 논의들에 대한 볼츠의 깊이 있는 논의가 이 책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정말 아쉽다.

사실 이 책에서 핵심 주제는 트렌드와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체 철학자 또는 매체 미학자로서의 볼츠보다는 트렌드 분석가로서의 볼츠만이 도드라지게 보인다. 트렌드 분석가로서의 그는 뛰어나다. 이 책에서 그는 단지 유행이 아니라, 트렌드가 되는 것, 그리고 트렌드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들을 아주 촘촘히 묘사하고 있다. 많은 이론가들의 이론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면서, 또 트렌드로 작용할 수 있는 현실들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그저 그 지식의 방대함에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트렌드 분석가로서의 볼츠가 트렌드를 분석하는 방법에서 지나치게 ‘트렌드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그 지식의 넓이가 좀 공허해진다.

볼츠는 트렌드 분석가로서 트렌드와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경제라는 말로 통합한다. 그런데 볼츠는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에서는 브랜드가 철학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브랜드에 대한 철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철학을 한다고?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그는 현대 사회를 믿을 수 있는 것들로 비축해 놓은 저장품들이 줄어들고 삶과 세계가 가지고 있는 지속성이 의심을 받는 사회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대신 미래학과 트렌드 연구가 등장한다고 한다. 즉 철학 대신에 미래학과 트렌드 연구가 등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일찍이 그가 디자인을 비롯한 현재의 이미지 상황을 분석하면서 언급한 예술의 종말과 맥을 같이 한다. 예술 대신에 디자인과 브랜드, 그리고 철학 대신에 디자인학과 브랜드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 미래학과 트렌드 연구가 볼츠의 말처럼 대세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이론들이 철학과 비판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믿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고 삶에 대한 의심이 증대하고 있는 지금, 브랜드 철학이 아닌, 좀 더 본질적인 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고 해서 비판마저 사라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청 또한 볼츠에게는 무의미한 것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하게 “진보를 향해 날아가는 시간의 화살은 부러지고, 지향하는 세계관과 선동적인 이데올로기 같은 ‘거대 서사’가 잊혀졌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를 향해 날아가는 시간의 화살이 부러졌다고 생각하는 지금이야말로 다시 진보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트렌드 연구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볼츠에게서 이러한 비판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과연 무리일까. 왜 트랜드 연구자는 늘 현란한 언어와 지식의 잔치상을 차려야 하는가. 또 트렌드 연구자는 진지하면 안되는가. ‘진지한 트렌드 연구자’는 마치 ‘겸손한 이데올로그’처럼 형용 모순이며, 불가능한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는 볼츠의 비판대로라면 디지털 시대의 문맹인이며, 철학은 뭔가 깊이가 있고 심오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트렌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볼츠가 분석한 트렌드 이론에 대해 그 이론의 넓이에만 놀랄 뿐이며, 깊이 없음에 대해 아쉬워할 뿐이다.

 


심혜련 / 전북대·문화 기술철학

 

필자는 베를린 훔볼트대에서 벤야민의 매체이론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벤야민의 매체 이론과 매체 미학에 대해 연구하며 이에 대한 논문들을 다수 발표했다. 저서로는 『사이버스페이스 시대의 미학』이 있으며, 그 외에 다수의 공저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
베를린 공대 매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노르베르트 볼츠는 철학자이자 매체이론가이며, 트렌드 분석가로 잘 알려져 있다.
볼츠는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에서 트렌드, 브랜드, 신화와 같은 보이지 않고, 손으로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성공의 새로운 요소이며, 정신성과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지식 등이 21세기의 결정적인 생산력이라고 말한다.

볼츠가 1993년에 낸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가 매체상황의 미래를 철학적으로 고찰한 결과물이라면, 이 책은 경제학의 관점에서 급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주제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오늘날의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욕망의 경제’에 대한 것이다. 새 매체상황과 함께 학문, 교육, 종교 등 이 책이 다루는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미래를 주도하는 학문으로서의 디자인학, 매체로서의 화폐에 대한 관점도 확대 연장하고 있다. 미래학자의 면모를 보이는 지은이의 예측도 흥미롭다. 1998년에 발표한 이 책에서 세계를 아메리카니즘과 이에 저항하는 새 구심점이 된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결구도로 파악하고, 현실을 다만 보도를 위한 매체현실로만 재가공하는 대중매체에 대한 분석,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는 학문세계와 독서문화에 대한 비판 등이 그 예다.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는 출간 당시 독일 매체논쟁의 중심적인 텍스트였다. 매체전환에 대한 요구가 격렬했던 90년대 초반에 볼츠는 컴퓨터 기술로 지원되는 하이퍼미디어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기대치가 최고치에 다다랐을 당시, 문자를 바탕으로 한 프린트미디어의 종말과 새 커뮤니케이션으로서 뉴미디어의 도래를 주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볼츠는 하이퍼미디어의 미학적 부진과 프린트문화의 계속되는 선전을 보면서 프린트 문화가 계속 존속하리라고 전망한다. 그는 기존의 매체가 새로 등장한 매체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점을 살려 공존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그러므로 기대되는 것은 서로 잡아먹는 미디어-카니발리즘이 아니라 유쾌한 미디어믹스의 시대”라고 진단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에서 이전 매체인 브로드캐스팅과 새 매체인 인터넷이 믹스된 ‘웹캐스팅’의 시대를 전망하기도 했다. 지금 방송·통신 융합, IPTV의 도입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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