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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서보다는 논저가 됐다면
해설서보다는 논저가 됐다면
  • 강신준 / 동아대·경제학
  • 승인 2008.03.3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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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경제학』홍훈 지음 | 길 | 2008 | 3만원

대선을 치르면서 한바탕 난리를 겪은 느낌이 드는 것은 새 정부의 각료 가운데 교수출신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내게 난리였던 까닭은 이들 새 정부로 들어간 교수들이 학계에서 오랫동안 성실하게 쌓아온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정책적 자문의 요구에 응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변한 논문도 없는 것은 물론 썼다는 논문들조차 표절과 중복의 논란에 휩싸인 채로 교수라는 직함만을 내세워 자리를 겨냥한 이상한(?) 사람들이어서, 이들과 같은 직업을 가진 죄로 교수가 원래 그런 직업인지 주변 사람들이 자꾸 물어대는 통에 겪은 홍역 때문이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정치의 계절마다 겪는 일이라 그것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이런 폴리페서들이 흘러넘치는 시기에 성실한 직업적 원칙을 지킨 책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 새삼스럽게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오래 전부터 마르크스의 연구를 경제학사 영역에서 꾸준히 해 온 저자의 새로운 책을 새 학기의 개강과 함께 만난 것은 바로 그런 의미를 갖는 일이라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일관된 연구영역과 연구방향을 오랫동안 지키면서 만들어진 책이고 그동안 쌓인 연륜이 이미 만만치 않은 터라 그 무게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미 이 책 이전에도 경제학사에 대한 저작을 세 권이나 집필한 상태다. 따라서 당연히 이전의 저작과 이번 저작 간의 관련이 먼저 설명될 필요가 있다. 그의 첫 저작에 해당하는 『맑스 경제사상의 구조와 한계』(한울, 1994)는 마르크스를 집중적으로 다룬 연구서인데 반해 두 번째 저작에 해당하는 『마르크스와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사상』(아카넷, 2000)은 두 이론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탐구하는 비교연구에 해당한다. 한편 작년에 나온 『경제학의 역사』(박영사, 2007)는 경제학사 강의에 적합한 교과서적 형태의 저작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번 책은 어떤 성격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기존의 저작들과는 성격을 좀 달리하면서 일종의 심화연구로 분류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앞서 출판된 세 저작들에서 비어있던 부분들을 메우거나 한걸음 더 진전시키는 보완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따라서 독립된 저작으로 완결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기보다는 선행 저작들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보다 큰 전체체계 가운데 한 부분을 이루는 저작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 아담 스미스의 경우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국부론』은 선행저작들에서 이미 상세하게 다뤘다는 판단 하에 다루지 않고 오히려 그것의 철학적 전제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는 『도덕감정론』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 밀의 경우에는 주저인 『경제학 원리』를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 베블런의 경우에도 별도의 장으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즉 선행저작들을 계승하는 심화연구와 함께 거기에서 비어 있는 부분을 보완하는 연구가 함께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서술방식에 있어서도 이 책은 다른 책들과 조금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선 심화연구의 성격을 띤 부분은 대상 저작을 고전강독의 방식으로 원문을 발췌·요약한 다음 여기에 주석을 덧붙이는 방식의 서술이 이뤄지고 있으며, 보완연구의 성격을 띤 부분은 저작 전체를 저자가 임의로 요약한 다음 논평을 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서술이 불균등하게 이뤄진 점이 독자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로서는 다양한 서술체계를 통해서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과 간단하게 언급만 하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에 차별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술상의 이런 다양성은 독자들에게 당연히 약간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거의 모든 서술이 선행저작들의 논의를 전제로 하면서 이뤄지고 있어서 선행 저작들을 미리 읽지 않은 독자들은 저자의 해설이나 주석을 따라잡기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경제학을 전공한 학생의 경우에도 저학년에게는 좀 어렵게 느껴질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학에 대한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자연히 별로 친절하지 못한 책이라는 인상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저자의 선행저작들을 한꺼번에 읽도록 독려하는 기회가 되는 측면도 있긴 하다.

반면 이런 부담과 함께 선행저작들과의 관련에서 독자들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함의가 이 책에는 일관되게 담겨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마르크스 전문 연구자이며 선행저작들도 모두 자신의 본래 연구영역인 마르크스와의 관련 하에 집필된 것이다. 이번 책에서도 이런 필자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필자가 다루고 있는 학자들은 모두 마르크스와의 관련이 빈틈없이 다뤄지고 있으며 따라서 전체적으로 이 책은 마르크스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특히 필자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영역을 멀리는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가까이는 최근의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 이르기까지 확장하는 것은 물론 지리적으로 경제학적 전통과 분리돼 있는 미국의 제도주의 경제학에서도 그 연결의 고리를 찾고 있다. 필자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에는 동업자로서 마음깊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대체로 시대적인 순서를 따르고 있지만 선행저작들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일반적인 경제학사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부분들을 많이 다룬 점이 눈에 띈다.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반적인 것이지만 중상주의가 생략되고 중농주의에서는 케네 대신 튀르고가 다뤄졌으며 스미스의 경우에도 『국부론』을 제외한 다른 저작들이 다뤄졌고 맬서스도 주저인 인구론 대신 지대론이 다뤄졌다. 고전파에서 시니어의 분량이 많은 것도 특징적인 것으로 보이며 오스트리아 학파는 선행저작에서 빠진 부분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베블런을 별도의 장으로 독립시키고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릴만한 프리드먼에도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은 최근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에 대한 필자의 실천적 고민이 담겨 있어서 읽어볼만한 내용이 많다. 부록처럼 책의 말미에 별도의 장으로 묶어 놓은 ‘경제학과 관련된 사회사상’은 신고전파 이후 너무 시야가 좁아진 경제이론의 지평을 넓히는데 좋은 시사점을 던지는 부분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제법 두툼한 책 곳곳에서 필자의 성실한 땀 냄새를 재삼 확인하면서도 계속해서 한 가지 아쉬움이 떠나지 못하는 부분은 이 책이 저서로서 가진 한계 때문인 듯하다. 무엇보다도 독립된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한계일 것 같다. 설사 선행저작들과의 관련 때문에 학자로서 중복을 피하기 위한 고심의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긴 하지만 그 부담을 독자들에게 돌려버린 것은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인다.

이런 체제상의 아쉬움 외에도 기왕에 저서로 집필된 것이라면 필자의 논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논저로 집필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고전을 찬찬히 해석해 나가는 강독서이긴 하지만 필자의 주장이 뚜렷하게 반영된 논저의 형태는 띠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해설서보다는 논저가 됐으면 하는 아쉬움은 무엇보다도 저자가 바로 마르크스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따른다. 하나는 마르크스가 단순한 해석보다는 변화를 지향하는 논지를 갖춘 학자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학설사가 바로 그런 마르크스의 실천적 연구영역 가운데 주요한 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본주의의 모순이라는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학을 연구했으며 따라서 그의 경제학은 현실의 해석이기보다는 변혁의 지렛대를 찾는데 집중됐다. 마르크스는 1851년 이런 변혁의 지렛대를 찾기 위한 자신의 구상을 경제학 비판, 사회주의 비판, 경제학의 역사라는 세 개의 범주로 집약한 바 있었고 실제로 경제학 비판에 해당하는 『자본』과 함께 거의 같은 분량의 『잉여가치학설사』를 유고로 남겨 두었다. 경제학설사가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경제학설사는 그의 경제학의 본질과 직접 관련되는 중요한 부분으로 마르크스의 논지(현실 모순의 변혁)가 일관되게 반영된 연구영역으로 이해된다. 저자도 이 점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각 학자들에서 마르크스와의 연관을 꼼꼼히 추적한 것은 물론 제목을 ‘인간을 위한 경제학’으로 정한 데서도 그런 의도가 엿보이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의 연관이 보다 분명한 논점으로 집약되지 못하고 다소 병렬적이고 수평적인 방식으로 서술돼 있어서 독자들이 필자의 논지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따라가기에는 다소 벅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적 문제의식이 현실 자본주의의 모순을 분배의 왜곡된 현상으로부터 출발해 수수께끼의 진원지인 생산의 가치로 추적해 들어가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 착안해 아예 이들 두 문제(가치론과 분배론)를 선명한 잣대로 내세운 루빈과 돕의 경제학설사는 그런 점에서 교훈적인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도 이들 책에서처럼 몇 개의 핵심적인 논점을 책의 서두에 제시하고 이들 개념이 학자들을 거치면서 어떻게 발전해 갔는지 집중적으로 추적해 들어갔으면 이 책이 논저로서 분명한 성격을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다.

다소 사소한 문제이긴 하지만 아쉬운 점을 한 가지만 더 추가하고 싶다. 마르크스 연구자에게 사유는 존재의 반영으로 이해된다. 경제학설사는 곧 그 시대의 존재의 반영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각 학자들의 사상은 그들이 살았던 사회경제적 조건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각 학자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설명이 너무 인색한 것은 혹시 저자가 놓친 부분이 아닐까 싶어 지적해 두고자 한다. 이론이란 그 자체로서 비교되기보다는 해당 시대와의 정합성 속에서 비교돼야만 올바른 평가가 이뤄질 수 있고 그런 맥락에서는 각 이론들의 한계까지도 충분한 가치를 갖는 것이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저자는 수년 내에 다음 저작을 다시 내 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 저작에서 지금보다 더 값진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하고 이 작은 서평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강신준 / 동아대·경제학

필자는 고려대에서 ‘독일 사회주의 노동운동과 농업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동의 임금 교섭』, 『자본론의 세계』 등의 저서가 있으며, 한국산업노동학회 편집위원,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현대자동차 노사전문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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