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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巳年 한 해를 보내는 겨울 문턱에서
申巳年 한 해를 보내는 겨울 문턱에서
  • 이동렬 이화여대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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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3 10:55:45
이동렬
이화여대·심리학

묵은 해니 새해니 구별할 것 없네/ 겨울 가고 봄 오니 해 바뀐 듯 하지만/ 여보게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지난 한 해 동안 교수사회를 돌아보면서 느낀 단상을 적어달라는 H기자의 청탁을 받고 문득 떠오른 것이 어느 중국 교포가 쓴 위의 시조 구절이었다. 구태여 새해도 묵은 해도 없는데…. 교수사회를 두루 다녀보지도 못하고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맴돌던 우물안 개구리가 교수사회를 알면 얼마나 안다는 말인가. 그러나 연일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보고 들은 것은 있으니 어찌 片想 몇 개야 없겠는가.

떠나가고 새로온 사람들

첫째, 교수들의 현실참여다. 교수들의 현실참여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대중매체를 통하여 연일 새 얼굴과 새 이름이 등장하고,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을 두고 신문과 방송에서 열띤 논쟁을 벌이는 교수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이에 질세라 교수가 하루아침에 정부의 요직을 맡는 관리가 되어 대학을 떠나기도 하고, 평생을 행정에 몸담고 있던 관리가 하루아침에 백묵을 쥐고 교단에 서는 경우도 늘었다.

이와 같은 교수의 빈번한 현실참여가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나,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진정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 나로서는 선뜻 판가름이 나질 않는다.

둘째, 연구에 대한 요구랄까 압력이 거세게 느껴지던 한 해였다. 학술지에 논문 한 편 싣지 않고 은퇴를 할 수 있었던 태평성대는 지나갔다. 누구나 교수로서의 체통을 지키려면 연구업적이 있어야 한다. 바로 몇 주전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했던 교수들의 외국논문 표절행위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그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연구의 질보다는 양을 중요시하는, 다시 말하면 얼마나 좋은 연구를 했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느냐를 더 중요시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풍토가 녹조현상처럼 학계에 밀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뿐이랴, 연구업적에 대한 요구가 지나쳐서 연구비를 받은 지 1년이 채 못되어서 연구보고서를 내놓으라 하니 허니문에서 돌아오는 신혼부부에게 해산달이 언제냐고 묻는 성급한 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상대평가로 인한 학생과 교수, 학생과 학생간의 인간관계의 변화가 느껴지던 한 해였다. 상대평가는 좀 과장해서 말하면, “너 죽기 아니면 나 살기”의 인간관계 모델이다. 그러니 그것은 “협동정신을 발휘해서 서로 도우며 따뜻하게 살자”는 이 민족의 염원에 방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그다지 덕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고 하면서 서로 도우라는 것은 그 말도 어렵거니와 실천적으로는 더욱 더 어려운 과제다.

또한 상대평가는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성적에 신경을 쓰게한 나머지 학생과 교수와의 관계마저 불편하게 만들 때가 있다. 한마디로 교수는 학생을 대할 때 긴장을 풀지 못하고 지뢰밭을 걷듯 조심하고, 학생은 학생대로 교수를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상대평가를 하든 절대평가를 하든,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깊은 생각이 있었으면 좋겠다.

상대평가를 하는 이유는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여 학생들이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 학생들이 공부는 좀 더 열심히 할지는 모르나 학생과 학생들간의 관계는 지나친 경쟁으로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메말라 가지 않을까. 아무리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살벌한 경쟁보다는 화목한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중동에 수출하는 자동차의 수가 조금 줄어들더라도….

그래도 또 다시 새 달력을 건다

달력을 바꾼지가 바로 어제 같은데 몇 주만 있으면 또 새 달력을 걸어야 한다. 그전에는 그처럼 신바람 나던 연구활동도, 강의도 지금에 와서는 흥미가 줄어들고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느껴질 때가 많으니 나이가 빚어낸 비극이리라. 그러나,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동물, 이 모든 것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 마음의 노화방지를 막는 것도 역시 마음에 있지 않는가. 새해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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