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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적 능력이 아니라면 强迫이다
자생적 능력이 아니라면 强迫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3.1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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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평_ 인사동에 부는 사진열풍

 우리 미술계에는 서울과 경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전시회 소식을 거의 빠짐없이 전하는 인터넷 소식통이 하나 있다. neolook.com을 도메인으로 둔 ‘이미지 속닥속닥’이란 웹 매거진이다. 2만여명 이상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전하는 새로운 전시 소식이 한 달이면 4백~5백여개에 이르고 있으니, 웹상에서도 전시 하나 하나를 관심 있게 살펴보고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전하는 전시 소식을 대강이나마 일별하다 보면 현재 한국 미술의 큰 흐름 정도는 읽어낼 수 있다. 최근 작가들은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어떤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는지, 어떤 장르의 전시가 활발하게 이뤄지는지, 한국 미술의 주요 담론이 무엇인지 등의 상황 같은 것 말이다.

미술 관련 학과 1/10 규모인데도 사진전시 느는 까닭
작년부터 ‘이미지 속닥속닥’은 전시 제목 옆에 작가 이름과 그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매체를 적어 보내고 있다. 예를 들어 Painting, Sculpture, Video, Photography, Installation 등으로 장르를 분류하거나, 두 매체를 혼합한 경우에는 두 개를 같이 적어 보내는 방식 등으로 말이다. 그래서 전시 정보의 제목 부분만 눈여겨 봐도 요즘은 어떤 장르가 늘어가고 줄고 있는지 등의 큰 흐름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이미지 속닥속닥’이 전하는 최근 미술 전시의 흐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진 전시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 화랑가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전시는 회화전이다. 그러나 회화 다음으로는 사진전이 많고 실질적으로 회화전과 사진전은 숫자상으로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사진 매체 또는 사진작가가 미술 시장에 진입한지 불과 2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과 사진작가를 배출할 수 있는 사진학과 수가 미술 관련 학과의 십분의 일도 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놀랄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즘 사진을 매체로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는 작가들의 상당수는 회화나 조각 같은 미술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되고, 또 사실이 그렇다. 그렇다면 왜 사진은 이토록 각광받게 된 것일까.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급격한 매체환경의 변화는 미술가나 사진가 모두에게 공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환경이 카메라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로 구성돼 있고, 이런 환경을 비평하는 수단으로 사진이 매우 적합한 매체라는 점을 인식토록 만들었다. 그들을 압도해가는 현대적 상황에 대한 적응의 방식으로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삶과 의식의 근거인 사진 또는 영상물에 대한 비평을 위해서, 그리고 사진 기호의 익숙함 때문에 사진을 자신들의 작업에 자연스레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편 사진가들은 너무도 많은 사진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리고 모더니즘이 구축해놓은 전통적 사진의 완결성에 대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의 일환으로 사진에 미술의 방법과 재료를 도입해 가기 시작했다.
사실 텔레비전의 본격적인 영향력 확대를 기폭제로 시작된 매체 환경의 변화는 그 속도가 한 인간의 경험적 사유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면서 인터넷과 무선통신, 디지털 이미지의 폭발적 성장으로 그 정점에 와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변화의 중심에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사실적 이미지를 값싸고 빠르게 생산하고 무한 복제해서 전파하는 영상 매체의 힘, 포토샵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이미지 가공 프로그램의 광범위한 보급,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 또는 최근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 있는 핸드폰 카메라로 대표되는 디지털 사진 또는 디지털 이미지가 서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가들의 세상을 향한 관심과 사유의 흔적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 카메라 문화의 기반인 사진이 이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눈치 빠른 미술가들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그것은 이미지 생산의 차원에서 볼 때, 사진의 생산 속도는 기존의 회화나 조각보다 많이 빠르기에 정신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실시간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렇고, 미적 감각의 차원에서 볼 때도 카메라의 이미지 혹은 복제 이미지에 눈높이를 맞춘 관객에 호소하려면 사진 이미지가 훨씬 유리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진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작업은 전통의 창조적 배반임과 동시에 사진영역의 확장이지만, 화가나 조각가들과 같은 미술가의 입장에서는 타 장르의 배타적 도입에 가깝게 가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과 미술이 만나는 장소의 모습과 그 양상은 상당히 유사해서 구별 자체를 애매모호하게끔 만들거나 무의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그들은 톤의 완전한 재현과 기록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모더니즘 사진의 역사가 역설적으로 증명한 사진 매체의 존재론적 가치를 공유하게 된다.

중층적인 이미지에 관한 그들의 고민
그것은 다름 아닌 사진은 객관적이고 고정적인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 찍는 사람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하며, 실재를 그대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착색되고 역사적으로 각인된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이미지란 사실이다. 이런 고민은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의 사진가 혹은 미술가들에게도 예외 없이 다가온다.

사실 최근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불기 시작한 사진의 열풍을 보면 불안한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서양의 현대 미술이 온통 사진으로 채워지고 있고, 서양미술의 흐름에 워낙 민감하고 그 흐름에 뒤떨어지면 세계화의 무대에서 탈락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려온 우리들이지만 서양의 모더니즘 사진을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기에 그들의 사진작업 논리와 역사적 경과를 알 리가 없는 우리 미술계가 그런 논리에 바탕을 둔 서양의 현대사진에 열광하는 모습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사진의 자생적 능력과 사진가들의 작업이 크게 향상된 것이 그 이유라면 좋겠지만, 서양의 흐름에 맞추어 사진을 주목한다면 그것은 썩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박주석 / 명지대·사진기록학

필자는 중앙대에서  사진학을 전공하고 영국 에섹스대에서 서양미술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사진예술의 역사』,  『한국 사진의 한 세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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