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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길목을 지키는 조력자
[나의 강의시간] 길목을 지키는 조력자
  • 강한균 /인제대·국제경상학부
  • 승인 2008.03.17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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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날 즈음 학생들에게“질문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순간 강의실은 알지 못할 적막감이 돌았고 누군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교수님, 질문 없습니다”점심 시간을 앞두고 엉덩이가 들썩거리던 학생들은 단호하고 우렁차게 답했다. 100분 내내 학생들보다 훨씬 더 긴장했던 나의 첫 강의는 그렇게 학생들이 눈치 채지 못한 안도의 한숨으로 마무리 되었다.


28년 전, 주 세 시간의 통계학 강의를 위해 아마 서른 시간 정도 준비한다는 각오를 한 것 같다. 강의 첫 시간에 가장 두려웠던 것은 예측할 수 없는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만약 내가 답할 수 없는 것을 질문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무척 고민하였던 시절이었다. 젊은 열정과 설렘 속에 첫 강의를 시작한지 26년만인 2006년도 본교 인문·사회·예체능 계열에서 베스트 티칭 워어드를 수상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면도 있어 가끔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또 수상 이후로는 학생들이나 동료 교수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모니터링을 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강의에 대한 중압감을 느끼기도 한다.

명강의란 어떤 강의를 말하는 것일까. 수강생들에게 획일적으로 충족해 줄 수 있는 만능의 해법은 없는 것 같다. 가르치는 학문과 가르치는 사람의 학문적 특성이 다르고 배우는 학생들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가르침의 목표가 명확하고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이 가르침을 받는 사람에게 충분히 전달되는 강의가 훌륭한 강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 젊은 시절의 강의와 지금의 강의를 비교해 보면 교수 중심의 일방적으로 이뤄지던 강의에서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강의로 바뀌었다는 데 가장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의 강의에 필요한 몇 가지 비법은 많은 교수들이 나름의 경험으로 간직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강의와 교수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강의 경험을 감히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교수와 학생간의 신뢰형성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의사와 환자간에 신뢰가 있을 때 치료의 효과가 높아지는 이치와 같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꾸지람보다는 칭찬을 많이 할 때 강의의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둘째 사회과학의 경우 매일같이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대해 현실감을 가지게 하기 위해 시사적인 유인물을 수시로 준비하고 토의를 유도 하고 있다. 시험 출제 또한 전년도와 반드시 다르게 하며 강의는 쉽게 하되 시험은 다소 어렵게 출제해 학생들의 공부 범위를 넓고 깊게 하도록 한다. 더불어 학생 본인이 치룬 실제 성적보다 공시 성적이 상대적으로 잘 나왔다는 느낌이 들게 해 성적에 민감한 학생들의 불만을 다소 누그려 뜨리게 한다. 셋째, 반드시 학생들이 참여하는 조별 토론시간을 학기마다 2~3주 진행하며 개별 과제물은 가급적 창의적이고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하게 하는 다소 엉뚱한 주제를 선정한다.

넷째,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이해도가 낮은 학생들을 배려해 두 세 번씩이라도 설명을 반복해 준다. 말의 속도는 빠른 것보다는 다소 느린 것이 전체 이해도를 높이며 가급적 비유와 예시를 많이 들며 가끔 학생들에게 말과 필기의 속도가 너무 빠르지는 않는지 체크해 본다. 다섯째, 학생들 입장에서는 여러 과목을 수강하기 때문에 아무리 주요 과목이라도 강의 자체가 지루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강의시간 중에서 한번 쯤 웃음으로 긴장을 풀 수 있도록 하는 유머 혹은 여행담을 짧게 준비하기도 한다.


무엇을 가르치든 간에 가르침의 목적은 깨닫게(覺) 하는 것이고 깨달은 것을 바르게 행(行)하게 하는데 있다. 學이 없는 行은 빈약하지만 行이 없는 學은 공허하다고 하지 않는가. 명문 프로야구단 왕년의 4번 타자가 야구 방망이 대신 둔기를 휘두른 결과는? 배움[學]과 깨달음[覺]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바르게 행하지 못함은 한낱 인면수심의 사회죄악만을 낳을 뿐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지 않는가. 나는 오늘도 학생들의 능력을 키우고 반듯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길목을 지키는 조력자가 되고자 최선을 다해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강한균 /인제대·국제경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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