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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개국 735곳에 강좌 운용 … 지역별 접근 전략 고심할 때다
62개국 735곳에 강좌 운용 … 지역별 접근 전략 고심할 때다
  • 박수선 기자
  • 승인 2008.03.03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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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국학 연구 어디까지 왔나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는 여러 가지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우위를 보이기도 하지만 학문영역에서 ‘한국학’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학은 1960년대를 지나서야 ‘국학’에서 ‘지역학’의 한 분야로 정착됐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민족주의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 해외에서는 지역학의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해외 한국학 연구자들의 고민과 주문은 ‘한국학’ 활성화를 위해 좀더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들의 고민과 국내 지원 현황을 통해 해외 한국학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하바드 옌칭 연구소 산하 부설도서관에 한국부가 설립된 것으로 따지면 해외에 한국학이 소개된 지 50여년이 지났다. 본격적으로 한국학이 지역학으로 인정받은 것은 30년이 채 못된다. 2008년 현재 해외한국학 연구는 어디쯤 왔을까. 냉정하게 말하면 해외에서 한국학 연구는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한국어 강좌를 포함, 한국학 강좌가 개설된 대학은 62개국 735곳으로 추산되고 있다. 90년 32개국 151곳에서 한국학 강좌가 개설됐던 것과 비교했을 때 해외 한국학은 가파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학’ 담당 교수가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대학은 13개국 63개 대학이다. 교수 수는 88명이다.

양적으로 확대됐지만 지역학 위상 약해
한국학의 범위는 한국에 관련된 문학, 어학, 철학, 사학, 민속학, 예술,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등으로 넓게 볼 수 있다. 해외에서 한국학에 관심을 두는 분야는 지역별·대학별로 차이가 나타난다.
한국어 강좌 수요가 많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는 어학 분야 강세 현상이 두드러진다. 일본에서만 335곳에서 한국어 강좌가 개설돼 있다. 서아정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학사업부장은 “한류 열풍으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면서 “동남아시아 지역 한국어 학습자의 60~70%는 국내 기업 취업을 위한 목적이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지역에서 한국학은 아직까지 ‘지역학의 주변부’에 머무르고 있다. 독자적으로 한국학과가 개설되거나 세부 전공이 마련된 대학도 흔치 않다.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는 중국학, 일본학, 한국학 등 세부전공으로 나뉘는데, 교수 규모는 10배 차이가 난다.
정년이 보장된 한국학 교수는 더 찾기 힘들다. 이들 대학 측에서 한국학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미국 UCLA대학 등에서 한국학 강의를 해온 한 연구자는 “중국학과 일본학이 주류인 학과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면서 구한말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공부한 선조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유럽지역 사정은 더 열악하다. 얼마 전 한국학 강좌가 개설됐다가 폐지된 대학이 잇따르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영국 더램대학은 2004년 의과대학을 특성화 분야로 정하면서 동아시아학과를 폐지했다. 영국 뉴캐슬대도 2005년 수강생 부족과 대학 재정난을 이유로 한국어 강좌 문을 닫았다. 독일 튀빙겐대,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워싱턴대, 미국 메릴랜드대 등은 폐지 위기에 처했다가 기금 지원 등을 통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학생들의 관심도 낮은 형편이다. 심재훈 단국대 교수(중국고대사)가 2003년까지 예일대에서 ‘한국전근대사’와 ‘한국현대사’ 과목을 가르쳤을 당시 수강인원은 15~20여명 정도였다. 이마저도 한국계 학생이 대부분이고 서양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 교수는 “이런 현실을 두고 ‘왜 한국학을 이렇게 취급하냐’고 따진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면서 “세계화 시대에 한국의 위상이 이 정도라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속적인 학문 육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해외 한국학 지원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로 맡고 있다.
두 기관에서 해외 한국학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연간예산은 200억을 밑돈다. 일본이 연간 일본학 진흥을 위해 5천억원을 지원하는 것에 비하면 크게 못 미치는 규모다. 이 때문에  ‘선택과 집중’에 따라 효율적인 지원을 해야된다는 데 지원기관과 한국학 연구자 모두 공감하고 있다.

단기·분산 지원에서 장기·집중 지원으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해외 대학 교수직 설치 형태를 메칭펀드 형식으로 확대하고 있다. 메칭펀드는 해외 대학측에 일정정도 급여 등의 부담을 요구하고 이를 이행해야만 재단측에서 추가 재정부담을 지는 형태다. 서아정 부장은 “교수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대학측의 정책적 판단이 반영되는 부분”이라면서 “국내에서 지원해준다고 해서 가능하지도 않고 한국학 진흥을 위해 올바른 방향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해외 한국학 민간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 요즘에는 민간 기업 등의 지정 기부 제도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또 한국 전문가 육성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滯韓연구 펠로십이나 장학금 지원도 점차 늘리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지난 2006년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해외한국학지원사업을 이어받으면서 해외한국학중핵대학 육성사업을 시작했다. 해당 지역의 해외한국학 수준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중핵대학을 집중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중핵대학 신청 자격은 한국학 프로그램 전임 교원이 2명 이상이고 한국학 분야 대학원 학위과정 설치, 최근 3년 이내 한국학 관련 석사 또는 박사학위 수여 실적이 있는 대학으로 한정했다. 이에 따라 최근 2년동안 US 버클리대, 하버드대, UCLA대, 워싱턴대 등 6개 대학에 연간 2억원씩 투자하고 있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해외한국학지원실장은 “단기지원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해외에서 한국학 연구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면서 “자체역량을 통해서 해외 한국학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성과 평가시스템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학자들과 소통 시급
해외 한국학을 둘러싸고 해외 대학의 유인 요소 부족, 지원 규모의 영세성, 지역별로 차별적 전략 부재, 표준화된 교육의 부재 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해외 한국학이 빠르게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걸맞는 질적 발전은 미진하다는 평가다. 
특히 국내 한국학과 교류문제는 해외와 국내 한국학자간 인식 차가 큰 부분이다.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만남을 늘려도 ‘보이지 않는 벽’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게 해외 한국학자들의 진단이다.

미국에서 최근 한국대학으로 적을 옮긴 한 한국학자는 “언어의 장벽이 가장 큰 문제지만 역사학 분야에서는 국내 한국학의 민족주의 사관이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사를 전공한 외국인 한국학자가 국내 연구 논문을 살펴보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라면서 “양쪽 모두 서로를 무시하는 풍토가 이어진다면 결국 세계화 시대에 도태되는 것 국내 한국학자들이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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