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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는 ‘등에’… 영광은 저자·역자에게로
서평자는 ‘등에’… 영광은 저자·역자에게로
  • 강대진 /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고전 그리스 문학
  • 승인 2008.01.29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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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 한국 서평의 현주소]내가 생각하는 서평 즇 - 서평의 자리

서평집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책을 한 권 냈고, 지금도 이따금 서평 청탁을 받기는 하지만, 누가 나를 ‘서평가’로 소개한다면 꽤 어색할 것 같다. 사람마다 서평에서 바라는 바가 다르겠지만, 대체로 독자들은 서평을
읽음으로써 그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이 과연 정독할 만한(또는
구입할 만한) 책인지 여부를 알고 싶어 하는 듯하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당장의
대상이 되는 책뿐 아니라 그것이 속한 분야 전체를 조감하고, 이전에 나왔던 같은 분야 책들도 비교해주면 좋을 것이다. 그러자면
서평자에게는 분과 학문에 대해서 뿐 아니라 서지적으로도 상당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상적인 경우라면, 해당 분야에 어떤 책들이 나왔었는지, 각각의 책들이 주요
문제들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 이전
책과 새 책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비교,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 전공분야에 대해서조차 닥치는 일이나 겨우겨우 막는 정도의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애당초 내 ‘서평집’에 실린 글들도
책 전체의 가치를 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전공과 관련해서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대목을 지적하고, 앞으로 번역할 이들이 참고할 수 있는 일종의 ‘오답노트’를 제공하자고 쓴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서양고전 광고쟁이’거나 기껏해야 ‘초급선생’이지 ‘서평가’가 되기엔 한참 모자란다 하겠다.

그래서 나는 내 ‘서평’의 목표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하고 어떤 매체에든 그걸 기준으로 글을 쓰고 있다. 혹시 어떤 독자가 내 글에서 다른 서평에서와 같은 것을 기대하고 그 기대가 어그러졌다면, 그저 용서하시기 바란다. 나는 그런 기대를 채워줄 수 없는 사람이다.
한데 이런 종류의, 어떤 책의 틀린 점을 지적하는 글을 쓰다 보니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긴다. 내게 ‘평가’를 받은 저자나 역자의 감정 문제이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내게 항의한 분이
없었지만, 전하는 말에 따르면 나와 친분이 있는 역자 한 분은 섭섭한 감정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하고, 모르긴 해도 다른 분들 역시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이 오래 수고해서 내놓은 결과를 비판하기란 부담스러운 일이고, 저자나 역자가 서평을 읽고 가지게 될 상심과 노여움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찜찜하다. 그래도 책으로 나오는 원고에는, 대상이 되는 책의 장점과 저자나 역자의 수고를 거듭 언급하면서 내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문제되는 것이 신문에 실리는, 매 수가 제한된 글들이다.

특히 이런 글에서 다루는 범위가 넓거나 분량이 아주 많은 책을 평하게 되면 일이 고약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책은,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내릴 만하더라도 그 분량 때문에 실수
역시 많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 결과 ‘오답노트’의 양은 불어나고, 칭찬은 남 보기에 그저
형식적인 것으로 비칠 만큼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러면 저자나 역자는 상처를 받을 것이고, 독자 역시 나쁜 점이 훨씬 많은 책이란 인상을 받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나로서도 지면이
한정된 글에서는 칭찬을 좀 더 많이 하려고 하지만, 예를 들어가면서 문제점들을 지적하다
보면 어느새 지면이 꽉 차니 ‘악역’을 벗어나기는 번번이 실패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그저 저자나 역자들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사 부탁드릴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잔혹하게’ 쓰면서도 내가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있다. 그 하나는 우리말
표현에 대한 것이다. 내 서평들의 원래 목적이 서양고전에 대한 지식을 나누자는 것이니,
그 범위를 넘어서 문장에 대해서까지 지적하는 것은 일종의 월권인 듯도 하고 독자들도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을 듯해서다. 하지만 인문학을 업으로 삼고 글을 쓰는 분들이 잘못된
표현들을 사용하는 걸 보면 참 뭐라 하기도 딱하다. (얼른 떠오른 예로, ‘되어지다’나
‘정당화시키다’, ‘소위 말하는’ 같은 중복된 표현들이 있다.)

특히 번역자들께 차마 말 못한 다른 것이 있으니, 제발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춰달라는
부탁이다. 서양의 고대와 관련된 몇 가지 지식들 외에 내가 전파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 가지 습관이다. 나는 글을 쓰고 옮기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조심성, 그러니까 늘 전거를 확인하는 버릇이 퍼지기를, 아예 창궐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모든 글 쓰는 사람의 서가에 기본적인 고전작품들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내가 ‘고전’이라고 한 것은 범위를 넓히자면 한도 없이 넓어지겠지만, 서양 고대의 고전 중 가장 긴요한 것으로 호메로스와 비극작품들, 그리고 플라톤을 꼽을 수 있겠다(내 전공 밖이지만,
단테나 셰익스피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말 번역이 있는 것은 우리말 판을,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다른 외국어로 된 판본이라도
갖고 있어야지 결정적인 오류들을 피할 수 있다. 그저 자신이 보고 있는 책에 인용된 것을 혼자 힘으로 옮기려는 ‘자립심’에서 얼마나 많은 실수들이 나왔던가! 그런 장비도 없이 번역에 뛰어드는 사람은 무기도 없이 전장에 나서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차마 그렇게까지는 표현을 못했지만 나는 그런 이들을 보면 소리를 지르고 싶다. 대체 정신이 있는 것인지.

온전한 의미의 서평가도 못되고 그저 서평계의 말석에 겨우 낀 나로서는 서평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말하기 어렵다.
그냥 막연히 가진 생각을 말하자면, 우선 학자들의 서평이 좀 더 개성 있는 게 됐으면 싶다. 학자들이 쓴 서평의 가장 큰 특징은 글 짜임이 다 비슷하고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사실 논문들도 마찬가지인데, 학적인 글에서 무슨 재미를 찾느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서양고전학에서 필독의 논문으로 꼽히는 것 중에는 이따금 일상적인 일화에서 시작해서 아주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으로 나아가는 것들이 있다. 우리 학계에서는 그런 글을 보기가 어려운데, 전체적으로 학자 사회가 너무 엄숙한데다가, 근래에는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의 평가 기준에 맞추다보니 더욱 그렇게 된 게 아닌가 한다. 서평에서만이라도 독자의 읽는 느낌을 먼저 고려하는 색다른 글들을 보고 싶다.

다른 소망 하나는 자신을 따라 하라는 것 같아 말하기 좀 쑥스럽지만, 틀린 점을 서로
스스럼없이 지적하고 고쳐주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틀린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기 쉬우니, 그대로 두면 다음에도 같은 잘못을 반복할 텐데,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기 위해 너무들 몸을 사리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구나 모르는 것도 있고 이따금 틀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무 악의도 섭섭한 감정도 없이 지적을, 지식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서평이 나아갈 길을 논하는 것은, 곧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것이리라. 하지만 좋은 서평보다는 좋은 책이 나오는 게 더 중요하고, 서평가보다는 저자나 역자가 더 소중하다. 나 같은 종류의 서평자는 일종의 ‘등에’로 저자나 역자들을 괴롭혀서 조심성을 불러일으키는 게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래도 내 ‘침에 쏘인’ 분들께 늘 미안한 마음이다. 저술이나 번역에 들어가는 노력에 비하면 서평자의 수고란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내 서평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노력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책을 쓰거나 번역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던데, 사실 (다른 서평가들까지 끌고
들어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서평은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고 그다지 큰 재능이 필요한 작업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거의 모든 책이 좋은 책이고, 영광은 저자와 역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전공이 같은 동료들과 서로 이런 저런 책에서 발견한 황당한 실수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보면, 항상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다 우리 잘못이다.” 우리 서양고전 전공자들이
분발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그것을 알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은 해당 분야 전공자들의 공동의 노력일 것이다. ‘서평자’로 글을 시작해서 ‘연구자’로 글을 맺으려니 좀 쑥스러운데, 어쨌든 좋은 서평보다 좋은 책이 먼저고, 연구와 분발이 그 앞이다.

강대진 /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고전 그리스 문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전투장면의 구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잔혹한 책 읽기』라는 서평집과 『신화와 영화』, 『고전은 서사시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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