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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서둘러 학과(부) 명칭 변경한 속내에는
대학들 서둘러 학과(부) 명칭 변경한 속내에는
  • 교수신문
  • 승인 2001.12.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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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03 08:48:06
시장 원리에 의해 대학의 학사 구조가 개편되고 운영됨에 따라 기초학문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는 가운데, 상당수의 대학들이 학과(부)의 명칭을 바꾸고 성격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선택, 기초학문의 붕괴가 점차 현실화돼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내년부터 새로운 학과(부)명으로 신학기를 시작하는 학교만 해도 전국 4년제 대학 중 강릉대, 건국대, 경희대, 대전대 등 무려 50여개 대학이다.

우선 단순히 이름만 바뀌는 학과(부)들이 있다. 이때의 명칭 변경은 학과(부)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보전자통신공학부를 IT학부로 바꾸는 경우에서처럼 대중성이 높고, 좀더 호감이 가는 명칭으로의 단순한 전환을 의미한다. 이미지 개선의 차원에서의 명칭 변경이다.

기초학문 위기 현실화


그러나 학과(부)의 교육 목표의 전환과 교과 과정의 전면 개편을 의미하는 곳도 상당수에 이른다. 경제학과가 디지털 경제학과로 바뀐 대진대, 화학과가 응용화학과로 바뀐 서경대, 물리학과가 컴퓨터응용물리학과로 바뀐 한서대, 문예창작학과가 미디어문예창작학과로 바뀐 가야대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2002학년도 1학기부터 학과명칭이 물리학과에서 컴퓨터응용물리학과로 바뀌게 된 한서대 물리학과의 한 교수는 단도직입적으로 “학과 명칭이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이 안 오기 때문”이라면서 “교과과정을 대폭 개편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물리학에 대한 기초지식을 가르치면서 컴퓨터를 다룰 수 있게 하면, 경쟁력도 생기고 졸업후 학생들의 진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부분의 사립대는 수지 타산만을 생각하며, 수지가 맞지 않는 학과는 존속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지금 대학은 확실히 취업양성소로 전락했다”며 실용성만 추구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내년 1학기부터 한국문화사학으로 바뀌는 대전대 역사학과의 학과명칭 변경도 이와 비슷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동양사와 서양사를 전공하는 것이 학생들의 진로 문제를 전혀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 이로 인해 이 학과는 역사학 중에서 한국사를 중심에 두고, 문화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학과로 개편하기로 결정했다. 김갑동 역사학과 교수는 “문화 관광학, 박물관학, 문화예술사학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교육이 문화예술 계통으로 학생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라며 “시대적 요구를 담아낸 한 시도로 봐달라”고 말했다.

최병환 대전대 교수(철학과)도 할 말이 많다. 철학과는 내년 1학기부터 영상철학과로 명칭이 바뀔 예정이다. 최교수는 “영상철학은 영상매체를 통해서 철학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학문이다. 방법적인 차원에서 시대적인 조류에 맞췄다”며 “물질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풍조로 인해 기초학문이 소외되고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최 교수는 “근래에 두드러지기 시작한 기초학문분야의 위기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주도적으로 시행한 학부제에 많은 부분 책임이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의하면, 경쟁력을 높이고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활성화시킨다는 미명아래 시행된 학부제는 학문의 질을 형편없이 떨어뜨렸으며, 순수 기초 학문들은 폐강되게 하거나 폐강의 위기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말하자면 교육부의 파행적인 교육개혁으로 인해 수학, 철학, 역사학, 물리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등의 기초학문은 이제 컴퓨터나 영상 매체와 밀월을 즐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

시대적 요구 반영


학과 명칭 변경의 이유에 대해 조윤기 대진대 교수(경제학과)는 “그동안 경제학과는 순수학문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으며, 서용규 가야대 교수(문예창작학과)는 “전통적으로 시·소설·희곡은 수요자가 매우 적으며, 아주 뛰어나지 않는다면 문학이 직업이 되기 힘들다는 현실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대진대 경제학과는 컴퓨터 활용능력을 중시하는 ‘디지털경제학과’로 바뀌며, 가야대 문예창작학과는 시인, 소설가뿐 아니라 애니매이션 작가, 게임 작가, 가상 현실 작가 등의 전문 미디어 문예 창작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삼는 ‘미디어문예창작학과’로 개편된다.

이러한 기초학문 분야의 명칭 변경을 두고 기초학문 분야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거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진단과 이같은 상황이 대학 교육의 질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할지에 대해서는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다는 지적이 서로 엇갈리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대학들이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성격이 강한 쪽으로 서둘러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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