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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독지가 아닌, 좋은 기계 만들고 무소유 실천할 뿐”
“따뜻한 독지가 아닌, 좋은 기계 만들고 무소유 실천할 뿐”
  • 박상주 기자
  • 승인 2007.12.17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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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 23년간 대학발전기금 약정한 한승무 경희대 교수

“저는 휴머니스트도, 근검절약해 남을 돕겠다는 사람도 아닙니다.” 한승무 경희대 동서의료공학과 교수(43세, 사진)는 인터뷰 내도록 한사코 ‘따뜻한 독지가처럼 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단지 “무소유하자는 생각을 실천할 뿐”이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지난달 27일 조인원 경희대 총장에게 매년 1억 원씩 발전기금 출연을 약속했다. 약정기간은 정년까지 23년간. 연봉으로 따지면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훨씬 많은 셈이다. 한 교수는 “1억 원은 상징적인 수일 뿐, 저는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의료기기 관련 13개의 특허를 가지고 있다. 기금은 특허료 등과 연봉을 합해 낸다.
한 교수의 사회 기여는 특허료 기부보다 좋은 기계를 만들어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있다. “더 좋은 의료기기로 사람들이 더 나은 생활을 하면 자연히 돈도 벌게 되고, 그 돈으로 기부를 하는 거죠.”

한 교수는 6살배기 자식을 두고 있다. 자식에게는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을 거라고 했다. 대신 공부하는 데는 어려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을 구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지요. 하지만 유산을 남겨 도와줄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도 책만 수백 권 보여줄 뿐입니다.”

한 교수는 자신의 말 그대로 경북 영천의 ‘깡촌’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 탓에 공고를 갔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미국 유학까지 마쳤다. “돈은 없지만 의지는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한다고 마음먹으면 해야지요.” 당시 미국 뉴욕주립대 등록금은 6백여만원. “첫 학기 등록금이 없어 아는 모든 사람에게 돈을 부탁했는데 모으기가 어려웠어요. 그 때 든 게 ‘사람들이 참 돈을 사랑하는구나’라는 생각이었어요.” 한 교수는 돈 말고 다른 무엇을 사랑하기로 작정, 가난한 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신 내줘왔다. ‘도움 받은 학생들 중 찾아오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교수는 “보람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고, 오히려 괘씸한 것도 있지요. 하지만 기부하는데 훗일을 생각하면 못합니다. 제가 좋아해야지요.” 한 교수의 발전기금은 경희대 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인다.

정작 한 교수는 ‘독지가’를 만난 적이 없다. 대신,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 겨울이었는데 토요일이라 오갈 데가 없었어요. 그 때 잠자리를 준 한인교회나 등록금 벌려고 시장통에서 장사할 때 오가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던져주는 격려의 말이 큰 도움이 됐지요.”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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