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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노조] 출범 그 이후
[교수노조] 출범 그 이후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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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과 과제-영남권, 기대밖 참여 저조…교수권익 직접 챙겨야
지난 11일, 교수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초겨울의 매서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당일 출범식은 옥외에서 치러졌다. 서울대가 뒤늦게 행사장 불허를 통보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앞으로 교수노조가 겪게될 험난한 여정을 상징하는 풍경이었다. 현행법상 불법 단체이고 보면 합법화를 이루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교수들의 동참을 끌어내는 일 또한 중요하다. 교수노조 출범에 대한 안팎의 시각과 현황과 과제를 집중 진단해 본다.

박 아무개 서강대 교수는 얼마 전 교수노동조합에 참여하자는 주변 교수들의 요청을 한마디로 거절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학계에서 진보적 사회학자로 통하는 그이지만 교수노조에는 거부감을 나타냈다. 왜 그런가. 심정적 동의와 개인적 참여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 그의 논지. 새로운 실험에 나선 교수노조가 겪고 있는 가장 힘든 문제는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바로 교수들 자신에게 있다.

출항한 교수노동조합(위원장 황상익 서울대 교수)이 넘어야 할 거친 파도는 즐비하다. 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합법화이지만 당장에 성사되기는 어려워 지난한 과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토론이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지만 공무원노동조합 문제에 묶여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고, 국회에 입법 청원을 낸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렇다할 반응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사실 합법화 이전에 교수노조가 가장 먼저 풀어야 문제는 부진한 교수들의 참여를 어떻게 끌어내느냐는 일이다. 그것이 합법화의 길을 여는 열쇠이며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교수들간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신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이 ‘합법화’되면 가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와 요인으로 인해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는 교수는 소수다. 아직 절대다수의 교수들이 대학의 형편과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심정적으로는 지지를 나타내면서도 조합원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은 꺼려하고 있다. 교수노조가 ‘합법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심정적 지지불구 ‘조합원’ 가입은 꺼려

출항당시 승선한 교수는 1천4명. 전문대까지 포함해 7만 명에 가까운 전체 교수의 규모를 감안할 때 1천4명은 소수임에 분명하다. 교육부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노조를 바라보는 것은 대표성이 의심스런 이유도 적지 않다. 발기인 현황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제주지역이 2백45명(30개 대학)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경기·인천 2백5명(18개 대학), 전북 1백14명(11개 대학), 광주·전남 99명(7개 대학), 강원 86명(8개 대학), 부산·울산·경남 85명(14개 대학), 대전·충남 70명(11개 대학), 충북 65명(4개 대학), 대구·경북 35명(10개 대학) 순이다. 영남권 교수들의 참여가 부진하고 서울·경기지역 교수들의 참여가 비교적 높은 것이 특징이다. 수도권지역 교수들의 참여가 높은 것은 분쟁을 중인 대학들의 교수들이 분쟁해결의 단초로 교수노조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참여하고 있고, 한신대·성공회대 등 비교적 진보적 성향의 교수들이 많이 분포된 대학의 참여가 높기 때문이다.

대학의 설립유형별로 보면 80%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 교수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전체적인 참여율은 저조하다. 발기인 중 4년제 사립대 교수가 49%, 4년제 국립대 교수가 27%, 2년제 사립대 교수들이 11%, 2년제 국립대 교수들이 13%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학문분야별 분포로 보면 인문사회계 교수가 61%로, 자연공학계 교수(20%)보다 월등히 많다. 현재 지회가 결성된 대학은 가톨릭대, 서울대, 중앙대, 한신대, 서원대 등을 비롯해 총 13개교.

젊은 사립대교수들, 나설까 말까

발기인 구성만 놓고 보면 신분이 안정되지 않은 젊은 교수들의 참여가 부진하고, 그나마 형편이 나은 연세대, 고려대 등 유명 사립대 교수들의 참여가 극히 미미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과)는 “교수노조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이들이 젊은 교수들이지만, 신분불안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고려대의 한 교수는 “대학의 정서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참여를 하고 싶어도 학과내 선배 교수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마음은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속박이 결국 교수들의 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교수를 속박하는 것은 교수인 셈이다.

이 점에서 교수노조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 정기총회에서 진재구 청주대 교수(행정학과)는 사립대 교수들의 교수노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단상에선 최갑수 교수노조 준비위원장(서울대 서양사학과)에게 뼈있는 조언을 던졌다. 그는 “국립대 교수와 달리 사립대 교수들은 신분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만약 사립대 교수들의 참여 폭을 넓히겠다면 그 정서를 먼저 이해하고 한 대학의 분쟁사태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부터 노조가 할 일은 지난한 실천운동이다. 심정적 동의를 보내면서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교수들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천활동을 통해 그들에게 다가갈 길 뿐이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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