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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오페라의 역사에 주목하는 까닭
지금, 오페라의 역사에 주목하는 까닭
  • 이남재 / 한국교원대·음악학
  • 승인 2007.12.03 13: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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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_ ‘오페라로 읽는 서양 근대의 편린’ 연재를 시작하며

20세기 초반 케임브리지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쳤던 에드워드 덴트가 쓴 『오페라』라는 소책자의 첫 장은 왜 영국에서 오페라가 계속 상연되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가득 채워져 있다. 17세기 말과 18세기 전반에 퍼셀과 헨델의 오페라들을 산출했고, 코벤트 가든, 새들러스 웰즈를 비롯한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들이 엄존하는 영국에서 이와 같은 정당화가 필요했다면, 오페라 자체를 접한 연륜이 일천한 우리나라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미 자리를 잡은 ‘예술의 전당’의 오페라 극장을 필두로 각지에 오페라를 제대로 상연할 수 있는 극장들이 속속 개장돼 오페라에 대한 관심 또한 늘고는 있지만, 아직 오페라가 일상적이라고 하기에는 적지 않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현실을 감안해, 오페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기획됐다. 이번 연재에서는 오페라 탄생의 근원부터 시작해 주요 작품들을 시대 순으로 살펴보는 연대기적 방법을 취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현존하는 최초의 오페라가 공연된 1600년이 많은 사람들이 서양근대의 시발점이라고 공통적으로 여기는 17세기를 여는 해라는 시간적 일치에 착안해, 뒤따르는 오페라들을 각 지역과 시대의 산물이라는 측면에 중점을 두고 하나씩 살펴본다. 

1589년 피렌체 메디치가의 결혼 축하 인테르메디오 기록에 남겨진 ‘아리엘’의 모습. 피렌체인들은 ‘독창’의 의미를 깊이 인식한 예술가들이었다.

가톨릭 지역의 오페라 전통 재발견
오페라의 역사를 훑어본다는 것은 반동 종교개혁 이래 가톨릭 지역의 역사를 따라가 본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세기 독일 오페라가 출현함으로써 약간 수정될 필요가 대두됐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명제는 21세기에 와서도 그 타당성이 근본적으로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덴트 교수의 오페라를 위한 변명도, 영국에서 18세기 헨델의 오페라에 대한 비난이 ‘팝피스트(Popist)’, 즉 교황파적인 예술 형태였다는 이유로 퍼부어졌었다는 역사적 맥락 때문에 필요했으리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개신교 지역과 가톨릭 지역의 오페라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얼마나 골이 깊은가를 더욱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 음악을 독일, 영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튜튼계를 통해 주로 받아들였던 우리 입장에서는 오페라와 가톨릭, 그리고 라틴 지역 사이의 존재하는 이러한 끈끈한 문화적 동질성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오페라도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러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문화적 차이를 와인과 맥주에 비유해 설파한 바 있는데, 와인 향이라는 말은 있어도 맥주 향이라는 말은 쓰이지 않듯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는 풍기는 향기의 유무와 강도로 비유될 수 있으며, 음악에서 이러한 차이는 오페라와 교향곡으로 상징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일본과 미국을 통해 주로 독일어권 기악 음악 위주의 서양 음악을 접해온 우리의 편향된 상황을 잘 드러내 주는 말이 바로 누구에게나 친숙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별칭 ‘음악의 아버지’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누군가 이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18세기 전반에 활동했고 오페라를 작곡한 적이 없는 바흐보다 훨씬 앞선 1600년 무렵 처음 등장한 오페라의 작곡가들은 음악의 족보상 어디에 해당되는가 하는 엉뚱한 질문마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말이 원래 베토벤의 ‘Urvater der Harmonie’, 즉 ‘대위법의 원조’라는 말의 투박한 번역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 말에 함축된 가톨릭 지역의 오페라 전통 따위는 무시해 버려도 된다는 뉘앙스는 유럽 문화의 균형 잡힌 이해를 도모하려는 입장에서 볼 때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이처럼 일방적으로 유럽의 개신교 지역 및 영어권 나라들의 눈으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만 집중해 온 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서양 근대에 대한 바람직한 이해와 수용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돼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계몽주의의 뿌리가 무엇이며 어떠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어떠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애썼던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선 상황들에 대한 철저한 고찰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노력 없이 계몽주의 이후 맺어진 서양 문명의 열매만을 배우고 익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성급하고도 얄팍한 공리주의적 태도만으로는 지피지기를 통한 진정한 서양 극복이 아니라 막연한 동경과 이에 수반되는 은근한 반감만이 교차되는 반영구적인 종속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오페라가 처음 공연됐다는 것 자체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 앞서 성행했던 궁정에서의 축하행사를 이루는 여러 다양한 종목들과 새로 창안된 오페라가 과연 어떤 점에서 다른 지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이다. 니노 피로타는 그 차이점을 전체 행사를 이루는 여러 단편적인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서가 아니라 자체 완결적인 줄거리를 추구하는 데 있다고 했는데, 이는 체스털슨이 설파했던 ‘오페라는 다른 기존의 여흥들처럼 원무를 추듯 그저 한 자리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경주를 하듯 뚜렷한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간다’는 말과도 많은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오페라의 특징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들이 바로 개인의 특성을 논할 때 사용되는 용어들과 공통적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오페라가 탄생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특히 1600년이 조르다노 브루노가 화형 당했던 바로 그 해라는 점을 기억할 때,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이행하는 과정이 결코 순조롭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한다.
결국 오페라의 새로운 점은 劇을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특징이 실은 그리스 비극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하지만, 이것이 바로 오페라가 살아남는 특징이 됐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오해’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밀접하게 연계된 또 하나의 특징은 이러한 노래가 거의 독창으로 진행됐다는 점인데,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독창 위주의 노래 구성도 마드리갈이라는 다성 실내악곡이 중심적 장르였던 당시의 상황에 비춰볼 때 매우 획기적이고 근본적 변화였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마드리갈을 실내악곡이라고 한 이유는 각 성부를 한 사람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에도 적혀 있듯이 르네상스 시대에 궁정에서 행세하기 위해서는 현악기인 류트를 연주하는 것과 악보를 읽을 줄 알아 마드리갈을 부르는 데 어려움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기본적인 덕목이었다. 우리 옛 선비들이 거문고 연주를 기본으로 여겼던 것을 연상케 하는 이러한 다성 마드리갈의 전통은 16세기 말 ‘마드리갈 코메디’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글자 그대로 마드리갈로 진행되는 연극이라는 의미의 이러한 형태와 오페라의 근본적인 차이는 결국 중창과 독창의 차이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는 동등한 음악적 내용을 가지는 다성 실내악곡을 구태여 독창곡으로 변형시켰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보다 구체적인 음악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제 다음 글로 넘겨야 하겠지만, 오르페오의 신화가 보여주는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만큼 마술적인 힘이 넘쳤던 고대 그리스의 음악에 비하면 자신들의 음악이 너무도 무력하다는 것을 절감했던, 오페라를 창안하는 데 힘을 모았던 피렌체 사람들이 이러한 차이가 독창과 중창의 차이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만은 지적해 두기로 하자. 당시 유행했던 다성 중창이 가사를 분산시켜 언어의 주술적 효력을 저해했다고 믿었던 이들은 언어의 주술력을 최고로 높이기 위해 독창을 사용하면서도 다성 음악과 동등한 풍부한 음향을 그대로 살려내기 위해 나머지 성부들을 악기로 연주하는 해법을 도출해 냈던 것이다.

균형잡힌 서양 근대의 윤곽을 그리다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해 이번 기획을 ‘오페라로 읽는 서양 근대의 편린’이라고 붙였다.  오페라를 위시한 그 어떤 예술 장르도 인간 사회를 이끌어 간 적은 없었지만, 최소한 이를 산출한 시대와 장소의 모습을 단편적으로나마 담고 있다고 믿기에 ‘편린’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해 보았다. 비록 빈틈 많고 이 빠진 데가 많은 어설픈 모자이크에 지나지 못하더라도 서양 근대의 윤곽을 전보다 조금은 더 균형 잡히게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미력을 기울이려 한다.


이남재 / 한국교원대·음악학


필자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텍사스대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파우스트와 음악’, 『17세기 음악』 등의 논저가 있다.

 

 

연재 순서

1. 오페라의 탄생 : 1600년 피렌체를 둘러싼 이야기들
2. <오르페오>와 <돈 키호테>
3. 로마의 바르베리니 극장과 <산 알레시오>

4. 베네치아의 산 카시아노 극장과 몬테베르디 
5. 카발리와 마자랭 추기경
6. 루이 14세와 륄리의 <아르미다>
7. 비엔나의 <황금 사과>
8.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과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9. 퍼셀의 <디도와 에네아스>
10. 헨델의 <리날도>와 <메시야>
11. 라모의 <화성론>과 <입폴리트>
12. 메타스타지오와 비발디
13. 프리드리히 대왕과 그라운의 <클레오파트라> 
14.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
15. 엑스 라 샤펠 조약과 루소의 <마을의 점장이> 
16. 글룩의 개혁
17. 하세와 모차르트
18. 모차르트의 오페라 세리아
19. 모차르트의 징슈필
20.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
21. 하이든의 오페라들
22. 베토벤의 <피델리오>

23. 베버의 <마탄의 사수>
24. 베를리오즈의 <벤베누토 첼리니>
25. 마이어베어의 <청교도>
26. 벨리니의 <노르마>
27.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28. 로시니의 <윌리엄 텔>
29. 베르디의 초기 오페라
30. 베르디의 중기 오페라
31. 베르디의 후기 오페라
32. 바그너의 낭만 오페라
33. 바그너의 음악극
34.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35. 비제의 <카르멘>
36. 차이코프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
37.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38.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
39. 드보르작의 <루살카>
40. 야나첵의 모라비아 오페라들
41. 푸치니의 이태리 오페라들
42. 푸치니의 이국적 오페라들
43. <팔리아치>와 <카발렐리아 루스티카나>
44.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45. 바르톡의 <푸른 수염의 성>
46.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
47. 베르크의 <보첵>과 <룰루>
48. 거쉬인의 <포기와 베스>
49. 스트라빈스키의 <탕자의 편력>
50.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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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 2007-12-13 13:03:01
오페라의 음악적 특징 뿐 아니라 시대와 문화, 역사까지 엮여 있는 종합적 시각의 글을 통해 오페라의 진면모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