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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진화의 패러다임이다
문제는 진화의 패러다임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07.12.0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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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프리뷰]『의학의 진실 』 데이비드 우튼 지음 ┃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7

『의학의 진실』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20세기까지 서양의학의 거의 모든 시기를 다루는 역사책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전례 없는 건강이 오랫동안 끊임없는 발전돼온 의학 때문이라고 믿는 독자라면 이내 실망하고 말 것이다. 첫 장에서부터 저자는 의학이 (사람들을) 어떻게 죽였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 제목은 ‘나쁜 의학: 히포크라테스 이후 해를 끼쳐온 의사들’이다.
그렇다고 질병과 의학을 각 시대의 사회적 상황의 구성물로 보는 구성주의자나 문화 상대주의자를 만족시키지도 못한다. 저자는 곧이어 이 책이 의학의 ‘진보’에 관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학이 환자에게 해악만을 끼쳤던 시기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시기의 경계선을, 조지프 리스터가 최초의 방부수술을 통해 치명적인 수술 후 감염을 예방할 수 있었던 1865년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건강수준이 향상되는데 있어, 세균설에 기반을 둔 현대의학이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는 토마스 매큐언(『의학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과 정확히 반대되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는 성공보다는 실패의 역사를 쓰고자 하지만, 그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 한에서만 유용하다. 실패는 ‘지체’된 성공일 뿐이다. 그가 푸코의 에피스테메보다는 비교적 삶의 맥락에서 자유로운 쿤의 패러다임을 선호하는 것도, 의학을 이론과 실천으로 분리된 하나의 ‘과학’ 활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의 역사는 잘못된 이론을 버리고 올바른 이론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올바른 이론(세균설)은 환자를 구하지만 잘못된
이론(체액설)은 환자를 죽인다. 히포크라테스가 서양의학의 시조이기는 해도 그의 이론이 현대적 관점에서 전혀 인정할 수 없는 4체액설인 한 ‘나쁜 의학’일 뿐이다.
그는 의학의 진보가 정체됐던 여러 시기를 다루는데 주로 시대를 앞선 선구적 업적과 그 업적의 가치를 알지 못한 채 진보를 가로막았던 시대의 심리가 대조된다. 전통에 물든 심리와 문화현상이 보편적 과학인 의학의 진보를 가로막는다는 거다. 그는 이렇게 진보가 정체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하는데 그중 하나가 “질병이 아닌 환자를 생각하는 경향”이라고 한다. 이것은 히포크라테스 시대는 물론 현대 의학에서도 강조해 마지않는 교육목표인데, 그는 이를 진보를 지체시킨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자칫 의학의 진보를 위해서는 환자보다는 질병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던 한 세기 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바로 이 점이 수많은 유용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우튼은 의학의 위대한 발견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실존적 머뭇거림이 한 인간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례를 설명하지도 못한다. 이천년 이상 받아들여져 오던 상식을 깨고 혈액이 순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하비는―자신의 이론에
충실하려면―당연히 피를 뽑는 사혈치료를 중단했어야 하지만, 끝까지 사혈치료를 애용했다고 한다. 우튼식으로 설명하면 혈액순환의 진리를 발견한 위대한 의학자 하비는 자신 속의 심리와 문화를 극복하지 못한 채 환자에게 해를 주는 나쁜 의사로 남았다는 말이 된다. 우튼이 신봉하는 진보의 관점에서는 논리적으로 좋은 의학과 나쁜 의사가
공존할 수 없다. 그러나 건강-질병과 관련된 지식과 실천의 체계를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모듈로 이해한다면 그 둘이 공존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나는 이 모듈이 지식의 체계인 學, 실천의 체계인 醫術, 그리고 가치의 체계인 醫德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혈액순환의 발견은 이 중 學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혁명이지만 수천 년을 이어온 術과 德을 포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학문적으로는 혁명이지만 醫의 장면 전체를 바꾸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의학적 발견 이후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그 지식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기까지의 시간이 지체로 보이는 것은 의학과 의술을 직선적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튼이 좋은 의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1865년 이후 140여년이 흐른 지금 醫의 풍경은 당시의 잣대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발전의 방향이 보이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각축을 벌이며 선택되거나 버려지는 ‘진화’의 양상이다. 140년 전에는 감염병이 대부분의 삶과 죽음을 결정했지만 지금은 암, 뇌졸중, 심장병, 자가면역질환 등 유전, 면역, 대사성 질환이 주류를 이룬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쿤 식으로 말한다면 이제 진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다양성 속에서 새로움이 창조되는 진화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강신익 / 인제대·의철학

필자는 영국 웨일즈 스완시대에서 ‘문화로서의 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몸의 역사, 몸의 문화』, 『의학 오디세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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