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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 봉사 위해 이발사 자격증 딴 이재석 교수
[호모루덴스] 봉사 위해 이발사 자격증 딴 이재석 교수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1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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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26 17:04:41

이재석 대구가톨릭대 대학원장(63세)은 주말마다 고향인 경북 청도에 간다. 주말마다 가는 것도 모자라 1년에 두 번 오는 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혹시 그럴싸한 별장이라도 지어놓았거나, 무슨 좋은 것이라도 숨겨놓았나 하는 의심을 살 만 하지만, 주말에 고향 가는 그의 손에 들린 짐은 낚시가방이나 골프가방이 아니다. 그가 꾸린 단출한 짐 속에 든 것은 다름 아닌 이발기구. 그는 작년부터 고향 노인들의 머리를 매만지는 일을 하고 있다.

‘청도군 전용 미용사’인 그가 무면허 이발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오해다. 그는 올 4월 이용 실기시험에 합격해 당당히 ‘이용사 자격증’을 따냈다. 학과 시험에 합격한 작년 10월에 이어 6개월만의 일이다. 노후 대비 걱정도 없어 보이는 대학원장이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용사 자격증을 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을 믿고 머리를 내맡기는 노인들을 위해서였다.

“버스로 30리 길을 가야 이발소를 만날 수 있는 노인들은 누군가 찾아와서 머리를 깎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기뻐합니다. 이왕이면 ‘자격 있는’ 사람에게 머리를 맡기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아닙니까. 깎이는 사람이 기분 좋아야 깎는 사람도 기분 좋지요. 그래서 자격증을 따야겠구나 싶었지요.” 그가 본격적으로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 것은 작년에 ‘늙은 제자’ 하나가 학교로 편입해오면서부터. 대구 시내에서 큰 미용실을 운영하던 그 제자를 이 교수는 1년 동안 ‘따라다니며’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았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알아보는 법인지, 그 제자 역시 고아원에 이발 봉사를 하러 다니던 이였다. 제자를 따라 꼬맹이들 머리 깎으러 다니다가, 그는 힘없고 길 멀어 덥수룩한 머리칼을 어쩌지 못하고 사는 고향 어르신들을 떠올렸다.

 
“사람에게 머리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아무리 편리한 세상이라도, 머리 깎는 일은 사람 손 아니면 안 되는 일이지요. 낯선 사람이 와서 머리 만진다고 하면 거부감을 갖다가도, 말끔히 만져주면 모두들 좋아하거든요.”이 교수는, 한술 더 떠서 앞으로 중국요리를 배울 작정이다. 그 이유가 “자장면 만드는 법 배워서 시골 아주머니들한테 한 그릇씩 돌리고 싶어서”라니, 그야말로 타고난 ‘봉사꾼’이다. 작정해서 하는 봉사가 아니라, 놀이처럼 즐겁게, 흥에 겨워하는 봉사는 그의 말대로 봉사가 아니라 삶의 기쁨이다. 부인과 함께 나들이하듯이 주말마다 고향으로 가는 이 교수는 어렵게 배운 이발기술을 평생 쓸 참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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