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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생의 연구' 향한 초심 간직해야
'필생의 연구' 향한 초심 간직해야
  • 교수신문
  • 승인 2007.10.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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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교수가 신임교수에게 3. 김정근 부산대 명예교수 문헌정보학

교정에서 신임 교수를 만나 얼굴을 마주보며 악수를 해보면 전해져오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나는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한다. 상대는 으레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학문이란 이런 식으로 시간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가는 그 무엇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고맙고 안심이 된다.

신임 교수를 채용하는 과정에 참여해보면 후보자는 첫 직업을 구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오랜 준비 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하게 된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요새는 거의 다 40세 전후가 되어 후보군에 오른다. 후보자는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약간의 운이 따르면 이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초임의 영예를 안게 된다. 이런 직업이 다른 데 또 어디 있는가.

채용 과정에 발표와 면담 시간이 있다. 이럴 때 자리를 함께해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면 후보자에게는 생애를 건 연구과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필생의 대사업을 말할 때 어떤 후보자는 흥분과 자신감 속에서 자신의 과제는 ‘세계적 업적’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런 것을 참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초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후보자/초임자는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신임 교수가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초심을 유지하는 가운데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중요한 업적을 쏟아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편, 이와 같은 나의 바람 한 쪽에는 무언가 불안하고 염려되는 요소 또한 도사리고 있다. 이것은 나의 오랜 캠퍼스 경험에서 오는 것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지금 신임 교수를 맞는 캠퍼스의 분위기는 말의 이미지처럼 그렇게 조용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곳곳에 유해 요소가 숨어 있어서 신임 교수가 길을 걸을 때 걸고넘어진다. 지금 신임 교수의 여리고 낙관적인 입장에서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은 어느 의미에서 캠퍼스는 바깥 세계 못지않게 공해가 심하다. 사려 깊게 운신할 필요가 있다.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맨 처음 신임 교수의 초심을 흔드는 것이 이른바 프로젝트의 유혹이다. 여러 재단, 단체, 기관의 후원을 받아 연구와 용역을 수행하는 형태이다. 돈이 개입된 문제이므로 여러 가지 형편과 사정이 있는 신임 교수로서는 심한 갈등을 겪게 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대개 고민 끝에 초장부터 프로젝트에 손을 대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다.

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다 나쁘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잘만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 면이 있을 것이다. 또한 정황으로 보아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신임 교수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드러나는 특징적인 현상이 그가 일찍이 품었던 필생의 연구과제가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선배나 동료가 주축이 되는 프로젝트에 편입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자신이 주도하여 수행하는 경우도 초지일관하기가 어려워진다. 처음의 논제가 채택되지 않았을 때 논제를 바꾸어 신청하고 이것을 거듭하는 것을 보면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있다. 초심을 한번 양보하고 두 번 양보하다보면 나중에는 자신도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프로젝트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초심을 유지하며 필생의 연구 과제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것이 신임 교수 앞에 나타나는 최초의 유혹이자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신임 교수의 지혜로운 관리를 당부하고 싶다.

김정근 / 부산대 명예교수 문헌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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