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8:45 (토)
학문·지역따라 사정 제각각 … 아이템 있어도 발 동동
학문·지역따라 사정 제각각 … 아이템 있어도 발 동동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7.10.15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구원 2만명 시대 _② 대학 연구소의 고민

‘대학부설 연구소 2천900여개, 전임 연구원 규모 1만9천100여명.’ 계산하면 한 대학 연구소당 7명의 전임 연구원이 근무하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전임 연구원이 10명 이상 근무하는 ‘잘 나가는’ 대학 연구소가 있는 반면, 이름만 걸어놓고 이렇다 할 연구 활동을 하지 않는 곳이 상당수다.

연구원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대학 연구소 양극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로 선정돼 지원을 받는 곳은 연구원 모집이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연구원을 모집할 엄두를 내지 못 한다. 
일부 대학 연구소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자생력을 갖춰 나가고 있다. 연구원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독려하는 한편 특성화한 연구과제로 해외 박사를 유치한다. 교수심사와 같은 방법으로 연구원을 채용해 정년을 보장하는 ‘파격조건’을 제시하기도 한다.

전임연구인력, 인문사회 3명·이공계  4~6명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지난 2005년 펴낸 ‘이노베이션 코리아 및 대학연구 활성화’ 자료집에 따르면 대학 연구소 전임 연구인력 규모는 인문사회·이공계 분야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인문사회·이공계 분야별 전임 연구인력 분포 조사 결과 인문사회는 3명 이하가 56% 이상인 반면, 10명 이상은 13%에 그쳤다. 이공계는 3명 이하가 44%이고, 10명 이상이 19%다. 이공계는 인문사회에 비해 연구원 규모가 4~6명인 곳의 비율이 다소 높고, 10명 이상이 있는 곳의 비율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대학 연구소와 비교할 때 국내 대학의 전임 연구인력 활용도는 낮은 형편이다. 이공계 분야 해외 연구소는 연구 인력이 5천명 이상의 대형 연구소부터 100여명 미만의 소형 연구소까지 다양하다.
미국 LBNL 연구소(Lawrence Berkely National Laboratory)는 대형 종합과학연구소로 3천800여명의 연구원과 500여명의 학생으로 구성돼 있다. 5개의 각 연구그룹에는 책임연구원, 연구원, 교수, 박사 후 연구원, 석·박사 학생 등이 각각 10~20명씩 있다.
이종민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장(물리학과)은 “미국 대학의 유명 연구소를 보면 일정한 수의 정규직 연구원이 안정적인 연구를 수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교수와 석·박사 과정생 사이에서 중간역할을 하기 위해 전임 연구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임 연구원 필요하지만 현실은…”
이현규 한양대 자연과학연구소장(물리학과)도 “웬만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되려면 전임 연구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필요성엔 다들 공감하지만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전임 연구원 채용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연구소가 많다.
최대선 강원대 기초과학연구소장(물리학과)은 “중점연구소에 선정돼 펀드를 받았을 때는 전임 연구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며 “국내 대학 연구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연구원 스스로가 프로젝트를 따와 보수를 충당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건양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 소장을 지낸 신석기 교수(일어일문학과)는 “예전에 한 교수가 학술진흥재단에 제안서를 내려고 했을 때 ‘연구소에 전임 연구원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인력을 채용하려 했지만, 급여 문제 등을 놓고 학교와 의견이 맞지 않아 뽑지 못했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연구소에는 전임 연구원이 당연히 필요하다”며 “교수가 연구소 운영에 전부 관여할 수가 없다. 연구원이 일을 맡으면 수월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지방 대학 연구소는 새로운 연구 아이템이 있어도 인력이 없어 연구 과제를 썩히고 있는 실정이다.
최석기 경상대 남명학연구소장(한문학과)은 “지방대는 박사인력을 구하기 힘들다. 연구 아이템이 있어도 인력이 부족하다. 다들 서울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하지, 누가 지방으로 오려고 하겠느냐”며 지방대 거점 연구소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대학 연구소로 가길 꺼리는 이유가 된다. 대학 연구소 연구원들은 기업 연구소나 국책 연구소보다 신분이 불안정하고 급여가 낮은 점, 근무기간이 짧거나 이직시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 하는 점 등을 문제로 꼽는다. 학술진흥재단이 시행하는 중점연구소 지원사업에 선정된 대학 연구소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전북대 광전자정보기술연구소는 ‘기준에 맞는’ 전임 연구원을 채용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서재명 연구소장(물리학과)은 “현재 전임 연구원 4명이 근무하고 있다.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3~4년까지 일한다”고 말했다.
이영덕 충남대 경영경제연구소장(경영학과)은 “우수연구소로 지정돼 전임 연구원 1명에 대한 지원비가 학교에서 나와 어려운 점은 별로 없다”고 전했다. 이 소장은 특히 “행정인력도 연구인력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 연구소, 선택과 집중 필요
전임 연구원만 있으면 대학 연구소가 발전할 수 있을까. 정부·대학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학 연구소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돈만 나오길 기다리면 안 된다”는 게 공통의 지적이다. 지원할 만한 연구소로 거듭나야 하고 연구소간 경쟁을 유도해 선택과 집중 방식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에선 전임 연구원 40여명이 일한다. 연구소는 이들을 채용할 때 교수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대신 지원을 대폭 늘렸다. 전임 연구원은 사학연금에 가입할 수 있고 정년을 보장 받는다.

이종민 소장은 “교수보다 연구 실적이 더 높은 연구원이 많다”며 “과학기술부와 직접 협의해 정규직 연구원에 대한 정부 지원을 50%까지 받게 됐다. 신분보장만 된다면 전임 연구인력 공급문제는 상당히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는 특화한 연구과제로 입소문을 탔다.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들도 연구소에서 일하기 위해 문을 두드린다.
이헌종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장(역사문화학부)은 “연구원 급여를 대학에서 줄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떤 프로젝트를 개발하느냐에 따라 연구원 스스로가 연구비를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무조건 연구 인력을 지원한다고 대학 연구소가 발전하지 않는다. 우수한 인재를 발굴해 대학에 정착하도록 하는 게 연구소가 성장하는 방법이다”고 전했다. 
대학 연구소 통폐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 이공계 교수는 “한 대학에 30~40개 연구소가 있다. 그게 무슨 부설 연구소인가”라며 “과제도 없고 직원도 없는 연구소를 없애야 한다. 통폐합을 유도해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