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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정립’ 의문 … 기획은 더욱 유연해져
장르 ‘정립’ 의문 … 기획은 더욱 유연해져
  • 김영재 / 미술사상가·김씨네아트 프로덕션 대표
  • 승인 2007.10.01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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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국립현대미술관‘한국 행위미술 1967~2007’전

‘한국의 행위미술 1967~2007’展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린다.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에서 ‘빨간 블라우스 힐링 미니스트리’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의 작품자료 100여 점과 개막 행위를 통해 한국의 행위미술을 미술사적 차원에서 정리한다는데 의미가 큰 전시다. 곧 도록으로 출간될 『한국의 행위미술 1967~2007』 역시 한국 행위미술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개념정립의 의지를 보여주리라 기대된다.

이승택 ‘바람 민속놀이’(1971)

개막행위의 두 가지 얼굴
기상천외한 환상적 설화성을 가진 작가 이상현은 ‘잊혀진 전사의 여행 2007’에서 1988년의 설치물을 배경으로 당시의 행위를 뒤집는 행위를 벌인다. 즉 자신이 물 속에 들어가는 대신 물고기를 비닐에 담고, 브라스 밴드의 연주에 맞춰 백남준의 소품 등 몇몇 표상적인 작품 앞에서 고(告)한 후, 물고기를 죽이는 대신 연못에 놓아주는 이벤트다.

이승택은 1990년 수원성의 교감예술제 이래 수차례 재연됐던 상징적인 지구행위를 보여주었다. 그가 동일한 소품과 분장 및 행위를 이용한 연극적인 공연을 반복하면서 바뀌는 장소와 관객, 혹은 참여자에 의미를 두었다면, 작가 이상현은 자신의 역사적 행위 자체를 극적으로 역전시키는데 포인트가 있다. 마이클 커비가 정의했듯이 대본, 계획, 준비, 목적, 리허설이 없는 ‘일어남(Happening)’의 정의에 최대한 접근한다. 행위미술의 연극적 공연이 자행되는 한국행위미술계의 신선한 충격이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국 최초의 행위미술은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에서 평론가 오광수가 기획하고 무 동인과 신전 동인들이 참여한 ‘비닐 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후 40년간 한국행위미술의 변천을 셋으로 나눈다. 즉 표출양상을 살펴보면

1. 해프닝-이벤트(1967~1979): 행위예술을 퇴폐와 불온으로 낙인찍는 정치적 억압에서 탈피하려는 선구자들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경향

2. 행동-드라마(1980~1993): 군사 독재하에서 시민저항에 의한 현실참여, 문학·연극·무용 등 결합하는 경향

3. 행위-변주(1994~2007): 다원적 매체가 결합되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시각언어에 의해 종합예술화하는 경향이 그러하다.

이것은 매우 한국적인 분류다.
서구의 행위미술은 1952년 케이지(John Cage)의 이벤트, 1956년 카프로(Allan Kaprow)의 해프닝, 1970년대 초의 퍼포먼스로 대별되는 행위미술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의 첫 해프닝은 카프로와 10년, 케이지의 블랙 마운틴 칼리지 이벤트와 20년, 서구의 퍼포먼스와 20년 시차가 있다. 이 시차는 한국의 행위미술이 귀화식물처럼 토속화되거나 한국적 풍토에서 농축될 수 있었던 시간이지만, 동시에 현실고발, 상징성, 설화성의 온상이기도 하다. 당연히 서구 행위미술의 무관심과 비논리와는 다른 분류 기준이 필요했을 것이다.

세계 행위미술과의 시차
자료의 발굴 및 소개, 역사적 자료의 재구성 및 행위의 재연이라는 입체적인 구성과 의욕적인 진행은, 그러나 기획자의 의도와는 달리 장르와 작가선정의 기준, 사상적 정립의 혼선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었다.   

첫째, 행위미술의 장르에 대한 정립이다. 크림프(David Crimp)는 퍼포먼스를 가리켜 ‘그림을 무대에 올리는 방법의 하나’라는 배타적인 정의를 내린다. 아르토드(Artaud)에게 해프닝이란 “움직임, 조화, 리듬의 요소를 중점적으로 표현하되 음악, 무용, 판토마임, 모방극(Mimicry)의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었다. 행위미술은 미술이고, 중심은 회화라는 이야기다. 이들은 행위미술의 고전적 규범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상징적 단막극이 고전적인 세계행위미술의 규범을 벗어나 ‘미술적인 행위’를 표방한 모든 행위를 행위미술로 편입하고서 세계미술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의 소지가 있다. 

둘째, 역사적 교훈에 대한 성찰이다. 행위미술은 기본적으로 무용과 음악, 나아가서는 오락(Entertainment)을 배제한 움직임이었다. 전위음악가인 케이지는 1952년 블랙마운틴 칼리지에서 최초로 이벤트(Event)를 창안했다. 그러나 케이지는 미술사에서 소외된다. 음악가인 탓이다. 그래서 1956년 미술가인 카프로의 ‘여섯 개 파트로 나뉜 18개의 해프닝(18 Happenings in 6 parts)’이 최초의 행위미술로 기록됐다. 퍼포먼스는 해프닝의 계통, 다시 말하자면 회화의 계열에서 논의된다. 음악전공이었던 백남준은 케이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플럭서스(Fluxus)에서의 미술적 행위와 미술적인 비디오 등을 통해 세계적인 ‘미술가(Artist)’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셋째, 조정의 필요성이다. 미술사를 의식한 자료전이라는 관점이 강조됐다면 당연히 조정됐을 대목도 눈에 띈다. 기획측은 무용가 및 음악가들에 의한 ‘가야금과 人聲을 위한 미궁’을 한국전위예술의 한 획을 긋는 곡으로, ‘3중대화’는 장르의 벽을 깨뜨리는 종합예술로서 “잊을 수 없으리 만치 빛을 발하는 순간을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또 5인조 락 퍼포먼스 그룹 밴드 역시 행위미술로 편입시킨다. 이들이 음악이나 종합예술이라는 장르 때문에 조정가능성이 제기된다면, 미술 내에서도 행위미술의 범주 조정이 필요한 대목이 있다. 예를 들어 80년대 소그룹운동에서 설치미술 및 개념미술 경향에 속했던 하용석과 스스로 반조각, 비조각이라 명명했던 조형을 보조하는 이승택의 행위는 독자적인 장르거나, 행위미술이 아닌 다른 범주에서 기록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료 발굴·눈높이 전시공학 돋보여
이러한 범주의 문제는 최초의 행위미술로 기록된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에서부터 지적될 수 있었다. “해프닝은 각자 다른 칸막이 안에서 논리적인 연관이 없는 행위들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일종의 극장이라 정의될 수 있다”라고 카프로는 단언했다.

반면,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에서 비닐우산은 미국의 핵우산, 우산을 짓밟으며 부르는 녹두장군 노래, 즉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한국문화의 아이덴티티를 묻는다는 것이다. 해프닝이라는 전례를 배경막으로 차용한 단막상징극이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후 1968년 정찬승·강국진의 ‘한강변의 타살’, 1970년 제4집단의 ‘무체예술’ 등의 상징화작업에 이어 케이지가 창안했던 이벤트의 한국적 번안이라 할 수 있는 이건용 등의 대부분 행위는 상징적, 설화적 ‘단순사건(Event)’의 성격이 짙었다. 이후 오늘날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한국행위미술의 상징지향성 및 환칠지향성은 한국적 특성이거나 고질적 병폐로 전승된다.

상징지향성은 한국적 명상과 철학적 깊이를 통해 행위를 미술적으로 재해석한다는 깊은 의미를 보여줄 수 있다. 한국적 행위미술의 전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환칠지향성이란 타분야에서 유입된 행위자들에게서 두드러진 행태, 즉 칠하고 그리는 등의 환칠이 아니면 미술로 봐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기우를 반영한다. 이러한 옥석을 가리는 기초자료를 제시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야심찬 기획은 한국미술의 의미화, 개념화의 史草로서 충실한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자료의 발굴과 눈높이 전시공학이 단연 돋보인 이번 전시에서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을 담은 KBS의 흑백 비디오는 가히 특종감이었다. 그리고 다시 재연할 수 없는 기념비적인 동영상들의 상영은 전문가의 자료로서도 귀중하지만 관중의 눈높이에 맞춘 전시공학의 좋은 예가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배경과 조직력, 기획력, 실천력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쾌거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겸손하게 ‘자료전’이라고 밝힌 전시를 통해 관객과 전문가가 자신에게 필요한 개념과 자료를 재구성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보다 유연해진 국립현대미술관의 태도가 한층 돋보인 기획으로 남을 만하다.

 김영재 / 미술사상가·김씨네아트 프로덕션 대표


 

필자는 동국대에서 ‘고려불화의 화엄사상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시립미술관장을 역임했으며, 공동저서로 『한국의 퍼포먼스 아트』, 『세계화를 향한 퍼포먼스 데이터베이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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