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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유혹 떨치고 '자기 목소리' 던져라
'지자체' 유혹 떨치고 '자기 목소리' 던져라
  • 교수신문
  • 승인 2007.10.0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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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국내 영화제의 현주소

현재 국내에는 약 35개의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오는 4일부터 열리는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포스터와 제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제6회미쟝센 단편영화제·제5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포스터.

1990년대가 되기 이전의 영화제는 대종상, 금관청소년영화제 등 시상식 위주의 영화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영화제란 이름을 갖는 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시상식이라 이름 지어 져야 했을 방식이었다.

다수의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으로 관객과의 직접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영화제들이 등장한 것은 90년대 중반이다. 96년에 처음 발족한 부산국제영화제와 인디포럼이 그 출발점이다. 물론 이전에도 삼성에서 투자했던 나이세스 영화제나 간간히 있어왔던 소규모 단발성 영화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현재의 형태를 취한 영화제들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각변동 불러온 인디포럼·부산국제영화제
인디포럼과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태생이 사뭇 다르다. 90년대에 들어서며 영화계는 상당한 지각변동을 가진다. 기존의 충무로 영화와는 구별되는 다수의 영화인들이 이 시기에 등장한다. 80년대 중반 이후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학동아리와 각종 문화학교들에서 배출한 새로운 영화인들이 90년대에 들어서며 직접 단편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제작하게 되었고, 결국 영화 상영에 대한 욕구를 표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검열이라는 제도로 인해 이러한 영화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은 전무했고, 이들 중 몇몇 영화인의 발기로 인디포럼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계 안팎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평론가, 학자, 이론가들이 중심이 돼서 국내에도 예술영화를 상시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 지점에서 영화제를 발족하게 됐다. 이 영화제는 처음부터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를 만들겠다는 포부와 함께 시작되었고, 그 포부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후원도 따라줬다.

같은 해 동시에 태어난 두 영화제는 태생은 달랐지만,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고, 또 그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데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 공통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영화제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어느 순간에는 존폐의 갈림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두 영화제의 시작과 함께 국내에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생겨나고 소멸하기 시작했다. 부산영화제의 성공에 힘입어 이후 많은 지자체들에서 자신들만의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로 많은 지자체에서 국제영화제를 유치하게 된다. 부천, 전주, 광주, 제천, 고양 등 이들은 각각의 지역적 특성과 영화계 전반에서의 위치를 고려해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진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지자체에 기반을 둔 영화제들의 현실은 녹록하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지자체 단체장은 영화제를 자신의 치적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와는 별개로 각 영화제에 참여했던 영화인들은 영화제를 순수한 문화기반으로 두고 싶어 했다. 이러한 충돌은 광주와 고양영화제를 고사되게 만들었고, 몇 년 전 부천에서는 영화제를 파행으로 이끌어나간 동인이 되었다. 또 이러한 경우 정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도 문제점이다. 선거에 의해 단체장이 바뀌면 영화제의 운명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자체와 함께하는 영화제의 장점은 일단 자금 면에서 안정적이기 때문에 내용과 형식면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율을 침해하려는 지자체의 움직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자체 기반의 대형영화제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이런 파행의 불씨를 안고 살아간다.

인디포럼은 그 발생 성격상 어쩔 수 없이 독립영화란 이름의 모든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였다. 하지만 상영공간의 제약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상영작들로 인해 많은 영화들이 상영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에 서울이라는 문화공간상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각각의 특성별로 뭉쳐진 영화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인디다큐페스티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뉴미디어페스티벌 등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또 영화진흥공사 시절부터 지속돼 오던 금관청소년영화제라는 시상식이 몇 번의 이름 바꾸기를 통해 서울독립영화제라는 이름으로 한해의 독립영화를 정리하여 보여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들 영화제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작가들이 자기 영화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그 틀 안에서 영화제를 만들어나가기에 일관되고 확실한 자신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영화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선 영화제들과는 달리 관객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소규모의 영화제로 남을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에 파이낸싱의 어려움이 가장 큰 장애요인일 것이다. 이들 역시 문화관광부나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영화제를 꾸리기에는 많이 모자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어느 형태로든 협찬은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 역시 만만찮은 숙제로 남아있다.

35개로 늘어난 영화제, ‘정체성 찾기’ 과제
하지만 이러한 숙제를 나름 해결한 영화제도 있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와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메세나 차원에서의 기업후원으로 이루어지는 영화제이다. 이들 기업의 부차적 목표를 추측컨대 아시아나 항공사는 기내 콘텐츠 확보를 위해 이 영화제를 기획했고, 미쟝센은 브랜드명을 보다 효과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인식시킬 목적으로 영화제를 기획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제들은 철저히 시장 원칙에 던져져 있을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가진다. 영화, 문화, 예술은 보호, 육성 되어야 하는 것이지, 시장의 원리에 의해 경쟁하고 도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국내에는 약 35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존재한다. 분명 적지 않은 숫자이다. 이들 중 약 20여개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실제로 영화제를 하고 있는지 정체가 불분명하고, 또 새롭게 생겨난 영화제 중 일부는 기존의 영화제와 구별되는 뚜렷한 특성이나 특색 없이 모호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서울의 영화제는 이미 포화상태다.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만의 특별한 색을 입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럴 수 있을 때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요건이 될 것이다.

행사보다 ‘문화가치’ 살리는 여건 조성 필요
지역의 영화제는 10개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게다가 지자체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지역의 영화제는 겨우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이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 영화제는 많다. 하지만 더 많은 영화제들이 지역에 생기는 것은 나름 바람직한 현상이다. 서구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지방 중소도시마다 한 개 이상의 영화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영화제들이 지역민들의 문화 복지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는 것은 외국 경험이 조금만 있는 사람들이라면, 문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누군가의 치적을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제라면 더 이상 전혀 필요 없겠지만, 이렇게 지역주민의 요구에 의한 문화 복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영화제는 적극적으로 보호 육성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영화인들이 영화제에 많은 힘을 쏟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영화를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정말 얼마 안 되는 소중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영화제보다 더 필요한 공간은 지속적으로 상업적이지 않은, 또는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영화들을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의 확보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영화제가 왜 필요했는지, 어떻게 시작 했는지를 되새겨보는 것은 의미 있다. 아무 기반에 없었을 때 이벤트로서의 영화제는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벤트성 행사가 넘쳐나는 시기에 이제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많은 이의 관심이, 그리고 지자체나 기관의 관심이 행사 보다는 시네마테크나 예술, 독립영화전용관에 돌려졌으면 한다. 그런 관심이 우리나라의 문화 다양성을 살리고, 지금껏 잘 달려온 경제 뿐 아닌 문화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길일 것이다.

박동현 / 명지대·영화뮤지컬학부


 필자는 시카고 예술학교 대학원에서 영화제작 전공(MFA)을 졸업했다. 역서로 『시각영화』가 있으며 작품으로 ‘회’, ‘살의’ 등 다수가 있다.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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