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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떠나 제2의 연구인생 펼치겠다”
“강단 떠나 제2의 연구인생 펼치겠다”
  • 박수선 기자
  • 승인 2007.09.16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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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하반기 정년 퇴임교수를 만나

□ 왼쪽부터 소흥렬 포스텍(인문사회학부)· 신복룡 건국대(정치행정학부)·윤병호 강원대(제지공학과) 이혜순 이화여대(국어국문학)·장현갑 영남대(심리학과)·주삼환 충남대(교육학과)교수
지난 8월 강단을 떠나는 정년퇴임교수들에게 연구 활동에서 ‘정년’은 없는 듯 하다. 퇴임교수들은 교육·여건은 열악해 졌지만 좀더 자유로워진 만큼 다양한 연구활동을 펼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한 이혜순 이화여대 명예교수에게는 정년퇴임교수의 여유로움보다는 뜨거운 향학열이 느껴졌다. 요즘 근황을 묻는 질문에 숨을 고르고 쉴 법도 한데 “아직은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한다.

‘표절-인문학적 성찰’ 펴낸 이혜순 교수
이 교수는 퇴임 이후 소장도서 일부를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하고 지난 2006년 이화여대 대학원 강의 내용을 정리한 책 출판을 앞두고 퇴임을 실감할 시간도 없었다고. 지난 13일 출판된 『표절-인문학적 성찰』이 바로 그것이다. 표절을 주제로 선정한 계기는 “표절문제를 번역, 번안, 대중문화까지 범위를 넓혀 인문학적 접근으로 다뤄보자는 취지였다”면서 “표절 판단을 법에 맡겨 둔것 같아 아쉬웠다”고 한다. 이 교수의 하반기 계획표도 지금까지 수행해온 학술진흥재단 연구 프로젝트나 연구 논문의 출판 일정으로 채워져 있다. 

 
이 교수는 한문학에서도 우리나라와 중국간 비교문학적 시각으로 연구를 해왔다. 이 교수는 비교문학분야에서 ‘17세기 통신사행진단의 문학과 의식세계’, ‘한 중 소설의 비교 문학’등을 비롯한 다수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고『조선통신사 사행기록 시리즈』로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여성문학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이화인문학연구소장을 맡고 부터다. 이화여대에서 가장 잘 할수 있는 프로젝트 과제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고전여성작가 연구에 천착하게 됐단다. 이는 그가 초대 회장을 맡은 한국고전여성문학회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역사속에 묻혀있던 여성의 가치를 되찾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한국 최초의 여기자였던 고 최은희 기자의 막내딸이라는 가정사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전한다. 

그는 “좀더 나이를 먹고 한계에 부딪쳐 공부를 더 하기 힘들어질 때가 진짜 정년 같다”면서  “그때까지는 더 연구에 정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윤병호 강원대 교수(제지공학과)는 이공계 분야에서는 ‘리그닌 반응’의 연구를 도입, 목재화학분야의 질적 전환을 이끌어 주목을 받았다.

리그닌은 종이 변색의 원인이 되는 펄프지의 화학성분으로, 윤 교수는 이전까지 불모지였던 국내 리그닌 연구를 개척함과 동시에 종이 질의 최적화, 공해성분 발생의 최소화를 위한 리그닌의 적정 상태 발현에 대한 방법론을 마련함으로써 국내외로 그 명성을 인정받았다.

한국펄프종이공학회 회장, 미국펄프종이공학회 국제위원, 캐나다펄프종이공학회 패널리스트라는 이력은 그의 명성을 확인해주는 지표다.

윤 교수는 리그닌 외길의 배경을 ‘모방적 연구문화’의 지배적 경향에 대한 반성에서 찾았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 기술적 변화에 천착하는 것이 오히려 기술적 발전을 가로막는다”며,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목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연구 지론이자 후학에 대한 고언이다.

일본 나고야대를 졸업한 그는 1979년 강원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리그닌 연구에 돌입, 130여 편의 논문과 저서들을 통해 세상과 만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창강제지기술연구소를 설립, 상용 가능한 기술들의 개발로 꾸준히 외부 기업의 발전기금을 유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들에 힘입어 1999년에는 국민훈장을 수여받기에 이른다.

50년 연구 인생을 돌아보며 그가 드러낸 아쉬움은 무엇보다 지방대학의 척박한 연구 환경에 있었다. “지방대학의 열악한 인력으로는 실험이 불가능하다”며, “아직 고서적 복원이라는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았지만, 저서 집필에 몰두해야할 것 같다”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다.

남들이 가지않은 길을 걷는 이유
한국 심리학계의 ‘거두’ 장현갑 영남대 교수도 정년을 맞았다. 그의 이름 앞에는 지난 30여년간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었다. 장 교수는 영남대에서 심리학과 1호 교수로 강단에 섰으며 국내 최초로 심리학과 생리학을 결합한 ‘생리심리학’분야를 개척했다. 그가 90년대 시도한 명상과 의학의 접목인 ‘심신의학’도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였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심리학은 자연과학이라고 배웠어요. 그런데 아무도 심리학을 자연과학으로 접근을 하지 않았죠. 그래서 학부를 졸업하고 가톨릭의과대학 생리학 교실에서 생리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1965년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가톨릭 의과대학 생리학 교실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 심리학과 생리학의 결합을 시도했다. 이때부터 세계적인 학회지에 생리심리학 분야의 논문이 발표되면서 생리심리학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의 연구활동은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아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 IBC로부터 ‘생애의 업적상’, ‘100인의 위대한 스승상’ 등을 수상했고 지난 5월에는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영구 헌정됐다.  
그가 90년대부터 명상과 의학을 접목한 ‘심신의학’은 ‘신체적 고통도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몸과 마음이 하나이기 때문에 마음을 치료함으로써 몸의 고통도 치료한다는 것이 통합 치유의 내용이다. 이는 최근 그가 펴낸 『마음챙김-나의 마음을 경영하는 위대한 지혜』를 비롯한 『몸의 병을 고치려면 마음을 먼저 다스려라』 등의 저서를 통해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그에게 정년 퇴임의 의미는 “대학 강단이 주는 의무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퇴임 이후에도 그는 불교대학원대학교, 서울여대 특수치료대학원, 가톨릭의과대학 통합의학과, 영남대 대학원 등에서 ‘심신의학’을 매개로 학생들의 만남을 이어갈 계획이다.

충남대에서 정년퇴임한 주삼환 교수(교육학과)는 ‘임상장학’의 발전을 통해 교육행정의 지평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 교수는 교사의 개별성을 반영하는 수업관찰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감시하는’ 장학에서 ‘지원하는’ 장학으로의 실질적 전환을 이끌었다.

그는 1964년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15년의 교사생활을 통해 ‘잘 가르치는 법’에 대한 지적 갈증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관리적 차원이 아니라 학생들의 성취도를 높일 수 있는 장학체계를 고안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82년 학자로서 생활을 시작한 뒤 그의 연구는 대학 강단보다는 교육현장에서 그 위력을 발휘했다. 25년간 각종 교장자격연수, 교감자격연수, 직무연수, 장학사 연수 등 교육행정가들의 ‘전문강사’로 활동하면서 『우리 교육 몸으로 가르치자』는 그의 저작대로 실천하는 이론의 확산에 기여한 것이다. 
주 교수는 남은 연구 인생을 “교육행정의 철학과 윤리, 가치를 뿌리 내리는데 쓰고 싶다”고 전한다. 『도덕적 지도성(moral leadership)』의 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앞으로 행정 윤리에 관한 저작들을 내놓을 계획이다.
정년퇴임 이후 건국대 석좌교수로 임용된 신복룡 교수(정치학)는 “치밀한 자료 수집을 통해 누락되고 왜곡되었던 ‘한국정치사상사’의 복원에 매진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다.

신 교수는 1970년대 미국식 정치학 이론과 방법을 무비판적으로 들여오는 식민사관에 대한 문제를 인식한 이래, 동학농민운동·갑오개혁 등 한국 근대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민주주의 원리를 도출하고 ‘한국정치사’라는 학문 영역을 정립한 바 있다.

“오래 읽힐 ‘고전’을 쓰는데 진력을”
신교수는 정치학자로서 기존의 주류 역사학자와의 대면도 쉽지 않았다고 털어 놓는다.
“역사학자들과는 때로 검투사와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다”면서 “종교에 관한 논쟁으로 연구실이 점거당하고 문중 사학에 얽혀 송사에 휘말릴 때, 지역 감정으로 비난받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새 길을 개척해 나갔던 학자답게 후학들에게 고언도 잊지 않는다. 신 교수는 “1년이 지나면 읽을 가치도 없는 글보다는 오래 읽힐 살아있는 고전을 쓰기 위해 진력해야 할 것”이라면서 공자의 말을 빌어 “공부에 싫증내지 않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아야 진정한 학자다”라고 후학들에게 전했다.

한편  지난 1999년 정년퇴임 이후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에서 과학도의 철학교육을 맡았던 소흥렬 교수도 포스텍을 떠나게 됐다. 계명대,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거쳐 포스텍에서도 정년을 맞은 그는 한국과학철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회장, 한국인지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논리와 사고』, 『과학과 사고』,『부드러운 논리』,『누가 철학을 할 것인가?』 등의 저서를 내놨다.
김혜진· 박수선 기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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