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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모르는 소비자가 시민을 대체한다면…
절제 모르는 소비자가 시민을 대체한다면…
  • 김동규/명지대·정치학
  • 승인 2007.09.1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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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_ 『CONSUMED』 Benjamin R. Barber | W.W. Norton & Company | 2007

“고대 정치가들은 끊임없이 윤리와 미덕을 이야기했는데, 우리 정치가들은 오직 비지니스와 돈을 이야기할 뿐이다.” 장-자크 루소는 이 유명한 구절에서 시민과 부르주아를 구분했다. 루소 연구가로도 유명한 미국의 정치사상가 벤자민 바버는 시민과 소비자를 구분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덕성에 의존해 유지되는 체제인데, 만약 시민들이 덕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민중선동가들에 휩쓸리면서 폭정으로 변질되게 된다. 시민이 덕성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당장의 쾌락을 뒤로 미룰 수 있다. 즉, 정치공동체를 위해, 이웃들을 위해 당장의 소비를 줄여 세금을 낼 수 있고,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고 교통법규를 지켜 전체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데 협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국가 공권력(폭력)이 나서야 한다. 민주주의는 공권력이라는 강제적 힘의 도움 없이도 유지되는 체제이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자발적으로 질서잡히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민주적 권위’라 하는데, 이를 위해 시민들은 지금 당장의 쾌락을 뒤로 미루는 습관을 체화해야 한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윤리』를 인용하면서, 벤자민 바버는 근대 자본주의(생산 자본주의)가 이러한 습관의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미국 건국의 실질적 설계자라 할 수 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을 보면 근대 자본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잘 알 수 있다.

김미김미 외치는 아이들의 세계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에서, 특히 미국식 자본주의에서 이런 덕성을 가진 ‘시민’은 사라지고 있고, 아이처럼 ‘김미김미’(Gimme, Gimme: 이것 주세요)하면서 욕구를 당장 충족시키려는 ‘소비자’만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의 욕구는 자극하기에 따라 무한대로도 커질 수 있는 것인데, 심지어 달을 보면 달을 가지려고 손을 뻗기도 한다. 현대 미국의 ‘소비자본주의’는 모두를 이런 아이들처럼 만들려고 한다.
몇 가지 장면을 보자. 어떤 미국의 국제공항에서는 검색절차가 까다로워져 승객들이 짜증을 부리자 이를 달래기 위해 롤리팝 사탕을 나눠준다. 어른들이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을 열심히 읽고 있다.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식구들이 10분 만에 식사를 끝마친다.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도 온라인 게임 ‘워크래프트’를 즐기고, ‘터미네이터’ ‘스파이더맨’ ‘슈렉’ 영화에 열광한다. 여성들은 성형외과에서 주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거나 보톡스 주사를 맞으며 자신의 딸처럼 되고싶어하고, 남성들은 레비트라, 시알리스, 비아그라를 먹으며 영원한 청춘을 구가하려한다. 나이 지긋한 비지니스맨이 야구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고 거리로 나선다. 모두가 어른이 되기를 싫어하고, 청소년이 되고 싶어 한다.
벤자민 바버는 어른들이 청소년 시기로 ‘퇴행’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미 ‘진짜’ 욕구를 충족시켜버린 미국 자본주의는 광고의 대대적 공세를 통해 ‘가짜’ 욕구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어른의 욕구는 자제되고 있지만, 청소년들의 욕구는 가장 왕성하고 자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직 어린 아이들은 청소년처럼 왕성하게 욕구를 가질 것을 강요받고 있다. 어린아이의 욕구를 타깃으로 한 광고비로 미국은 2001년에 400억 달러(약 40조원)를 사용했는데, 이는 1968년의 22억 달러, 1984년의 42억 달러에서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시장의 포화를 느낀 미국자본주의가 어린아이들의 미개척 욕구로 눈을 돌린 까닭이다. 어린아이가 ‘뉴 프런티어’가 된 것이다. 모두를 절제 없이 소비하려는 청소년으로 만드는 것이 소비자본주의의 목표다.
이렇게 있지도 않은 욕구를 만들어내는 미국식 ‘소비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또한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벤자민 바버의 걱정이다. 과거 미국 가족의 식사시간은 1∼2시간이었다고 한다. 식사가 단지 음식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일종의 ‘의례행위’였고 ‘종교의식’이었다. 어른들은 여기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들도 자기 자리에 차분히 앉아 어른들의 ‘따분한’ 이야기를 참고 끝까지 들어야 했다. 이런 자리를 통해 모두들 민주시민의 덕성을 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패스트푸드를 ‘소비’하는 아이들은 차분히 한 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음식을 먹는다. 식사는 음식소비 이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덕성은 당장 하고 싶은 것을 참는데서 시작한다. 오늘날의 소비자본주의는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서 시작한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자율적 시민에 의존하는데, 소비자본주의는 광고와 마케팅의 명령을 고분고분 따르는 타율적 소비자에 의존한다. 이렇게 절제할 줄 모르는 소비자가 시민을 대체한다면, 민주주의는 민중선동가들의 먹잇감이 되어 폭정으로 변할 수 있다.
자본주의 자체도 위태롭다. 언제까지 광고와 마케팅에 의존해 있지도 않은 ‘가짜’ 욕구에 의존해 유지될 수 있단 말인가? 벤자민 바버는 미국 GM 자동차 회사와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 회사를 비교하면서 소비자본주의의 문제는 자본주의 전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식 운영방식의 문제라고 말한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오직 ‘단기’ 수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어 포화상태인 선진국 시장에서 필요도 없는 ‘욕구’를 만들어 자동차를 팔고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불안한 눈길
대표적인 예가 SUV 자동차다. 특히, GM의 ‘허머’(Hummer)는 배기량이 6000cc가 넘고, 연비가 가솔린 1리터 당 5km에 불과한 괴물 SUV다. GM은 이런 자동차를 멋진 남성의 자동차인 것처럼 대대적으로 광고하면서 판매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가짜’ 욕구는 어차피 한계에 이르게 되고, SUV 판매에 단기 수익을 의존해온 미국 자동차업계는 일본 자동차에 의해 추월당할 수밖에 없다. 금년에 미국 GM을 따라잡고 세계 1위의 자동차메이커로 부상한 도요타는 당장의 ‘단기 수익’을 노리지 않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운영했다. 당장 수익을 낳지 않는 친환경 하이브리드카에 개발비를 투입하고, 당장 수익을 낳지 않는 제3세계 시장을 공략했다. 제3세계 시장은 아직 미국시장만큼 크진 않지만 그래도 ‘진짜’ 욕구와 필요를 가진 시장이기 때문에 장래성이 있는 단단한 시장이다. ‘단기 수익’만을 노리는 미국은 하이브리드카 개발이나 제3세계 시장까지 볼 여유가 없었다. 이런 ‘가짜’ 자본주의가 멀리 바라보는 ‘진짜’ 자본주의를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버의 저작을 읽다보니 이런 느낌이 들었다. ‘나도 이 책을 소비하고 있구나’라는. 100쪽 정도로 줄일 수도 있었을 텐데, 미국 출판자본의 요청에 따라 400쪽으로 억지로 늘린 느낌이다. 멋진 장정과 적절한 분량으로 대표되는 미국 책들을 보다보면 지식도 ‘컨슘드’(consummed)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느끼기도 한다.  

김동규/명지대·정치학


 

필자는 美 럿거스대 정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외무고시로 외교통상부에서 근무, 남북관계, 6자회담 등을 담당했다. 역서로 『공화주의』『서양정치철학사』(공역) 등이 있다.

□ 영화 ‘더록’에서 PPL로 등장했던 군용 험비트럭을 민간버전으로 출시한 제네랄 모터스의 허머(hummer)광고는 이 차량이 물속에서도, 눈 위에서도 튼튼하고 강한 느낌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면서 대중의 소비를 유혹한다. 사진은 GM의 ‘친환경 허머’ 광고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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