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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평화 시대 열어갈 ‘군사화된 근대성’ 비판
새로운 평화 시대 열어갈 ‘군사화된 근대성’ 비판
  • 윤해동 / 성균관대·한국근대사
  • 승인 2007.07.22 20: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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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_<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문승숙 지음 | 이현정 역 | 또하나의 문화 | 319쪽 | 2007

평화지수와 ‘군사화된 근대성’
2007년 5월 30일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 산하 조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세계평화지수’ 순위에서, 조사 대상 1백21개 국가 가운데 한국은 32위, 미국은 96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는 노르웨이로 조사됐고, 뉴질랜드, 덴마크, 아일랜드가 그 뒤를 이었으며, 일본이 5위를 차지하고 있다. 평화지수는 국내외의 평화 정도를 가늠하는 24개 기준에 대해 매긴 점수를 종합해 집계하였다고 하는데, 국외 기준으로는 지난 5년 간 국가가 개입한 전쟁의 수, 해외에서 죽은 병사의 수, 무기 구매에 사용한 비용 등이 포함됐고, 국내 척도로는 폭력 범죄의 수준과 이웃 나라와의 관계, 시민들 간 불신의 수준 등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인터넷 신문 <프레시안> 2007년 5월 31일자 참조)
 평화지수 순위에서 미국이 96위인데 반해 한국이 32위라는 것은, 남북한이 휴전선을 둘러싸고 심각하게 대치하고 있으며 북한이 이미 핵실험을 진행한 상황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점도 있다. 아마 객관적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 평화지수와 현실에서 실감하는 평화의 정도가 어긋나기 때문이 아닐까.
아주 심각하게 군사화된 근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한반도가 심각한 군사적 충돌의 위험을 안고 있는 지역이라는 객관적 현실도 나아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위기 상황도 그다지 심각한 위협을 가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군사화된 지표로 보는 한국의 근대성
미국에서 한국의 근대성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 문승숙은 군사주의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한국의 근대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문승숙은 한국의 근대가 군사주의에 갇혀 있다고 본다. 해방 후 한국의 엘리트들은 근대성 개념을 강력한 군사력과 첨단 기술에 기초한 높은 기술과 연결된 것으로 간주하였고, 이런 근대성을 국가 건설 프로젝트로서 추구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부국강병이라는 프로젝트를 근대성 형성의 시초로 간주하면서,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다. 19세기 산업화와 도시화의 성취를 바탕으로 자신들을 제외한 전 지구 표면을 식민지로 분할한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한 국가의 생존에 ‘근대화’가 필수적인 요소라고 간주하게 되었다. 이제 모든 전쟁은 총력전이며, 총력전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한 사회가 가진 물질적 힘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간파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서구의 근대 국민국가는 산업화와 병행하여, 자신들의 국가를 병영(兵營)으로 만들어버렸으며, 모든 성인 남자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18세가 되면 군대에 징집되었다. 이를 부국강병이라는 이름으로, 문명개화를 지향하던 비서구 국가들은 자신의 생존전략으로 수용하였다. 한국사회의 군사화된 근대성의 단초는 이미 근대국가 건설을 시작하던 시기에 이런 방식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이 책이 보여주는 통찰력의 간단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남한의 정치ㆍ경제적 구조는 첫째, 반공 국가인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것, 둘째, 국가 구성원들을 충성스러운 국민으로 만드는 것, 셋째, 징집제를 산업화하는 경제조직으로 통합하는 것 등 상호 연결되어 있는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이는 물리적인 강제력과 훈육의 혼합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군사화된 근대성이라는 것이다.
근대성을 추구한 국가는 물질적ㆍ이데올로기적 기제를 통하여 다수의 구성원들이 기꺼이 동원에 응하도록 유도하였으며, 구성원들의 정치적 정체성은 동원과 그 영향에 의하여 만들어졌는데, 대중의 동원 과정에서 특히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성별이었다고 본다.
저자는 성별적 대중동원을 통하여 군사화된 근대성이 형성된 시기는 1963년 이후 1987년까지이며, 1988년 이후에는 군사화된 근대성이 쇠퇴하고 성별화된 시민성이 대두하게 되었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정치와 경제에서 성별관계의 비대칭성이 두드러지는바, 이는 여성과 남성이 국가에 통합된 방식의 차이 때문인데, 그것은 병역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병역은 국가의 성별화된 국민 동원과 군사화된 근대성 이후 시민성 등장에서 핵심적인 요소였다는 것이다. 시민성은 형식적 권리를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적 구성원의 성격을 지칭하는 것인데, 1988년 이후 등장한 시민성에도 성별의 차이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는 군사화된 근대성이 형성되던 시기의 성별적 대중 동원 때문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성을 군사주의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 군사화된 근대성의 형성에는 성별적 대중동원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점, 군사화된 근대성이 해체되면서 새로 형성되고 있는 시민성에도 역시 성별화가 관철되고 있다는 점 등을 명확히 하고 있는 점에서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기여를 확인할 수 있겠다.
한국만큼 군사주의 문화가 사회의 모든 부면에 침투해 있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런 지적은 대개 분단이라는 압도적 현실 때문에 무시되어 왔다. 군사주의가 한국의 근대성 일반의 특징으로 작용하였으며, 나아가 근대사회 형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음을 강조하는 이 연구서는 한국 사회를 자신의 대상으로 삼는 연구자들에게 울리는 쇳소리임에 틀림없다.         

통일지상 민족주의는 또 하나의 ‘군사화된 근대성’
한국 사회에 미만해 있는 군사주의를 지양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분단문제를 평화로이 해결하며 나아가 동아시아에 평화적 공동안보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외부를 향한 군사주의’에도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을 듯하다. 외부를 향한 군사주의란 바로 통일지상 민족주의를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는 평화라는 가치와는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갖지 않는 이데올로기로 간주된다. 민족주의는 대개 평화를 도구적으로만 사고할 뿐이며, 평화는 민족의 해방 이후 곧 민족이 자유롭게 될 때에 도래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민족 해방을 위해서 나아가 민족의 통합을 위해서도, 필요할 때에는 언제나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모든 민족은 갖고 있다고 역설한다. 심지어 평화란 민족주의가 지향하는 가치를 훼손하는 것으로, 민족의 소멸을 부를 수도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한반도의 통일이란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성취되어야 할 여러 가치 중 하나의 가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한반도의 통일을 우선시하는 통일지상 민족주의는 평화적인 방법이 아닌 통일이라 하더라도, 통일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점에서 통일지상 민족주의란 분단 이데올로기를 내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럴 때 통일지상 민족주의를 외화된 방식의 ‘군사화된 근대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측면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국가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남한 내부의 군사화된 근대성, 나아가 성별화된 시민성을 넘어서야 함은 물론 통일지상 민족주의가 갖고 있는 외부를 향한 군사주의도 아울러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연구서는 한반도 평화국가의 조건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윤해동 / 성균관대·한국근대사


 

필자는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일제의 면제 실시와 촌락재편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 <식민지의 회색지대>, <지배와 자치-식민지기 촌락의 3국면구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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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걱 2007-07-25 10:03:15
통일지상민족주의에 무엇이 들어가고 무엇이 들어가지 않는가요?
마지막에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니..
진보적인 통일(운동)론자들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조금 구체적인 논평이 될 부분을 항상 두리뭉실 개념화해서
내용 전달이 더욱 방해하는 느낌이 있네요

남한에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통일을 하자는..
통일를 위해 평화를 희생함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 많을지 의문입니다..

무엇과 무엇을 넘어서야하는 논리구도가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논의 지형을 명확히 해야
생산적이고 유용한 논의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