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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와 김윤식
그람시와 김윤식
  • 김호기 / 서평위원·연세대
  • 승인 2002.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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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
私淑이란 말이 있다. 직접 가르침은 받지 않았으나 스스로 그 사람의 학문을 익히는 것을 뜻한다. 물론 책이 유일한 수단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사회학을 20년 동안 공부하면서 내가 사숙한 학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안토니오 그람시다. 말로만 전해 듣던 그의 ‘옥중수고’를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은 유학 시절이었다. 이 비극적 사회사상가가 절대 고독 속에서 남긴,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의 片片들은 상당한 인내심을 갖지 않으면 그 의미를 독파하기 쉽지 않다. 국가와 시민사회, 헤게모니와 대항 헤게모니 등 그람시의 통찰들은 내가 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의 동학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즈음 그람시 이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 동기는 그가 남긴 ‘아메리카주의와 포드주의’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주목함으로써 정치적 지배의 복합성에 대한 새로운 이론화를 모색했던 그람시의 통찰은 과연 포드주의를 넘어선 정보사회의 도래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 것일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 학문 영역에도 예외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사숙한 또 한 사람은 김윤식 서울대 교수다. 그 동안 전공 공부에 지치게 되면 김윤식 선생 책들을 더러 읽곤 했는데, 나로 모르는 사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솔출판사에서 나온 ‘김윤식 선집 1~6’은 책상에 가까운 서가 한쪽을 늘 차지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김윤식 선생의 화두는 근대성이다. 사회학 전공자인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한국 근대성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통찰이다. 그는 지난 20세기 우리의 근대성이 자본주의, 국민국가, 민족주의, 그리고 전통주의의 십자 포화 한가운데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적으로 본다면 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나를 포함한 사회과학자들이 여전히 시원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런 미완의 복합 근대성에 새로운 탈근대성이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접합되고 있는 것이 우리사회 ‘역사적 현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소식을 들으니 지난 8월 말 김윤식 교수가 퇴임 고별 강연을 했다 한다. 남 몰래 좋아하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 감회가 없지 않다. 그가 걸어 왔던 길은 어쩌면 지난 20세기 후반 이 땅에서 학문하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길일지도 모른다. 고독하지만 學人으로서 가야만 하는 진리에의 길, 이것이 선생의 학문이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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