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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주목한다 :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
이책을 주목한다 :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1.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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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30 13:22:19
저자 김연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정치학)은 책의 서두에서 북한 인식방법의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내재적 접근법을 외재적 접근법과 대립시켜 비판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사실과 해석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석은 이데올로기적 지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내재적 접근론자들이 북한체제를 옹호하고 있다”는 일부 논자들의 평가를 일축시키는 동시에, 실사구시적인 북한연구를 정초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대표적인 내재적 접근론자로 꼽히는 송두율 교수에 대해서도 저자는 비판의 고삐를 놓치지 않는다. 그가 ‘내재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경험적’이라 규정한 것은 북한인식론을 일진보시키는 계기임에 분명하지만, 개념을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주체사상을 설명하면서 “이데올로기적 지향에 대한 내부적 이해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긴장은 지적되지 않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저술이 저자의 학위논문 ‘북한의 산업화과정과 공장관리의 정치’(1996)에서 비롯됐음을 감안한다면, 이 책의 현재적 가치는 다른 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변화된 정세와 무관치 않다.

먼저 저자는 국내 북한연구 대부분이 정치나 이데올로기가 모든 사회영역을 규정한다는 전체주의적 분석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위로부터의 시각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시각에 주목한다. 이러한 문제설정은 북한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어진다. 다수의 북한연구가 수령제라는 정치체제와 주체사상에 과도한 지위를 부여한 반면, 저자는 정치형태가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는 조건에 주목한다. 즉 수령제를 형성하게 만든 사회경제적 조건들을 밝히려는 것이다.

한편 북한의 경제침체에 대해 저자는 어떤 해석을 내리고 있는가. 그는 1960년대초 활발했던 북한경제가 1980년 이후 몰락한 것은 1950년대 말에 있었던 특수한 상황들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1956년 8월 종파사건, 천리마운동이라는 위기돌파방법, 이로 인한 정치우위형 관리방식의 정착, 계획경제의 구조적 모순, 산업구조의 불균형 확대 등이 일련의 흐름을 갖고 현재 북한경제의 위기구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경제침체에 대해서도, 사회주의권 해체나 자본주의권의 경제 봉쇄 등 국제환경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북한경제의 내적 특성, 즉 계획경제에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계획경제적인 모순과 정치과잉이 결합되어 현재의 북한을 형성시켰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북한경제는 어떤 방식을 통해 변화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도 중국식 개혁 가능성, 즉 점진적 시장개혁과정을 타진하는 대개의 연구자들과는 달리, 그는 쿠바식 개혁모델에서 전망을 찾는다. 중국식 개혁은 경제개혁의 초기조건과 거시경제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반면 쿠바의 경우는 국제환경이 유사하고, 리더십 교체가 부재한 가운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이라는 것, 관광산업의 가능성 등에서 북한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북한 또한 경제정책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즉 김정일시대 출범을 계기로 위기관리정책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고, 경제 위기로 인한 사회적 변화들이 경제정책 변화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으며, 경제위기 국면을 경제활성화 국면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정책이 변하려면, 정치사상체제의 실용주의적인 변화는 물론, 대외적인 환경변화가 요구된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적 환경, 남북의 긴장완화, 미·일의 대북관계 개선 등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풍부한 자료가 제시되어 있고, 이를 실증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볼 때, 이 책은 본격적인 북한연구의 물꼬를 튼 것으로 보인다. 이념적 극단에 휘둘려 사태를 호도하는 기존의 북한 관련 논의와는 달리, 저자는 시종일관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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