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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역공동체가 형성되는 수업”
“새로운 지역공동체가 형성되는 수업”
  • 강민규 기자
  • 승인 2007.06.18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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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 찾아가는 학자들]우기동 경희대 객원교수

서울 노원경찰서 맞은편 중계동 임대아파트 9단지. 매주 화요일 단지 내에 열리는 장터에서 과일이며 채소, 건어물 등 온갖 먹거리를 사려고 북적거리던 주민들은 공터 옆 마을회관을 계속 들락날락하며 담소를 나눈다.

마을회관을 이용하는 주민은 학원가방을 멘 초등학생부터 주부, 휠체어 탄 사람,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도대체 그 안에서 무엇을 하기에?

중계동 임대아파트 9단지 ‘생활공동체’

이 마을회관에 자리잡은 ‘건강한 9단지 만들기 협의회(이하 9단지 협의회)’는 엄마사랑공부방, 행동하는 의사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의료센터 등 8개 지역운동체가 모여 만든 단체다. 그래서 마을회관 안에는 공부방, 무료진료소, 경로당, 건강강좌 강의실 등이 함께 들어서있다. 이곳에서 매일 만나 서로 부대끼는 9단지 주민들은 사실상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우기동 경희대 객원교수(철학과)는 9단지 협의회가 지난해 9월 개설한 ‘노원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의 철학 강의를 맡고 있다. 우 교수는 이곳 말고도 지난해 문을 연 관악인문대학, 제주희망대학, 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 인문학강좌 등 여러 대학 밖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직접 강의를 맡아온 ‘이 바닥의’ 전문가다.

최근 몇 년 사이 노숙인 인문학 강의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인터뷰 요청도 많이 받았던 우 교수지만 그동안 그는 언론 인터뷰를 가급적 피해 다녔다. 이유는 명료하다. 언론이 수강생들을 대상화한다는 것.

“강의를 들은 노숙인이나 지역주민은 다들 스스로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고 공동체의식을 가지겠다는 의지가 강한 분들입니다. 강사들은 이들의 노력을 옆에서 돕고 있을 뿐인데 마치 ‘노숙인은 원래 게으른데 강사들이 새 사람 만들었다’는 식으로 보도하니 어이가 없더군요.”

우 교수는 자신의 경험상 우리나라는 시민 인문학 교육이 뿌리내리기 좋은 풍토라고 느낀다. “물질만능주의가 계속 확산돼가고 있는 듯하지만 수강생들이랑 이야기를 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요. 우리 사회에는 정신적·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깊은 역사적 뿌리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돈 얘기를 대놓고 못하는 것도 한 예라고나 할까요.”

“정부와 대학의 지속적 도움 절실”

이러한 확신에서 우 교수는 “소외계층·시민 교육이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려면 정부와 대학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교육부와 여러 대학에 재정지원 등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우 교수가 보기에 중·고생 공부방, 주민 영어반, 독서반, 글쓰기반 등 인문학과 대중들이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지역연계사업은 아주 많다.

사회철학을 전공한 우 교수는 80년대 대학원생 시절 안산 등 수도권 곳곳의 노동자 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토론을 벌여왔다. 현재 지역운동과 연계한 강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그러한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제가 하고 있는 수업은 ‘인문학 강의’이기도 하지만 한 지역의 이웃,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지역의 실질적 민주주의 운동, 시민사회 윤리의식 고양 활동,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운동… 소외계층·시민에 대한 인문학 교육이 가지는 의의는 실로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강민규 기자 scv21@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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