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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제도·자신 넘은 예술혼을 만나다
시대·제도·자신 넘은 예술혼을 만나다
  • 배원정 기자
  • 승인 2007.06.04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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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소암 현중화 선생 탄생 100주년 특별전
□ 김호석 그림, <현중화(1907-1997) 초상>, 1993년, 220.8×114.3cm, 종이에 수묵채색, 개인소장.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 1907~1997)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 전시가 오는 17일까지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서예가 소암 현중화(이하 소암) 선생은 제주도에서 활동한 지방작가 정도로 알려져 왔다. 1960년대 국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79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근 20년 간을 고향 제주에서 자연과 술을 벗해 글씨만 썼기 때문이다.

서숙과 공모전을 통해 주류 작가로서 자리매김하지 않는 한 서예판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현 서단의 인식을 비춰보면, 소암 예술의 성격을 재조명하고 한국 근현대 서예 전개를 가늠해본 이번 전시는 눈여겨 볼만하다.

이동국 서예박물관 큐레이터는 “소암 선생은 한·중·일 근현대 서예사의 큰 흐름이 된 중국의 六朝 楷書를 일본에서 익혀 1950년대 국내에 처음 소개한 선구적인 작가”라고 평가한다.

소암 예술의 완성기라 볼 수 있는 7~80대 소암은 꼬냑이 없으면 붓을 들지 않을 만큼 취필을 즐겼다. 실제 송강 정철의 한글가사 <將進酒辭>나, 도연명의 <酒詩>, <酒不足>등 즉흥적인 취필 명작은 속세를 벗어난 듯한 경지가 작품에 그대로 담겨져 있어 그의 글씨가 醉仙의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이 시기 소암은 “서방정토로 돌아간다”는 뜻의‘서귀소옹(西歸素翁)’으로 새로운 호를 짓고, 먹고 자는 일 외에는 오직 글씨에만 매진하면서 제주 자연에 파묻혀 그의 예술을 완성시켰다.

쓰는 것이 일상이고, 일상이 곧 쓰는 것이었던 소암 예술은 “한라산을 수없이 넘나들면서 눈에 포착되는 나뭇가지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생전 그의 고백이 ‘일상의 예술 실천’이었던 것임을 깨닫게 한다.

이 큐레이터는 “소암 글씨의 조형 및 서예사적 위치를 조명하고 예술가로서 삶이 예술창작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먹고 잠자고 쓰고’란 전시 주제에 따라 기획했다”며 “전시구성을 ‘소암 글씨의 서체별 비교’,‘취필(醉筆)과 묵선(墨禪)’,‘한글’,‘고전명언’등으로 크게 나눴다”고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는 국한문 혼용 전예(篆隸)·해서(楷書)·행초서(行艸書)·파체서(破體書) 등 소암이 구사한 모든 종류의 서체가 담긴 작품들 가운데 1백여점이 선정됐다. 90평생에 걸친 소암 예술의 성취는 강건한 필법으로 왕희지의 전아한 행초서나 한글 흘림을 六朝楷 필의로 재해석해 동시대 어떤 작가에게서도 볼 수 없는 완성을 보여줬다는데 모아진다.

이 큐레이터는 “20세기 한국 근현대 書壇에서 소암과 같이 제대로 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일제라는 ‘시대’와 국전이라는 ‘제도’, 작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삼중고를 예술로 정면승부하면서 이겨내야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먹고 자고 쓰며 자연과 일상, 작품의 경계를 허물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완성시킨 소암의 예술혼을 만나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배원정 객원기자 wjba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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