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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조형품에 칠해진 ‘장인의 혼’
민족조형품에 칠해진 ‘장인의 혼’
  • 배원정 기자
  • 승인 2007.05.21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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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_‘아시아 칠기전’

미얀마의 불교경전함.

자갈밭에 옻나무 씨앗을 뿌려놓고 새싹이 움트기만을 기다리면서 한 그루의 옻나무가 자라나기까지.

옻칠액을 채취하고 만드는 칠기는 제작공정이 매우 까다로워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공예품이다.

차분하고 격조 높은 흑칠(黑漆)과 부드러우면서도 품위 있는 주칠(朱漆)은 그 색감과 광택으로 인해 ‘신비의 칠’이라 불리운다.  칠기는 장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새롭게 형상화돼 탄생한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홍남, 이하 박물관)은 오는 7월 8일까지 가네코 가즈시게 기증실에서‘아시아 칠기전’을 연다. 일본 아시아민족조형문화연구소 가네코 가즈시게(金子量重. 83)소장이 기증한 아시아 민족조형품 1천 20점 가운데 칠기 60여점을 선정했다.

가네코 소장은 40여년간 아시아 각국에서 수집한 문화재를 2002년부터 모두 3차례에 걸쳐 박물관에 기증했다. 한일협정 이후 한국을 1백여차례나 방문하면서 한국 문화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그는 박물관이 용산에서 새롭게 개관함에 따라 기증 의사를 밝혀왔고 민병훈 아시아팀 팀장이 일본으로 찾아가 한국에 유치시켜오면서 성사된 일이다. 

민 팀장은 “가네코 소장이 직접 장인들이 공예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수집한 유물들이다. 수집품의 내력과 정보가 분명하고 그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한 만큼 세계 그 어떤 컬렉션보다 질과 양에 있어서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자부한다.

칠공예품을 만드는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미얀마, 베트남 정도다. 각국의 칠기 공예품들은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니면서 그 양상도 사뭇 다르게 전개된다. 민 팀장은 “흔히 칠기하면 나전칠기를 연상하기 쉬우나 대나무가 잘 자라는 동남아시아에서는 대나무로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칠을 바르는 남태칠기(籃胎漆器)가 주로 제작 된다”고 설명한다.

미얀마나 타이 칠기의 몸체가 둥글고 풍만하며 유연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대나무의 탄력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 지역의 풍토에 맞는 조형기법을 선보이는 칠기의 표면에는 그 지역의 신화와 전설, 천문과 지리, 동식물 등이 그려지거나 새겨져 있어 민족 조형으로 승화된 그들 문화의 일면도 감상할 수 있다.

미얀마의 채색병풍.

미얀마 채색병풍의 경우, 작품의 美적 가치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의미도 풍부해 감상의 묘미를 더한다.

병풍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부모의 눈을 뜨게 하려고 매일 아침 정화수를 떠오던 효자 샤마가 사슴사냥을 나선 피에릿카 왕의 독화살에 맞아 죽었다가 제석천의 도움으로 살아난다는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미얀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인 만큼 미얀마의 문학과 연극에서 즐겨 사용하는 주제다.

원래 인도에서 생겨난 이야기지만 용모와 복장 및 기물 모두가 미얀마 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흥미롭다. 전통적인 양식과 제작기법을 충분히 수용한 현대식 칠 조형으로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다.

티크목재판에 흑칠을 하고 문양을 새긴 뒤 금박으로 마감한 불교 경전함도 당초문양(唐草文樣)이나 인물, 동물 등을 섬세하게 묘사해 눈길을 끈다. 여타 유물들이 진열장 유리 속에 전시되어 있어 그 모습을 입체적으로 감상하기 어려운 반면, 미얀마 현지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걸작품을 외부에 전시해 한층 자세한 감상을 할 수 있다.

박물관의 기증실은 관객들의 발걸음이 뜸한 곳으로 유명하다. 기증받은 유물을 기증자의 이름으로 묶어놓은 전시실이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기증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만들어 놓은 전시실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깨고 가치 높은 기증품들을 좋은 전시주제로 새롭게 연출한 예라고 평가된다. 이번 가네코 가즈시케 기증실의 기획전을 시작으로 기증실의 전시도 활발해지길 기대해 본다.
배원정 기자 wjba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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