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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나의 꿈나무들을 바라보며
[나의 연구실]나의 꿈나무들을 바라보며
  • 권호열[강원대·컴퓨터학부]
  • 승인 2007.05.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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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시절에 대학의 시간강사를 맡아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단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큰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 강단에 섰던 것이 어제 같은 데 벌써 20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박사학위를 끝내고 강원대학교에 전임교원으로 부임하였으며, 나의 작은 개인 연구실도 갖게 되면서, 많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제자들을 길러내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내가 연구실을 운영하는 교육철학은 나의 대학원 시절 은사님이신
한국과학기술원 전기공학과의 변증남 교수와 방문연구를 위하여 1년간 머물렀던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전기공학과 J. M. Cioffi 교수의 연구실 운영 스타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변증남 교수는 퍼지분야의 연구에서 보여주었듯이 새로운 학문에 과감히 도전하는 모범을 보이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연구 수준을 세계 최고수준의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만들어내셨다. 또한 Cioffi 교수는 수십 kbps에 지나지 않던 전화선 통신기술을 단숨에 수 Mbps 급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ADSL/VDSL 분야의 핵심기술을 직접 창안한 세계적인 학자다.
연구실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변증남 교수와 Cioffi 교수의 공통점은 학생들이 연구에 대한 큰 꿈과 넓은 시야를 갖도록 격려할 뿐만 아니라 한 번도 학생들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을 정도로 항상 학생들의 입장에 서서 학생들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격려한다는 점이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실험실 회의 분위기가 자칫 딱딱해지기라도 하면 먼저 농담을 던져서 분위기를 풀어주는 것은 물론, 학생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서 도와주는 것도 교수의 몫이다. 이렇게 교수가 철저한 학문 지도 뿐만 아니라 연구실 학생들의 시시콜콜한 인생문제까지 자상한 카운슬러가 되어 주니 이 분들의 연구실이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연구실이 된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영향을 받아 필자도 연구실 운영에 있어서 앞서 소개한 좋은 사례를 따르려고 노력하지만, 요즘처럼 이공계 기피현상이 전국적으로 보편화되어 대학원 진학률도 많이 줄어들고 전공 능력을 발휘하는
전문가의 길보다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모든 인생을 거는 분위기가 만연된 때에 교수로서 학생들을 잘 지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절감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연구실에서 공부하던 학생이 졸업 후 외국의 명문 대학으로 유학가서 학위과정을 마친 후 현지의 연구원으로 활약하거나 국내 유수한 연구소에서 연구책임자로 일하게 된 경우, 또는 학부를 마치고 당대 최고의 연봉을 받는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고 인사차 찾아와서 늘 꿈을 마음에 품고 최선을 다하도록 요구하며 스스로의 경력관리를 위해 전공과 영어, 리더십과 봉사를 강조하던 필자의 지도가 자신의 진로개척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은 교수로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내 연구생활의 원동력이 되어 준 것은 연구실에서 만난 좋은 학생들이었고, 이들과 함께 밤늦도록 연구주제와 씨름하던 시간들이었으며, 또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자라나는 꿈나무처럼
기대하고 바라보는 즐거움이었다. 이들이 사회 각처에서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는 날들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권호열 / 강원대·컴퓨터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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