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2:00 (토)
“학생들 경험담이 여성학 강의 토대”
“학생들 경험담이 여성학 강의 토대”
  • 강민규 기자
  • 승인 2007.05.14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외계층 찾아가는 학자들]신경아 한림대 교수

가출소녀 재교육기관의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신경아 한림대 강의전담교수(사회학과). 신 교수는 일주일에 2~3시간씩 가출소녀들에게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번은 수업을 마치며 학생들에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써오라고 숙제를 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곧바로 ‘어떤 엄마요?’라고 묻더군요. 가정환경이 좋지 못했던 이 학생들의 대다수는 어머니가 서너 명이나 됐는데 저는 이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겁니다.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실천하자는 논의를 이론 차원에서만 알고 있었던 저에게는 큰 가르침이었지요. 이 강의를 통해 저 또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신경아 교수는 서울의 한 가출소녀 재교육기관이 마련한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20여 명의 10대 가출 소녀들이 제1기로 이 과정을 수료했다. 철학, 글쓰기 등 여러 강좌 중 신 교수가 맡고 있는 강좌는 여성학이며 작년 2학기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신 교수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은 15명. 신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 중 대부분은 가정에서 ‘튕겨져 나온’ 10대 소녀들이다. 가정폭력이나 경제적 빈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중·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생계를 이어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도 학력을 보고 뽑는 현실이니 말이다.

당장 먹고 살 기술을 배우는 일이 급한 이들에게 여성학을 가르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 교수는 학생 개인의 경험에서부터 출발했다. “지식과 자신의 삶이 결코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처음에 의무적으로 이 강의를 들으며 “이걸 왜 배워야 하냐”는 반응을 보였던 학생들도 차츰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으며 그것에 대한 신 교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신 교수는 학생들과 문답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경험담에서 여성학의 주요 개념을 짚어내 설명해줬다.

가부장제에 대한 강의가 좋은 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게 싫다는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묻자 학생들은 “여자들끼리 뭉치지 않고 분열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신 교수가 왜 분열하냐고 묻자 학생들은 한참을 생각한 후에 “여자는 남자에 비해 가진 게 적으니까 양보할 여력도 적고 더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신 교수는 이를 놓치지 않고 설명을 덧붙였다. 여성이 자원과 권력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여성끼리 반목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가부장제의 특성이라고.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이 문답이나 토론 중에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은 신 교수가 고집하는 강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신 교수는 “강의를 드라마에 비유한다면 주인공은 학생이고 교사는 PD 역할만 할 뿐”이라고 말한다.
1989년부터 오랫동안 대학가에서 시간강사, 연구교수로 일해온 신 교수.

하지만 그는 대학 밖의 ‘활동가’이기도 하다. 여성노동, 여성정책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성노동자 운동에 조력하기도 했으며 2000년대 초에는 한국여성연구소에서 4년간 근무하며 부소장을 역임했다. 국회의원, 경찰,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사회학·여성학 강연을 한 횟수 또한 수없이 많다.

그런 만큼 신 교수의 관심사는 당연히 ‘연구’보다는 ‘교육’이다.
“앞으로는 대학 밖에서의 사회교육, 성인교육이 더 중요해질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평생교육의 장이 확장되는 데 일조하고 싶네요. 연구요? 물론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만, 연구도 결국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하는 것 아닐까요?”

강민규 기자 scv21@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