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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 관경변상도와의 비교
中·日 관경변상도와의 비교
  • 유마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 승인 2007.04.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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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97점 대부분 당대 작품···日, 카마쿠라시기 전후 성행

5세기에 성립된 관경의 궁극적인 목적은 누구나 극락왕생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알기 쉽게 표현한 관경변상도는 唐代(618-907) 가장 성행했던 경변상도로 아미타불화 가운데 기본이 된다.
중국 북쪽 돈황에 위치한 막고굴은 366년부터 元代(1227-1368)에 걸쳐 조성된 수많은 石窟 중 492개의 굴에 그려진 불교벽화와 막고 17굴 장경동에서 발견된 천여 점의 탱화로 유명하다.

이 중 2백여점의 아미타불화 가운데 97점의 관경도(벽화84점, 탱화13점) 대부분은 唐代 작품이다. 이후 관경변상도는 강남 사천 대족 석각으로 이어져 발전한다.  대족 석굴의 石刻은 唐末이래 南宋에 이르기까지 조영이 계속되었던 곳으로 석조각 대부분이 北山과 寶頂山에 집중되어 그 광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자랑하고 있다.

□ 중국 사천 대족 보정산 관무량수불경 석각의 부분 모습이다. 상품하생의 모습을 표현했다.

보정산 석굴 대불만(大佛灣)의 말굽형 계곡에는 남송대 석각이 파노라마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거기에는 불교, 유교, 도교 등의 彫像이 풍부하게 남아있다.
경변상이 거대한 불·보살상을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일반 신도들의 모습이 당시의 풍습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걷는 사람은 불교설화 안에 살아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제18龕의 마애조상인 관무량수불경변상은 그 규모(높이 8.1m, 폭 20.2m)도 대단하지만 밀가루로 빚은 듯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느낌의 조각술은 북방과는 매우 다른 남방 특유의 精致함을 보여주고 있다.
상부의 장대하고 비만한 아미타삼존불 아래, 염불왕생의 ‘三品九生’이 넓게 펼쳐져있다.

16관 중 아미타삼존불(9관-11관)과 극락구품(14관-16관)장면이 강조된 반면 나머지 觀(1관-8관, 12관, 13관)이 북산석굴 제245龕 唐末 관무량수불경변상과는 달리 대칭을 이루지 않은 것은 요철이 있는 마애의 특성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많은 장면을 간단, 명료하게 압축해 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고부조·환조·저부조·선각 등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채색의 흔적이 남아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구품연못, 즉 극락에 다시 태어난 왕생자는 갓난아기인 동자로 환생하였는데, 연꽃 위에 꿇어앉은 자세로 아미타불을 향했으나 등을 보인 모습, 아직 열리지 않은 연꽃 속에 얼굴만 내민 모습 등 다양하다.

물결이 표시된 이 구품연못에는 동자를 연꽃대좌로 맞이하는 불·보살상 외, 연꽃·연봉오리·연잎 등이 가득하며 각 장면마다 사각형의 석판에 그 내용을 기록하였다.
따라서 관경서분변상도가 생략내지는 축소된 대신 구품이 강조된 조선조 관경변상도는 보정산 석각관경변상에 가깝다. 즉, 돈황의 관경변상도가 서분과 16관이 한 폭에 모두 표현되었다면, 南宋代에는 서분이 생략되고 구품이 부각된 관경변상도가 한국으로 유입되어 조선조 아미타정토도 관련 불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관경변상도는 唐代 대두되었고 일본은 카마쿠라시기(鎌倉 : 1192-1333)를 전후로 성행했으나 고려말 조선시대 관경변상도는 보다 많이 남아있어서 그 발전과정은 한국불화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중국, 일본의 관경변상도는 지역별, 시대적인 특징이 나타나지만 축약된 관경변상 내지는 아미타경이 유일하게 도상화된 용문사 목각탱이 다른 나라에는 없고 오직 조선시대에서만 볼 수 있는 이유이다. 부조된 존상의 조각수법이 다소 평판적이지만 업보에 따른 극락왕생의 의미를 간결하게 구품연꽃으로 상징화한 화면 구성은 앞시대의 구품장면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조선조후기의 미의식을 대변하는 걸작품이라고 하겠다.  /유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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