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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관중의 선택’
누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관중의 선택’
  • 교수신문
  • 승인 2007.03.2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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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관자> 관중 지음 | 김필수 외 옮김 | 소나무 | 2006

이미 지난해의 일이지만, 드디어 <管子> 완역본(소나무, 2006)이 출간되었다. 과거 <管子>에 담겨진 폭넓은 사상적 스펙트럼과 분량으로 인해 편역 내지 발췌번역에 국한되었던 한계를 벗어나서 이번 최초의 완역은 쾌거이다. 필자도 누군가 완역해 주기를 바랐던 비겁함(?)과 기대감으로 흥분했고, 완역의 고단한 과정을 묵묵히 수행했을 번역자들의 노고가 마치 직접 지켜보았던 듯 눈앞에서 펼쳐지는 환상에도 빠졌다. 이번 완역은 <管子>에 대해서 다시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管子> 24권86편은 <漢書> ‘藝文志’에서 道家로 분류하고, <七略>, <隨書> ‘經籍志’, <四庫全書簡明目錄>에서 法家로 분류하지만, 사실상 선진시대 제자백가의 사상들이 담겨 있는 종합서로 평가된다. 번역자의 해제에서도 언급되었듯이, <管子>의 화두는 ‘질서’와 ‘부국’이며, 管仲 자신이 부국강병을 이룩한 성공한 정치가라는 점에서 전국시대에 이르러 부국강병론을 제기했던 법가의 비조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로 인해서 선진시대 법가의 사상적 계보를 관중-자산-이회-상앙-한비로 거론하는 한편, 관중이라는 존재는 선진유가에 의해서 齊桓公을 覇者의 위치에 올려놓은 覇道의 주창자로 평가되었다. 더욱이 漢 제국 이후 유·법간 투쟁에서 유가의 王道와 비견되어 관중의 사상이 왕도를 무시하고 부국강병과 전제군주를 정당화했던 법가의 범주로 치부되었으며, <管子>는 잡서로 취급되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우매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기존의 평가가 올바른 것이라면, 왜 현재까지 <管子>라는 서적이 전승되었고 읽을 가치가 있는 고전이냐 하는 점이다. 더욱이 유교의 국교화로 인해서 관중이라는 인물과 <管子>라는 서적이 공맹유학의 순정한 가치에 어긋나는 세속적인 것이라는 기존 평가를 고려할 때, 단순히 전통의 보존이라고 치부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현재까지의 일반적인 답변은 중국의 역대 왕조가 지향한 도덕정치의 명분과 내부기제로서 법치라는 外儒內法의 相補性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 점만으로는 그 존재의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사실상 제자의 사상과 학문이 분리되어 각자의 학설을 이념화하여 우열경쟁을 시작한 것은 전국시대에 이르러서 본격화한 현상이다. 오히려 춘추시대의 사상은 제자의 분리 이전이기에 특정 사상과 이념에 편향되지 않았다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관중을 법가의 비조로 평가하는 태도는 사실상 후대 유가에 의한 영향일 뿐 관중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만약 관중의 사상을 법가로 치부할 수 없다면, 무엇을 찾아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그 단서로서 <管子>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물론 여기에서 <管子>의 진위문제나 분류상 법가인지 잡가인지의 논쟁은 부차적이며, 그 논쟁만큼이나 <管子>의 내용에 담겨 있는 풍부한 사유와 실천의 단편을 어떻게 이해하고 현재의 시각으로 조망할 것인지는 연구자 및 독자의 몫일 것이다.

필자는 편집시기와 구성의 특성상 <管子>란 서적이 유·법 투쟁의 결과물이자 그 투쟁 자체가 관중의 정치적 사유와 성취에 기인한 것으로 이해한다. 즉 <管子>에는 ‘관중’이라는 실재했던 정치주체의 문제의식이 투영되어 있으며, 그의 문제의식 속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해답이 담겨 있다. 그것은 <管子>에서 소개되는 내용의 합리성에 기초하며, 그 합리성은 ‘누가 통치할 것인가’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따라서 <管子>는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은 유가적 예치와 법가적 법치간 비교우위의 해답이기보다 차라리 양자의 겸전을 위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인간의 합리성, 예·법 선택의 출발점”
‘질서’·‘부국’ 성취 위한 통치원리 전개

<管子> 첫 편인 ‘牧民’은 관중의 정치철학이 무엇인지를 추론할 수 있는 단서와 <管子> 번역을 어떤 측면에서 조망해야 할 것인지를 시사한다. 왜냐하면 “나라에는 네 가지 강령이 있다... 무엇을 네 가지 강령이라고 부르는가. 첫째는 예, 둘째는 의, 셋째는 염, 넷째는 치”(牧民)라는 예의염치(禮義廉恥)의 네 가지 강령은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중, 더 나아가 선진시대의 인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통치야말로 합리적 규준에 기초해야 한다는 확신을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란 바로잡음’(法法)이며,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데 있고, 정치가 피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르는데 있다’(牧民)는 <管子>의 정언은 관중의 정치적 이상상이 유가적 정명에 기초한 예치의 달성과 다르지 않고, 예치의 달성여부는 군주-신민의 합리성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만약 <管子>에 내포된 정치적 이상상이 유가적 예치의 단서라면, 관중을 법가의 비조로 평가하거나 <管子>에 대한 기존의 무관심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管子>에 내포된 법가적 요소의 선명성에 기인하며, 역설적으로 관중과 같은 경세가들의 정치철학이 예치와 법치 중 어느 하나에 경도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管子>의 ‘법칙, 현상, 법도, 교화, 결정, 마음씀, 계산이 이른바 칠법’(七法), ‘무릇 법이란 군주가 백성을 통일하여 부리는 방법… 법이란 천하의 지극한 도며, 성군이 절실하게 써야 하는 것’(任法)이란 진술은 상앙-한비자의 법 개념과 다르지 않다. 즉 ‘은혜는 백성의 원수고, 법은 백성의 부모’(法法)라는 <管子>의 정언은 유가의 親親이 갖는 규범성에 대한 법가적 시각과 함께 道로서 법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공유한다. 그것은 인간관계, 더 엄밀히 말하자면 군주-신민의 정치적 관계에서 법이 지닌 합리성이 예의 규범성과 동일하다는 법가적 인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결과 ‘이른바 인의예악이란 모두 법에서 나온다’(任法)는 논리로 전개된다. 따라서 ‘국력이 강성한 나라를 일러 패업을 이루었다고 하고, 다른 나라를 아울러 바르게 한 나라를 일러 왕업을 이루었다고 한다’(覇言)는 <管子>의 정언은 후대의 왕패논쟁과 달리 당시에 양자 모두‘질서’의 회복을 가져다주는 합리적 선택으로 수용되었음을 시사한다. 결국 ‘패업과 왕업이 시작되는 곳은 사람을 근본으로 한다’(覇言)는 단언은 관중의 정치철학이 예·법 선택의 주체로서 인간의 합리성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번역자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管子>에 내포된 정치철학의 경세적 요체, 즉‘질서’의 회복을 위한‘부국’의 추구는 군주-신민간 합리적 관계의 형성이 생존의 선결에 있다는 관중의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그것은 <管子> ‘牧民’으로 다시 회귀할 것을 요구하며, ‘牧民’이 첫 편으로 편집된 의도를 명백히 한다. 즉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풍족하면 영광과 치욕을 안다’(牧民)는 행태주의적 관점은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治國)는 경세에 초점을 맞춘 治道論의 전제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치라는 행위와 그 정당성은 공동체 구성원의 생존과 편의의 제공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관중의 선택은‘질서’와‘부국’의 성취를 위한 합리적 통치기제의 완성이었다. 이와 같은 <管子> 분석이 수용 가능하다면, 후대의 분기되고 정형화된 유·법의 기준에서 <管子>를 투영하는 평가방식을 좀 더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윤대식 / 충남대·동양정치사상

필자는 한국외대에서 ‘맹자의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세 안재홍 심층 연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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