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4:55 (일)
中·日 철불과의 비교
中·日 철불과의 비교
  • 최성은 / 덕성여대· 미술사
  • 승인 2007.03.26 16: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中, ‘뛰어난 조형감’ … 日제작기술은 ‘초보적’

중국에서는 동의 사용량에 비해서 산출양이 적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鐘을 비롯한 공예품들을 철로 제작하였다. 철불이 만들어지는 것은 남북조시대부터라고 생각되므로, 통일신라시대와 카마쿠라(鎌倉)시대에 들어와서 철불 제작이 시작되는 우리나라나 일본에 비해 시기적으로 이른 편이다.

일본 카마쿠라 불상.
산동성에서 출토한 비문에는 북제 하청 2년(563)에 철조장륙상이 조성되었다고 적혀있고, <太平廣記>에는 수 개황연간(581-600)에 높이 70척의 철상이 주조되어 분수 서쪽 대불사에 봉안되었다고 전한다.

9세기 중엽에 唐을 여행하였던 일본의 순례승 圓仁은 그의 <入唐求法巡禮行記>에 太原 開元寺에서 철조미륵상을 보았다고 쓰고 있다.

당 장안의 연강방 동쪽지역에 있던 서안 靜法寺址에서 1994년에 출토한 鐵佛倚像은 唐代의 철불로 아주 귀한 예인데, 광배와 오른손, 대좌좌우 측면부분과 두발을 딛고 있는 연화족좌는 後補된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불상이다.

불상의 표면에는 麻로 생각되는 섬유가 붙어 있는데 그 위에 건칠을 입히고 금을 입혔던 듯하다.

당 철조미륵불의상.

남북조시대 이래 미륵불은 의자에 앉아있는 倚像으로 표현되고 있어 이 철불도 미륵불로 생각되고 있다. 아마도 엔닌이 산서성에서 보았던 철조미륵상이 이와 비슷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철불에 관한 중국의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중국에서 철불은 唐代에 많이 제작되었던 듯하며, 당말· 오대에서 송대에 걸쳐 철불조성이 크게 유행했고 명·청대까지 우수한 철불들이 제작되었다.

지역적으로는 중국 전역에서 조성되었지만, 특히 산서지역에서 전해오는 철불 제작에 대한 기록이 많은데, 이는 산서북부지역에 양질의 철광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중국의 철불상들은, 철이 오랜 기간 사용되어온 익숙한 재료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조형감이 뛰어나고 표면의 이음새도 두드러지지 않아 금동불과 비교해도 그다지 뒤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중국의 철불기법은 우리나라 철불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른 시기부터 철불이 제작되었던 중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鎌倉시대부터 室町시대에 걸쳐 철불이 조성되었고 江戶시대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다. 철불이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鎌倉시대 13세기 중엽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중국 송대 철불로부터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존하는 철불의 약 90퍼센트가 東일본에 분포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일본의 철불 가운데 가장 조성시기가 이른 상은 1218년의 명문이 있는 木縣 上石川藥師堂의 약사불좌상이다.

이 상은 섬세하지 못한 얼굴의 이목구비와 형태가 고르지 않은 나발, 佛身의 어색한 옷주름 등, 세부표현에서 볼 때,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철불에 비해 조각기법이 떨어진다. 鎌倉시대에는 목조각이 크게 발전하여 뛰어난 佛師들에 의해 우수한 목불상이 다수 조성되었던 반면에 철불 제작기술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최성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