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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 유보' 긍정적 … 개헌 서두를 일 아니다
'발의 유보' 긍정적 … 개헌 서두를 일 아니다
  • 교수신문
  • 승인 2007.03.1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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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쟁점: 청와대 제안 원포인트 개헌에 대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지 두 달여 만인 지난 8일, 정부 헌법개정추진지원단이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과 ‘대통령 및 국회의원 동시선거’를 주요골자로 하는 개헌시안을 공표했다.

그리고 노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각 정당과 대선후보들이 다음 정권 임기 중의 개헌을 3월말 이전에 확약한다면 개헌안을 발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3월말’이라는 시한을 미리 못박으면서 정치권의 개헌 논의를 촉구하는 ‘조건부 개헌발의 유보’의 의사를 밝힌 것이다.

노대통령이 개헌안을 즉각적으로 발의하지 않고 각 정당이나 대선후보들에게 개헌에 관한 정치적 사회적 논의를 촉구한 점은 일단 긍정적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미리 못박은 ‘3월말’이라는 시한이 개헌문제에 대한 정당의 당론과 대선후보들의 공약결정을 위해 현실적으로 너무 짧은 기간이 아닌가라는 일각의 지적도 들린다.

5년 단임제는 이제 그 역할을 다해 이 땅에서 공(功)은 없고 과(過)만 남은 제도로 전락해 버렸다는 데에 4년 연임제 개헌론의 출발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과연 5년 단임제가 그처럼 천덕꾸러기 퇴물 취급을 받아야 할 제도인지는 의문이다.

우리 건국헌법부터 약 20년의 세월동안 시행되었던 4년 연임제가 매번 장기집권과 독재화의 도구로 전락하자 1980년 헌법부터 들어온 것이 단임제다. 대통령 단임제는 그 이전 우리 헌정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었던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순환을 좀 더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5년 단임제를 지금 손대는 데에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믿음이다. 현행 헌법 하에서 소위 ‘실패한 대통령’이 출현한 것이 과연 5년 단임제라는 ‘제도’ 때문인지도 깊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실패했다고 평가되는 대통령들의 실패는 오히려 대통령의 정책적 무능이나 개인적 문제에 연유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정책적 오판과 무능으로 IMF 위기를 불러왔고 친인척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아 임기말에 도덕적 상처를 입었던 것을 두고 ‘5년 단임제’라는 대통령 임기‘제도’에 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지나친 책임전가다.

‘4년 연임제’로 바꾸기만 하면, 정책적으로 무능하고 친인척 관리를 잘못해도 자동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미국 등에서처럼 ‘4년 연임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8년 임기로 가기 쉬운 대통령 권력을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력이 충분히 성숙돼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동시선거 실시도 문제다. 정부의 개헌시안에서 양 선거의 선거시점과 관련해 공표된 3개의 안은 2012년 2월의 대선·총선 동시 실시, 2012년 1월, 2월 분리 실시, 2008년 동시 실시 등 모두 동시선거나 한 달 간격의 준(準)동시선거를 예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동시선거를 영속화하기 위해, 대통령 궐위시 후임 대통령의 임기를 국민의 직접선거로 뽑힌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전임대통령의 잔여임기로 한정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동시선거 관철의 의지가 이번 개헌시안의 밑바닥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동시선거의 이유로 우선 선거비용 절약이 곧잘 이야기된다. 선거를 따로 치르니 비용이 많이 들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야말로 민주사회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뜻을 정치과정에 여과없이 표명하고 반영시킬 수 있는 거룩하고 신성한 기회다. 비용 때문에 합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통령 담화문이 밝힌 동시선거 실시의 또 다른 이유는 국회의원 선거를 따로 치르니 여소야대 국회가 출현하여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수행을 발목 잡더라는 데 있었다. 대통령제는 미국헌법의 아버지들이 고안해낸 발명품이다. 새로운 미합중국은 영국처럼 혈통에 의해 세습되는 왕이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뽑은 ‘민선(民選)의 왕’에 의해 통치되고 다시 그 왕은 의회라는 또 다른 민선의 대표들과 지혜로운 현인들로 구성된 사법부에 의해 견제 받는다는 것이 대통령제의 기본적 아이디어였다.

철저한 권력분립과 권력 간의 ‘견제’가 대통령제의 핵심인 것이다. 따라서 여대야소 국회 구성을 용이하게 해주리라는 전제하에 동시선거를 관철하려는 것은 대통령제 헌법의 핵심인 대통령 권력 ‘견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 위험하다. 여대야소 국회 하에서 대통령의 행정부와 입법부가 동일정당에 의해 장악되면 입법부의 대통령 ‘견제’가 형식화될 수 있고, 견제 받지 않는 대통령 권력은 독재화로 치달을 수 있는 유혹과 만나게 된다.

임기 중 대통령 궐위시 남은 임기가 일 년 미만이면 국무총리가 대통령직을 대행한다는 것도 문제다. 부통령도 아니고 최장 12개월 가까이를 국민이 직접 뽑지 않고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국무총리가 통치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원리에 정면으로 반할 수 있다. 오히려 부통령제 부활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국민에 의해 선택된 부통령이 대통령의 잔여임기를 채울 수 있도록 해야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개헌발의권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다.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의 개헌발의권도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헌법개정권력자인 국민의 뜻을 충분히 수렴해 신중히 행사될 때, 민주적인 개헌발의권 행사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최고법인 헌법의 개정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꼭 개헌을 해야 한다면 대통령 임기 말인 지금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시도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이익이 아니라 國利民福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시민사회 주도로 기본권조항까지 포함한 포괄적 개헌의 연구·검토와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밟아 신중한 개헌으로 나아가는 것이 正道라고 믿는다.

통치구조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임기조항만 손댈 것이 아니라, 앞에서 본 것처럼 부통령제를 부활시킨다든지,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과반의 국민적 지지를 받아 제대로 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대통령을 선출하게 한다는 등의 내용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민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개헌은 3월말의 시한을 미리 못박고 조급히 서둘 일이 아니다.

임지봉 / 서강대 헌법학
필자는 미국 UC 버클리대학교 로스쿨에서 ‘권력분립원리하의 사법적극주의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로 1999년에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사법적극주의와 사법권 독립’ 등이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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