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30 (금)
근대문학 안으로 불러들이 낯선 민족어의 경험
근대문학 안으로 불러들이 낯선 민족어의 경험
  • 교수신문
  • 승인 2007.03.16 2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서평_‘중국 조선족 문학의 어제와 오늘’ 정덕준 외 지음 ㅣ 푸른사상 ㅣ 2006

근대문학 안으로 불러들인 낯선 민족어의 경험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서 ‘민족’ 개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탈환하고 구성하려는 기획이 식민지 근대의 문화적 열정으로 나타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매체를 비롯한 각종의 제도적 장치가 뒤따랐던 것이 근대문학 형성의 숨길 수 없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세계 정세의 변화에 따라 脫민족주의 담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고 또 그것이 정합성에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로 인해 민족의 동일성을 상상하고 확인하려는 오래된 에너지가 소진되거나 파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월드컵이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낱낱이 입증되었듯이, 아직도 사람들은 자신을 근대적 민족 국가로 귀속시키려는 의지와 열망을 양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역사의 키워드가 ‘내셔널’에서 ‘인터내셔널’로 또 ‘트랜스내셔널’로 옮겨갔을지라도, 여전히 ‘민족’은 커다란 유효성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현실적 범주인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앤더슨은 그의 유명한 <상상의 공동체>에서 ‘언어’가 바로 그러한 근대적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핵심이라고 보았는데, 그 점에서 근대문학은 그 같은 ‘민족어’의 통합과 활성에 의해 형성된 문화적 실체라 할 것이다.

 최근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대상은 그동안의 관행을 벗어나 공간적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이국땅에서 펼쳐진 민족어의 결실에 각별히 주목하는 것도 그러한 흐름 가운데 하나이다. 정덕준 한림대 교수가 대표 집필한 <중국 조선족 문학의 어제와 오늘>은,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창작되고 소통된 민족어의 실체들을 독립적으로 범주화하여, 1910년대 이후 20세기 전체를 통관하고 있는 저작이다. 시, 소설, 비평으로 나누어 그 안에 나타난 문학적 지형과 지향을 검토하고 있는데, 주로 중국의 역사 변화와 조선족 문학의 흐름이 대응된다는 관점에서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시’와 ‘소설’과 ‘비평’이라는 별개의 장르가 시대의 추이를 따라 균질적으로 지속되고 변모된다는 가설과 검증을 수반하게 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이 저작으로 하여금 선명한 집중성과 일관성을 견지하게 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은 풍요로운 쟁점을 지니고 있지 않다. 중국 땅에서 100년 동안 펼쳐진 근대문학의 실체를 실증적으로 복원하고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槪觀해내는 것이 책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 조선족 문학을 “100여 년의 발전 과정을 통해 한국문학으로서의 전통과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고”(5쪽) 있기에 이를 ‘이주·정착사의 再構’라는 관점에서 유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별히 일제 강점기에 중국에 거주했던 조선인에 의해 한글로 창작된 결과를 일러 ‘재중 조선인 문학’이라 명명하여 각 장의 전반부에 할당하고 있고, 해방과 건국 이후 중국에서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살아가는 조선족에 의해 한글로 창작된 결과를 일러 ‘중국 조선족 문학’이라 하여 각 장의 후반부에 배치한 것은, 이러한 유형화와 일관된 체계에의 욕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계화시대에도 ‘민족’은 여전히 유효

 그런데 이 책은 ‘중국 조선족 문학’이라는 개념에 이중성을 부여하고 있다. 말하자면 해방 이후의 결실들만 일러 ‘중국 조선족 문학’이라고 칭하고 나서, 다시 그것을 일제 강점기를 아우르는 상위 개념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창작 주체의 연속성과 민족적 특질의 공유라는 관점에서 그리하였다고 한다. 비유컨대 일제 강점기를 ‘근대문학’, 해방 이후를 ‘현대문학’이라 해놓고, 근대의 지속성을 들어 20세기 전체를 ‘근대문학’이라는 상위 개념으로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이때 상위 개념으로서의 ‘중국 조선족 문학’은 “일제 강점기와 현재의 중국에서 재중 조선인 및 중국 조선족 작가가 한글로 창작한 문학 일체”(23쪽)를 뜻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 조선족’이 해방 이후 중국에서 법제화한 소수민족으로서의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까지 ‘중국 조선족’ 범주로 소급하는 데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비록 양자 사이의 불가분리성과 연속성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기왕 ‘재중 조선인’과 ‘중국 조선족’으로 대등하게 나눈 범주를 승인하고 그 양자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을 試論的으로 제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 책은 다루고 있는 대상의 정연함과 풍부함 그리고 적실성에서 단단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실증과 해석과 계열화에 이르기까지 공동 저자들이 들였을 積功은 그야말로 경의를 표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立論과 대상 사이의 소소한 균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소월을 “이주기의 대표적인 자유시”(46쪽)로 본다든지, 윤동주가 국내에 들어와 창작한 결과들을 “재중 조선인 시문학의 예술성”(53쪽)으로 평가한다든지 하는 것은 여전히 범주적 쟁점을 시사한다. 가령 ‘재중(在中)’이 중국에서의 일정한 생활 경험과 그것의 형상화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것이라면, 소월 시편의 경우 소재가 중국 일원을 다루었다고 하더라도 국내에서 창작된 ‘유(이)민시’ 정도로 설정되어야 할 것 같고, 윤동주의 경우는 그가 살아온 시대인 1930-40년대 초반까지의 동아시아 정세로 보아 ‘재중 조선인’으로서의 속성보다는 ‘한국 근대문학’의 매체 및 언어적 속성을 견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듯싶다. 이러한 소소한 사례를 강조하는 까닭은, 공들여 ‘중국 조선족 문학’의 범주를 확정해놓고 사례에서는 소재(소월), 고향(윤동주), 삶(천청송 등을 비롯한 대다수의 시인들) 등의 기준이 섞이게 되는 것을 성찰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은 ‘근대문학’이 근대적 민족어로 쓰인 언어적 실체라는 관점에서, 고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국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온 이들이 간직하고 펼쳐온 민족어의 역사를 관점의 일관성과 풍부하고도 정교한 실증과 해석으로 갈무리한, 그리고 그동안 일제 강점기 在滿 문학 연구에 한정되었던 영역을 20세기 전체로 확장한 득의의 성과라 할 것이다. 낯선 민족어의 경험을 한국 근대문학의 자장 안으로 확연하게 불러들인 것이다.

 최근 우리는 ‘탈국경 서사’라고 불리는 일련의 소설들이 우리 문학의 낯선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그 떠나온 지점이 어디인가를 묻는 역설의 방식을 통해, 20세기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우리 근대사의 경우, 한반도 바깥에 거주하면서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가졌던 이들의 삶과 의식을 담은 성과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적극 품어 들여야 할 민족어의 자산이자 부채가 아닐 수 없다.

 오래 전 한 방송 프로를 진행하던 아나운서는 인사말을 할 때 ‘해외동포 여러분!’을 꼭 호명하였다. 그 ‘해외 동포 여러분’은 여전히 언어의 동질성을 유지하면서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자신의 원천이자 결핍의 핵심으로 상상하고 있다. 그 점에서 트랜스내셔널 시대를 가로지르고 있는 ‘코시안’ 문제나, 근대사 전체를 관통하는 ‘디아스포라’ 경험을 근대문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은 첨예한 쟁점을 안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학진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이 연구가 이러한 후속 과제들에 대한 심층적 進境을 보여주기를 희망해본다.

유성호 / 한국교원대·국문학

글쓴이는 연세대에서 ‘김현승 시의 분석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시의 과잉과 결핍> 등의 저서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