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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알리고 싶어도 출판사를 못 찾아요"
"한국문학 알리고 싶어도 출판사를 못 찾아요"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7.03.10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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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안선재 전 서강대 교수

안선재 前서강대 교수(영문학·사진)는 정년퇴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했다. 연구실을 빼곡히 채웠던 책들을 서강대 근처 오피스텔로 옮겨놓은 점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정도다.

7일 오후 만난 안 전 교수에게 올해 정년퇴임한 소감을 묻자 “이번 학기에도 강의 두 과목을  맡았다. 서강대 측에도 날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이용해 달라고 말했다”며 웃는다.

프랑스 테제(Taize) 공동체 修士로 1980년 한국에 처음 온 뒤 85년부터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고 94년 귀화, 지금까지 22권의 한국문학 번역서와 4권의 책을 펴낸 안 전 교수. ‘한국문학의 해외 전도사’란 그의 별칭은 이미 익숙하다.

먼저 20년이 넘은 교수 생활 속에서 그의 눈에 비친 대학의 변화상이 궁금했다. “서강대에 처음 온 뒤 8년 동안은 최루탄 냄새가 가득했죠. 당시 학생 대부분은 시골에서 올라왔었는데 이젠 도시출신이에요. 가장 많이 변한 점입니다.”

대부분이 그렇듯 그도 보람 있는 경험으로 학생의 ‘좋은 과제물’을 꼽았다. 그는 “학생들의 리포트를 보면 ‘이 학생이 내 강의를 통해 재밌게 공부했고 생각도 많이 했구나’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매년 한 두 번 씩 지리산을 찾고 “10년 전엔 전통무용과 음악을 시내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이젠 국악원에 가야 한다”고 불평할 만큼 한국문화를 사랑한다.

그러나 한국문학에 대한 평가는 사뭇 냉정했다. “한국문학은 충분히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자못 관대한 답변을 기대했던 게 무색해질 만큼.

“한국 시는 보편성이 있지만 소설의 경우 너무 어둡고 현실적인 작품들은 번역해도 인기를 끌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 한국문학에 관심 없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국내에서 유명한 작품도 해외에 나가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의 문제제기는 이어졌다. “한국문학을 알리고 싶어서 번역을 해도 출판사 얻기가 어려워요. 재작년 고은 선생의 화엄경을 번역한 책이 나왔는데, 막상 번역은 1994년에 완성했지만 출판되기까지 12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출판사를 못 찾았기 때문이에요(웃음).”

그는 “영국, 프랑스 등 외국 현대문학 가운데서도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이 거의 없다”며 “어렵고 안 팔릴 거라는 이유로 번역을 안 한다. 번역을 해도 급하게 이뤄져 내용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영시를 가르치다 한국의 시를 알고 싶어 시작한 한국문학 번역작업은 올해로 17년째를 맞았다. 안 전 교수는 “한국어를  늦게 배워 번역 할 때도 몇 명이 뒤에서 보조해준다”며 “한국말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고은의 禪時 ‘뭐냐’를 설명할 때와 95년 이문열의 ‘시인’ 영역판에 대한 영국인의 평가를 언급할 때 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는 현재 고은의 만인보를 번역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난 원래 계획하는 사람이 아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년퇴임을 계기로 하던 일을 좀 더 여유 있게 할 수 있겠죠. 이제 전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에요(웃음).”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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