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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연봉제]학자에서 社員으로 전락한 미국교수
[미국의연봉제]학자에서 社員으로 전락한 미국교수
  • 교수신문
  • 승인 2000.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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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학의 연봉제와 교수노조 1 : 대학체제 변화와 연봉제 등장

조벽 / 미시건공대·기계공학부

교육부가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교수 연봉제는 미국의 그것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사실 이 제도는 다분히 미국 식이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미국과 안에서 ‘느끼는’ 미국은 분명 다를 것이다. 우리신문은 이번호부터 3차례에 걸쳐 미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수연봉제의 실태를 조벽 미시건 공대 교수로부터 들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2002년도에는 대학도 연봉제를 실시하게된다. 연봉제는 교수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농촌문화가 도시문화와 근본적으로 다르듯이 연봉제는 호봉제가 일구어 낸 교수사회의 문화를 발칵 뒤집어 놓을 것이다. 이에 대비하듯이 교수노조추진기획단이 최근에 결성됐다.
교수노조? 놀랄 일은 아니다. 이것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개혁 바람이 한창 불기 시작하던 95년에, 그리고 연봉제가 처음으로 들먹거려지던 97년에 필자가 교수노조의 등장을 책에 언급하였다. 필자가 남달리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과거를 기억해냈을 뿐이다.

미국을 베끼는 한국의 대학
한국은 산업화를 하면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고, 교통이 혼잡해지고, 이혼이 늘어나는 등 산업선진국의 문제를 고스란히 물려받지 않았던가. 그렇듯이 지식산업화를 하고자하는 한국은 또 다시 선진 외국의 역사를 뒤밟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대학은 미국을 따라갈 확률이 높다. 한국이 미국 교육구조를 고스란히 도입했고, 이제는 미국대학의 효율성과 생산성마저 벤치마킹하는 마당이니 말이다.
지식기반사회를 한국보다 훨씬 앞서 맞이한 미국에는 현재 교수노조가 성행하고 있다. 국공립고등교육기관의 60%가 교수노조를 결성하고 있다.
교수가 노동자라? 이 역시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제는 노동자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산업시대의 노동은 주로 육체노동을 뜻했지만 지식산업시대의 노동은 정신노동(두뇌력)이지 않은가. 최근에 산학협동이니 하면서 기업이 대학에 많은 기부금을 내거나 자금을 투여하고 있는데 대학이 ‘예뻐서’ 돈을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지식산업체는 대학을 투자 대상으로 볼 뿐이며 대학이 지식 창출에, 지식산업화에 앞장을 서줄 것이라는 투기인 셈이다. 대학 지식인의 ‘노동력’을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기반사회가 된다해서, 두뇌력이 곧 노동력이라고 해서 교수노조가 꼭 생겨야할 이유는 없다. 미국대학 교수들이 노조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지만 크게 경제적 요소와 대학행정의 구조적 요소가 있다. 물론 이 두 주요 요소가 서로 맞물려 있으며, 한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이해가 된다.
50~60년대는 미국 대학의 황금 시대라고 볼 수 있다. 대학생 수가 급격히 불어나고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대학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모두 팽창하던 때다.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80년대는 학생 수 마저 줄어들기 시작해 대학들이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던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는 대학의 책무(accountability)를 요구하였고, 비상에 걸린 대학들이 교수출신이 아닌 외부인사(정치인, 경제인)를 총장으로 모셔오는 붐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고귀한 상아탑이 무너지고 대학에 구조조정이 대대적으로 시작됐다. 대학 총장이 과거에 정치인이고 기업인이다 보니 대학이 점차 기업체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보직교수들이 기업 경영인들의 용어를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하였고, 교육목표를 수치화 했다. 경제성을 내세워 전임교수 대신 시간강사를 선호했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교수는 연구와 강의에 전념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리고 대학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강의보다 연구를 강조하게 됐다. 백년대계라 하여 꼼지락 꼼지락 기던 교육체제가 일년단위로 팔딱팔딱 뛰는 경영체제로 변신하게 됐다.
연구와 강의에 전념하기 위해 교수는 점차 대학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업무, 즉 위원회 활동을 회피하게 됐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교수가 6% 증가되는 동안 대학 행정직은 무려 45%나 늘어나게 됐다. 비대해진 대학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보직교수는 전문 행정가로서 자리를 굳혀나갔다. 그리고 군졸을 지니고 있는 보직교수들은 일에 찌든 일반교수 위에서 군림하기 시작했다.

보직교수와 일반교수의 대립 심화
행정보직교수는 일반교수를 ‘밀어붙이기’ 위해서 종신제(Tenur) 대신 계약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연봉제를 강도 높게 이행하는 것이었다. 연봉제란 열심히 일을 한 교수를 경제적으로 우대한다는 경제·경영 시스템이다. 하지만 여기서 ‘열심히 했다’의 의미는 “대학이 제시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란 뜻이다. 교수 자신이 아무리 사회에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했어도 대학이 정한 목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인정받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연봉제가 교수의 목숨과도 같은 교권(academic freedom)을 위협하는 결정타다.
결과적으로 미국대학은 경쟁력 있는 경영체제로 변신하였지만 교수는 대학 ‘社員’으로 전략했다. 그리고 일반교수와 행정보직교수는 대립적인 관계로 악화되게 됐다. 자신들의 일과 앞날을 좌우 할 수 있는 권한을 잃게된 교수는 드디어 교수노조를 결성하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럼 교수노조는 연봉제를 따라 다니는 그림자 같은 존재인가? 아니다. 필자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 호에 계속하겠다. peckcho@mt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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