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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초상 위, 아련히 스쳐가는 운현궁 사람들
빛바랜 초상 위, 아련히 스쳐가는 운현궁 사람들
  • 배원정 기자
  • 승인 2007.03.02 2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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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가볼만한 전시_서울역사박물관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

흥선대원군의 초상 가운데 <금관조복본>의 모습.

흥선대원군의 사진.

 

 

 

 

 

 

 

 

 

 

 

 

 

 

 

 

19세기 후반 우리 역사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주역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물음에 답을 해줄 만한 전시회가 열려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이하 박물관)은 지난 27일부터 오는 4월 1일까지‘흥선대원군과 운현궁사람들’이란 주제로 흥선대원군과 그의 一家 모습을 담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운현궁에서 박물관에 기증한 6천5백여점에 달하는 유물 중 흥선대원군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고종을 포함한 후손들의 모습을 담아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어진의 수가 극소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어진에 버금가는 최고급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시실은 크게 흥선대원군, 운현궁 사람들 및 고종의 공간으로 구분했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서 운현궁 담을 지나면 가장 먼저 흥선대원군을 만나게 된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잘 알려져 있듯 조선 말 격변기를 풍미했던 대표적 정치가이자 예술가이다. 19세기 후반 조선 최고의 御眞화가로서 이름을 날린 李漢喆은 대원군을 깊은 쌍꺼풀에 살짝 치켜뜬 눈매, 쏘아보는 듯한 표정으로 그려내 그의 위압적이면서도 쾌활했던 성품을 잘 표현했다.

 총 6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그의 초상은 얼굴을 이한철이, 신체를 유숙이 담당했다. 금관에 그려진 금줄 5개가 정일품의 상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역사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대원군 초상 <금관조복본>의 경우, 비슷한 듯 보이면서도 족좌대에 적혀 있는 글자가 각각‘壽’자와‘囍’자로 차이점을 지닌다는 점 등은 이번 작품들을 감상하는 묘미를 더해준다. 대원군의 초상화가 흥미를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畵題를 대원군이 직접 쓰고, 초상화를 표구한 表具師의 이름도 畵師와 함께 적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어진 의궤 가운데 이 작품처럼 表題에 표구사의 이름을 명기하는 경우는 이 작품이 유일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우의 초상 부분. 일제강점기 일본 땅에서 황족의 기개를 굽히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다 비운에 죽은 인물로 민족사적 의미 뿐만 아니라, 빼어난 외모로 최근 인터넷상에서 얼짱으로 유명해졌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대원군을 이어 운현궁을 물려받은 후손인 이재면, 이준용, 이우의 초상화를 통해 조선 말기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초상화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말 이한철 초상의 특징은 얼굴의 윤곽선을 뚜렷하게 그려내고, 눈썹을 그릴 적에 밑에서 위로, 위에서 밑으로 두 번씩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김은호나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들은 윤곽선이 강조되기보다 면으로 얼굴의 형상을 처리해 마치 사진과 같은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진다. 특히 김은호는 사진을 토대로 그렸기 때문인지 조명에 비친 눈동자의 빛까지도 표현했으며, 채용신의 작품에서는 조선 말 초상화에서는 보이지 않던 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허대영 학예사는 “운현궁에서 태어나고 자란 皇室家 후손들 영정이 한자리에 모두 전시되어 우리의 근대사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번 전시에 의미를 부여했다.

도록도 눈여겨 볼 만한데, 일반적인 초상화 도록들은 전체 도판과 함께 한 장에 흉상 세부 도판을 싣는데 반해, 하나의 전체 그림 외에 최대 6개에 이르는 신체 각 부위 세부 도판을 첨가함으로써 시각적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전체 표구 상태까지 그대로 싣고, 영정을 담은 함까지 보여주는 등 꼼꼼한 편집이 돋보인다.

초상화는 ‘사실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현대적인 사진을 따라갈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 개성의 묘사라는 점에 있어서는 사진을 뛰어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이번 전시는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운현궁 주인공들의 삶의 일면을 살펴보고, 그들의 매력에 빠져 우리 근대기의 역사를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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