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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고의 석조 조각(32) 감산사 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불입상
한국최고의 석조 조각(32) 감산사 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불입상
  • 문명대 /동국대 ․ 불교조각사
  • 승인 2007.03.02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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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미에 근접한 세련된 사실美… 신라인에 가까운 얼굴 묘사 돋보여
 

편집자주 / 감산사의 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불입상은 당당한 부처님의 모습을 위엄 있게 표현한 한국의 대표적 石造 조각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호에 선정되었던 석굴암 불상과 함께 감산사의 미륵보살입상과 아미타불입상을 한국 최고의 석조 조각으로 꼽았다. 한국에서 이상적 사실주의를 표현해낸 가장 확실한 첫 예라고 불리우는 이 불상들은 몸의 표현 뿐만 아니라 화염광배 및 대좌의 섬세한 표현도 一品이다.   

감산사 미륵보살입상.

유가유식학의 사찰로 저명했던 경주 甘山寺의 금당에 봉안되었던 석조 미륵보살입상은 강당에 모셔졌던 아미타불입상과 함께 통일신라를 대표할 수 있는 사실조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광배 뒷면에 새겨진 381字나 되는 造成記에는 불상의 조성유래나 사상적 배경 그리고 특징 등이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어 이 불상의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 조성記에 의하면 미륵존상을 조성한 願主인 성덕대왕 때 집사성 侍郞을 지냈던 김지성은 감산사를 짓고 부모를 위해 미륵존상과 아미타상을 조성했으며, 삼국유사에는 이 미륵존상을 金堂의 주존, 아미타불상은 講堂의 主尊으로 봉안했다고 전하고 있다.


 미륵보살은 정교한 거신광배를 배경으로 연꽃대좌위에 몸을 살짝 비튼 채 온화한 자세로 서 있다. 광배, 대좌, 불신이 한 돌로 만들어져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보살의 머리에는 큼직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주형 寶髻의 상부와 화려한 꽃 장식이 있는 하부로 잘쑥한 부분에 의해 구분되는 五智如來冠과 유사한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윗부분에는 결가부좌한 化佛이 부조되어 있는데, 미륵의 主佛인 석가불로 보인다. 아랫부분에는 풍성한 꽃무늬가 세 줄의 띠로 연결되었고, 그 위로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호화롭고 큼직한 보관을 나타내고 있다. 기다란 귀의 귓부리에는 영락을 달았고 그 뒤로 보발이 어깨까지 치렁치렁 드리워져 있다.

보살상의 얼굴은 갸름하면서도 뺨이 통통하고 풍려한 모습인데 행실형의 눈, 길고 풍성한 코, 아담한 입과 입 끝의 보조개 등의 표현과 함께 만면한 미소로 사실적인 尊容을 나타내고 있다. 상체는 天衣자락만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들어가 팔을 감아 내리고 있어서 거의 裸形인데 어깨와 가슴, 팔과 손은 통통하면서도 부드러워 여성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손은 내려 오른팔을 감아 내린 천의자락을 살며시 잡았고 왼손은 가슴에 들어 올려 손바닥을 보이면서 손가락을 자연스레 구부려 멋을 부리고 있다. 목에서 내려진 두 줄의 영락이 큼직한 꽃무늬를 그리면서 가슴에서 장식했고 왼 팔목에서 나타난 한 가닥의 영락은 세 부분에 아름다운 화문을 나타내면서 양 무릎으로 부드럽게 흘러 U자형을 이루면서 오른손 부근의 다리 뒤로 돌아가고 있다.

하체는 얇은 裳衣 속에서 두 다리가 양감 있게 들어나고 있는데 통통한 두 발을 좌대에 딛고 자연스럽게 살짝 비튼채 서 있는 약간의 三屈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상의는 허리에서 상단을 접어 허벅지까지 내려 Ω형 주름을 나타냈고, 이를 허리띠로 졸라매었는데 허리띠를 살짝 덮기도 했다. 두 다리로 U자 주름을 부드럽게 흘러내리듯 발목까지 이르게 하여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있다. 이런 입상의 보살상은 掘佛寺의 四面 관음보살상이나 七佛庵 삼존불 협시상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감산사 아미타불입상.
특히, 금당주 미륵보살입상과 짝을 이루어 강당에 모셨던 石 아미타불상도 이와 동일한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佛身, 광배, 대좌의 3부로 구성된 아미타불상은 佛身과 대좌의 높이 비율이 3 : 1이고, 등신대의 불신에 적당한 광배로 전체적인 구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균형을 잘 이룬 구도는 형태에서도 잘 보여진다.

머리와 불신의 높이 비율이 4 : 1로 굴불사 아미타상이나 벽도산 아미타상과 함께 인체 비례에 가까운 사실적 표현인 것이다.

비록 正面觀에 엄격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강건한 풍모의 석불입상이지만 부풀고 풍만한 얼굴이면서 눈, 코, 입 같은 세부표현은 세련되게 표현해 경주박물관 사암불입상 같은 이국적인 과장이 보이지 않는 신라적 얼굴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딱 벌어진 가슴과 팽팽한 어깨, 당당하게 버티고 선 위엄 있는 자세 등으로 감각적인 사실주의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얼굴이나 신체의 묘사에서 이 작가가 추구한 理想은 자비스러우면서도 당당한 부처님의 위엄을 인간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되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의도는 성공적으로 완성됐다고 생각된다.


즉, 舟形擧身光背를 등지고 있는 이 불상의 당당함에는 어느 불교도라도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으리만치 위엄 넘친다. 비교적 두터운 옷 속에 감싸여 있어서 가슴의 두드러진 표현은 없지만 신체 각부의 탄력적인 표현과 함께 박진감 넘치는 사실적 표현은 인체를 이상적인 불신으로 승화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불상의 불의는 優塡王式으로 입고 있는데, 즉 通肩의 大衣를 전신으로 걸치고 U형의 의습선을 상체에 유려하게 주름 짓다가 다시 두 다리로 각각 내려가서 옷주름을 이루고 있다. 두 다리의 U형 옷주름과 함게 목의 옷깃이 한번 뒤집는 반전수법은 전형적인 우드야나식 착의법이라 흔히 부르고 있는 것으로 신라불상에서는 이 불상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 불의는 약간 두터우면서 액센트를 강하게 넣었기 때문에 불상 형태와 함께 무척 박진감나게 보이게 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이 불상은 통일신라의 제2기에 완성된 이상적 사실주의 조각의 가장 확실한 첫 예로써, 우리나라 조각사에서는 길이 기억될 걸작이라 하겠다. 또한 불상 광배 뒷면에 새긴 21행 391자의 불상조성기는 이 불상이 法相宗 사찰의 講堂에 모셔지던 아미타불로써 金堂主尊 미륵보살과 함께 當代 법상종의 신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임을 알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발원자인 김지성이 그의 신분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법상종의 유가사상과 도교사상에 입각해 은퇴 후 자신의 장원을 희사해 감산사와 두 불상을 조성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서 이 불상의 의의는 더 한층 고조되는 것 같다. 광배는 주형거신광배로 연잎 모양의 거대한 형태로서 얼굴 부근의 외연을 잘쑥 들어가게 해서 頭身光을 구별 짓고 있다. 두광과 신광은 각각 세 줄의 도들선으로 새겼는데 중심선에 대칭되게 세 잎의 꽃무늬를 彫飾하여 모두 12잎의 꽃무늬가 깔끔하게 나타내고 있다. 外緣을 따라 불꽃무늬가 3곡을 그리면서 유려하게 올라가서 보살상은 한층 장엄하게 꾸며주고 있다. 광배뒷면에는 “開元七年己未二月十五日.... ” 이라는 총 22행 381자의 조성기가 단정한 행서체로 새겨져 있어 이 불상의 모든 면을 알 수 있게 한다.

대좌는 상, 중, 하대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 하대는 8각대로 각 면에는 안상무늬가 단아하게 새겨져 있고, 중대는 화려한 꽃무늬를 새긴 연꽃무늬가 覆蓮으로 새겼으며, 상대는 역시 화려한 꽃무늬가 있는 단판 연꽃무늬가 仰蓮으로 부조되어 있어 정교하고도 화려한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미륵보살상은 우아하고 유려한 사실적인 조각의 아름다움을 여실하게 나타내고 있어서 풍부한 내용의 조성기록과 함께 이 보살상이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걸작이자 사실조각의 대표작임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있다.

 


 

 필자는 동국대에서 ‘석굴암 불상조각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저서로는 ‘한국의 불상조각’, ‘토함산 석굴’, ‘한국불교미술사’ 등이 있다. 현재 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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