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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요동, 진실 복원의 출발점
고조선과 요동, 진실 복원의 출발점
  • 장현근 / 용인대·동양정치사상
  • 승인 2007.03.02 09: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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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내현,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복원하는 작업이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그 작업은 사료에 따라야 한다.”(231쪽) 인간의 눈으로 지난 시대의 사료를 추적해 진실을 확인하는 작업이 역사학이다. 그렇게 확인된 진실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학문의 바탕이 되어주므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고 역사학은 기초학문이다. 윤내현 교수의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는 고구려 이전 고대사의 진실을 복원해줄 중요한 출발점이다.
 지난 30여 년간 윤 교수는 한국인의 가슴을 오랫동안 짓눌러온 불편한 문제, 즉 현재 중국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리장성 이북 지역에 펼쳐진 고대 역사에 대하여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이 책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답답함 때문에 ‘신화’라는 굴레를 씌워 우리끼리만 얘기해오던 단군조선(고조선)을 ‘역사’로 복원하여 새로 알리려는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다.

우리 문헌으로 ‘다른 생각’ 제시

 전근대 역사의 경우, 한국과 중국은 끊고 맺기가 참으로 어려운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한국의 연구자들은 언제나 내면에 불편한 갈등을 느끼고 사는데, 특히 분명한 피아구분을 원하는 근대 민족국가 등장 이후 그 갈등은 더 심해진 듯하다. 최근 이른바 ‘동북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을 한국에서 줄여 만든 말)’에서 보듯 한중간은 딱 부러지게 잣대를 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구와 강역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정치권력의 우열과 문자와 사료 누적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화 권력의 우열, 바로 이 패권적 실체들이 저 광대한 만주벌판에서 벌어진 역사의 복원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렵다고 그냥 중화민족주의 농후한 중국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말 것인가. 윤 교수는 오래 전부터 여기에 도전해 온 학자이다. 수 천 년 전부터 산처럼 쌓인 자료와 해당 지역의 실질적 지배라는 절대적 우위를 앞세운 중국학자들에 대하여 중국 사료에 대한 ‘다른 생각’과 ‘추정’, 그리고 ‘삼국유사’ 등 열악한 몇몇 우리 자료를 앞세워 삼국시대 이전 만주벌판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의 목적은 진실 복원이다. 그의 ‘고조선 연구’, ‘한국 열국사 연구’ 등과 함께 독해하면 더욱 좋지만, 잘 정리된 이 한 권의 책만으로도 우리는 드라마 ‘주몽’을 보며 가슴 답답했던 심증들에 대한 그럴듯한 물증들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유사를 독파한 뒤 그건 야사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별 의미가 없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많은 중국 사료들을 끌어다가 삼국유사에 꿰맞추는 윤 교수의 독자적 해석과 기발한 상상을 일별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민족을 중심으로 한반도와 만주를 보며, 한국과 중국의 기존 통설과 다른 얘기를 담고 있다.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국’이라는 틀을 깨고 ‘단군조선-열국시대-삼국’으로 본다. 요동도 둘이고, 조선도 둘이고, 낙랑도 둘일 수 있다는 ‘다름’에 착안하여 중국과 한국의 사료를 재해석해 이를 증명한다. 갈석산의 위치 등 중국과 북한에서 이미 밝혀진 사실들도 있으나 새로운 주장도 많다.

 요동이라는 지명이 오늘날 遼河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九州의 요원한 동쪽’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遼東志’는 말한다. 그렇다면 요동성에 대한 우리 기존의 관념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한사군이 한반도와 무관한 요서지역에 있었고,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도 요서 서부에 있었다는 주장에 한번쯤 귀를 기울여봄직도 하지 않는가. “한민족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청동기문화를 가졌고 가장 일찍 나라를 세웠다.”(19쪽) 단군과 위만의 王儉城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며, 기자가 망명한 “조선현은 난하 하류 유역 갈석산 부근에 있”다.(140쪽) “고구려국이 고구려현에서 건국되었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216쪽)고, 원래 “요서 서부 지역에 거주하던 肅愼은 연해주로 이주하여 읍루를 건국했던 것이다.”(226쪽) 등등. 이 얼마나 관심을 끄는 주장들인가.

‘중국’은 무엇이고, ‘중국인’은 누구인가

 문제는 그 관심이 역사의 복원으로 이어지고, 다시 진실의 확인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윤 교수의 ‘다른 생각’과 ‘추정’을 ‘공통의 생각’과 ‘확정’으로 이끌고 ‘그럴듯한’ 물증 말고 ‘정치한’ 증거들을 찾아내 설득력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그가 오랜 세월 얘기해왔듯 북경 이북에서 한반도 전역을 아우르는 광활한 땅이 ‘우리 한민족’ 단군조선의 땅이었다고 치자.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중국에 주눅 들지 않고 중화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심리적 작용이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진정한 역사의 복원과 진실의 확인,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현실적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의 문명발전을 이루어 가는데 무슨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윤 교수의 주장은 완결이 아니다.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고대사 문제에 대한 폭넓은 토론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비역사학도로서 필자가 제기하는 다음 몇 가지 의문 또한 그 참고가 되길 희망한다.

 첫째, ‘중국’ 개념. 만리장성의 서쪽 끝 嘉裕關은 중국 영토의 중앙에서 멀지 않다. 이 관문을 넘어가면 지금도 간혹 “당신 ‘중국’에서 왔소?”라는 말을 듣는다. 중국이란 그렇게 모호한 개념이다. 원래 문화적 개념이었던 중국 또는 中華이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워 만주족을 몰아내자던 손문에 의해 국호(중화민국)가 되었고, 민족평등을 내세운 모택동에 의해서도 국호(중화인민공화국)가 되었다. 윤 교수가 곳곳에서 얘기하는 ‘중국’은 무엇이고, ‘중국인’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지금의 중국을 마치 옛날부터의 중국으로 착각해 중국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먼저 교정시켜야 고조선의 요동을 이해시킬 수 있지 않는가.

입증 아닌 새로운 해석에 그쳐 아쉬워

 둘째, 국가 관념. “고조선의 서쪽 국경은 난하와 갈석삭이다.” “고조선의 영역은 한반도와 만주 전부였다.” 윤 교수는 이런 주장들이 혹시 현대의 국가 관념을 차용한 국경과 영토 관념은 아닌가. 선을 긋고 사람들을 오가지 못하게 한 국경의 역사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고대 국가에서 정치적 지배는 선으로 그린 지도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강역도 중요하겠지만 세금, 군대, 외교, 인사권을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고대국가의 정부형태 그리고 주민에 관한 증거를 찾는 것이 고조선을 역사로 실은 새 국사교과서에 더 합당한 내용 아닐까.
 셋째, 북방민족 개념. 중국 역사는 끝없는 분열과 통일, 그 과정에서 벌어진 주변민족의 통합과 영토의 확장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漢族과 북방민족과의 끝없는 남북대결사이기도 했다. 현재 중국 영토는 여진족(중국은 이들을 지역으로 제한시켜 만족이라 부름) 후예들이 세운 청나라의 유품이다. 만리장성 이북의 광대한 땅이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다면, 여기에 대제국을 건설했던 선비, 거란, 말갈 등 지금은 사라진 이들 민족은 무엇인가. 한민족의 곁가지인가. 檀君이 보통명사라는 윤 교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도록 그 민족들이 써왔던 單于, 大汗 등에 대한 언어학적 공통 맥락은 찾을 수 없는가.

 학자로서 윤 교수의 목적은 역사의 복원과 진실의 확인이지만, 안타깝게 이 시대와 지역에 대한 문헌사료가 우리에겐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기존의 주장들을 입증과 역증명을 통해 부수지 못하고 새로운 해석을 통해 맞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료는 복제, 해석, 재창조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그것이 진실의 복원을 앞당긴다는 점에서, ‘동북공정 논란을 둘러싼 진실게임’이라는 부제 때문에 좀 거슬리긴 하지만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가 비판과 성찰을 포함한 끝없는 학문적 논쟁을 부르고 그 결과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길 기대한다. 명나라 이전까지 중국 한족들의 역사에 ‘열전’ 몇몇으로만 다루어지던 요동지역이 ‘全遼志’와 ‘요동지’라는 큰 서물로 정리되고, 거기에 다시 학문적 논쟁을 가열시킨 최근 10년의 연구 성과를 ‘中國邊疆史志集成《東北史志》’ 총 81책의 방대한 책으로 정리해 우리에게 들이민 중국에 대해 우리는 그저 심증과 분노로만 대응할 것인가.

장현근 / 용인대·동양정치사상

필자는 中國文化大 대학원에서 ‘순자의 정치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중국사상의 뿌리’, ‘상군서: 난세의 부국강병론’ 등 10여권의 책과 40여 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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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2007-03-04 16:42:32
책을 구입하고 싶습니다.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