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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스케치] 김윤식 서울대 교수(국문학)
[퇴임스케치] 김윤식 서울대 교수(국문학)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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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바다로 날아간 흰나비

지난 11일,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대가 김윤식 서울대 교수(국문학)가 퇴임했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인간으로서 태어나 다행이었다.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예언가가 없더라도 이제는 고유한 죽음을 죽을 수 있을 것도 같다”라는 말로 강단생활을 마무리했다.


김 교수는 근대문학 연구를 학문의 수준으로 이끌어올린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펴낸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1973) 이전까지 근대문학 연구는 학문적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그의 제자이기도 한 서경석 한양대 교수는 “근대문학을 실증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문학연구의 학문적 정체성을 수립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초기에 “문학의 과학이란 신비평”이라는 자각에서 ‘파르티잔 리뷰’, ‘예일 리뷰’등의 문학잡지를 읽으며 학문세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비평의 보수성과 반동성에 회의를 품고 근대성과 근대문학의 해명으로 나아갔다. 그는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만 할 길을 하늘의 별이 지도의 몫을 하는 시대는 복되도다”라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 던진 충격을 잊지 못한다. 루카치를 통해 그는 문학연구가 “인류사의 지평위에 놓인다는 자각”을 얻었다.

문학의 바다로 날아간 흰나비


그는 학문연구자로서의 자신을 김기림의 시를 빌어 “아무도 수심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겁도없이 청무밭인가 하고 날아간 초승달의 흰나비”에 비유했다. 그는 연약한 ‘흰나비’처럼, 근대문학 연구라는 아무도 가지 않은 바다로 나아갔다.


그가 주력했던 또다른 분야는 이른바 ‘현장비평’. 당대에 산출된 문학작품에 대한 끊임없는 독서와 글쓰기는 그를 ‘쓰다라는 동사의 주어’로 불리게 했다. 그가 현장비평으로 나아간 계기는 구소련의 붕괴였다. 그는 이른바 ‘역사의 종언’ 이후의 인간형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당대의 작품읽기에 주력했다. 예전엔 학문연구의 보조수단에 불과했던 ‘작품읽기’는 이제 “길찾기 였으므로 필사적”이었다. 저녁 8시에 취침,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독특한 생활방식은 이런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성실함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펴낸 책은 모두 1백3권에 이른다.


그는 근대문학은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로 표현할 수 있지만, 현재의 문학은 ‘인간은 벌레다’로 명제화된다고 말한다. 사이버시대가 펼쳐지는 지금, 시공간에 제약될 수밖에 없는 활자문학은 “인간은 식물이다!”라는 명제로 전환되고 있다. ‘현장비평’에 대해 그는 ‘징후비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것은 “작품에서 스며나오는 모종의 징후를 또다른 징후로 포착하여 존속시켜 놓기”로, 대화체, 묘사체 등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악명’높다. 이 문체에 대해 그는 “논리를 논리로서 격파함이란 기껏해야 동일성 이론에 함몰”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정작 김교수가 지향했던 것은 연구자도 비평가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죽은 저자들의 책무덤을 지키고 있는 ‘묘지기’거나 ‘시체빌어주기’에 불과한 일이라 단언한다. 그는 “내 피와 숨결, 몸냄새를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나만의 것’의 영역개척은 불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는 ‘표현자’이기를 갈망했다. 이는 “연구 및 비평의 자립적 근거를 묻는 일”이며 논리의 그물로는 포획되지 않는 ‘소멸의 장소’를 찾는 일이다. ‘묘지기 신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위기의식은 그로 하여금, ‘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을 찾아 투르판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카트만두로 떠나게 했다. 그의 숱한 ‘기행문’은 이런 ‘탈출구 찾기’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표현자로서 “실패했다”고 술회한다. 강연 끝에 그는 종강때마다 학생들과 함께 읽었던 워즈워드의 시를 인용했다.

그가 남긴 것은 ‘고뇌’와 ‘치열함’


“한때 그토록 휘황했던 빛이 / 영영 내눈에서 사라졌을 지라도 / 들판의 빛남, 꽃의 영화로움의 한 때를 / 송두리째 되돌릴 수 없다 해도 / 우리는 슬퍼 말지니라. 그 뒤에 남아 있는 / 힘을 찾을 수 있기에.” 그는 이 시에 이런 희망섞인 주석을 달고 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성실했다면 그것이 사라져 없어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남아서 힘이 되어 시방 저녁놀 빛, 몽매함에 놓인 제게 되돌아 오고 있지 않겠는가.” 김영민 연세대 교수(국문학)는 “학문적 성공이라는 화려함 뒤에 숨은 그의 고뇌와 치열함을 후학들이 이어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현역’에서 물러난 김윤식 교수가 강단의 연구자들에게 남긴 과제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김윤식 교수는 오늘도 여전히 ‘작가와의 대화’를 하며, ‘설렘과 황홀의 순간’을 맛보면서, ‘선연한 헛것’을 찾아 ‘발견으로서의 한국 문학사’를 몸으로 쓰고 있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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