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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멜이 그려낸 근대 ... 영혼의 해방을 이끄는 ‘예술’의 힘
짐멜이 그려낸 근대 ... 영혼의 해방을 이끄는 ‘예술’의 힘
  • 하상복 목포대․정치학
  • 승인 2007.02.2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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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예술가들이 주조한 근대와 현대: 미켈란젤로·렘브란트·로댕』, G. 짐멜, 김덕영 옮김, 도서출판 길, 2007.

 사회학은 근대성(modernity) 탐구의 열정이 추동시킨 학문이다. 18-19세기 서구사회가 경험한, 전통과의 거대한 단절은 새로운 학문의 필요성을 자극했다. 질서와 진보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윤곽을 그려낸 꽁트 이래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등은 자신들의 고유한 방식대로 근대성의 문제에 천착하면서 사회학의 영역을 구축해 나간 인물들이었다.  

짐멜(Georg Simmel, 1858~1918) 역시 그들에 버금갈 만큼 근대성과 근대사회를 주시한 독일의 사회학자였다. 짐멜이 기울인 근대사회에 대한 탐구의 열정은 베버와 함께 독일 사회학을 창시한 인물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멜은 사회사상의 관점에서 베버와 동등한 또는 버금가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 카셀대학 사회학과의 김덕영 교수가 기획하고 번역해 지난달에 출간한 짐멜의 저작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총 10권 중 우선 ‘근대세계관의 역사: 칸트․괴테․니체’, ‘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 ‘예술가들이 주조한 근대와 현대: 미켈란젤로․렘브란트․로댕(도서출판 길, 2007)’ 등 3권을 출간했다. 짐멜이 발표한 논문들을 김 교수가 주제별로 분류해 묶어낸 이 책들을 통해 우리는 근대성과 근대사회를 해석하는 또 다른 축과 만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김 교수는 그 동안 ‘현대의 현상학’을 필두로 ‘짐멜이냐 베버냐?’,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와 같은 연구서와 번역서를 발간하면서 짐멜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주도하고 있는 연구자이다. 

예술철학을 통해 근대를 알고자 한 짐멜

 여기서 글쓴이는 짐멜의 저작 전체가 아니라 ‘예술가들이 주조한 근대와 현대’에 국한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짐멜의 학문세계에서 예술철학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동료학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지금 사회학에 깊이 몰두하고 있는데, 이를 빨리 끝내고 예술철학으로 넘어가고자 마음의 조바심을 치고 있습니다 … 사회학은 물론 몇 해 더 걸릴 것입니다. 나는 예술철학의 주제로 나의 남을 생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1900년 이후 짐멜의 학문적 관심이 사회학으로부터 예술철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짐멜의 예술철학에 접근하는 일은 적어도 그의 후반기 학문세계의 본령을 탐구하는 일인 것이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의 1장은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2장과 3장은 렘브란트의 회화를, 그리고 4장과 5장은 로댕의 조각을 다루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저작은 외견상 르네상스, 바로크, 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작품들에 대한 비평의 성격을 갖지만, 본질적으로 예술을 통해 근대인의 존재론적 조건과 심층심리를 읽어내는 작업인 것이다.

 근대가 사회제도적으로 정착되는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지만 정신사적 차원에서 볼 때 그것은 15-16세기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르네상스가 근대의 정신사적 원천인 이유는 바로 그 시대에 이르러 근대를 추동하는 인간개념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짐멜이 르네상스의 예술가 미켈란젤로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예술, 특히 조각 속에서 근대적 인간의 탄생을 위한 꿈틀거림을 뚜렷이 감지했기 때문이다. 근대적 인간은 기독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의해 분리된 정신과 자연,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 속에서 달성되는 것이다.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보티첼리를 비롯해 많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기독교에 의해 서로 분리된 요소들의 통일”을 시도했지만 그것은 미켈란젤로에 와서야 완벽한 예술적 형식으로 구현되었다. 미켈란젤로가 묘사하는 인간은 육체를 담지하고 있고 그 육체는 영혼의 계시물인 운동의 형식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따라서 미켈란제로의 인간은 육체와 영혼의 통일을 실현하는 존재로 드러난다.

끊임없는 운동, 그 속에 근대성 담겨 있어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인간이 근대적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에 완벽히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인간 속에는 육체와 영혼의 통일을 구현하는 매개물로서 ‘운동’이 완벽한 형태로 구축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표현하는 운동의 한계는 시간성이 배제된 고정된 운동이라는 점에 있다. 말하자면 그 운동은 특정한 순간에서 영혼의 움직임을 표출하고는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운동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짐멜에 따르면 근대인의 이상적 모습을 묘사하는 완벽한 예술적 형태는 로댕에 이르러 완성된다. 로댕의 조각에는 특정한 시간에 고착된 인간이 아니라 연속적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생성하는 인간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로댕의 조각예술의 힘인 것이다. “운동은 로댕에 이르러 전혀 새로운 지배영역과 표현수단을 획득한다. 그는 새롭게 관절을 휘고, 새롭게 표면에 독자적인 생명과 진동을 부여하며 … 그리하여 그때까지 가능했던 것보다 더 완전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체험하는 총체적 인간의 내적 생동감을 명백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175쪽). 근대인은 본질적으로 특정한 공간에 귀속되지 않으면서 여러 공간들을 끊임없이 운동하는 존재들이다. 로댕의 예술적 형식이 근대인의 이러한 존재론적 특성을 가장 완벽하게 그려내었던 것이다.

 한편, 바로크 시대 화가 렘브란트의 회화가 갖는 힘은 인간들의 실제적인 삶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 속에는 굳어버린 육체 또는 추상화된 영혼이 아니라 그 둘이 분리불가능하게 결합된 인간의 모습이 표현되고 있다.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는 주체성과 개별성으로 형상화되는 인간이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렘브란트 회화형식의 위대함이 있다. 말하자면 렘브란트는 일체의 외적 구속들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개별적 주체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근대인들의 본질적 모습을 정확히 이해했으며 그것을 직관적으로 드러내 줄 예술형식을 구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짐멜의 해석을 언급하는 것이 유용하겠다. ‘최후의 만찬’에 대한 짐멜의 이해는 매우 독창적이다. 그는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과 색깔을 드러내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향하는 근대인의 주체성을 표현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는 근대적 정신성의 예술적 표상을 위한 선구자적 열정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삶을 미학적·심리학적으로 분석

 짐멜은 예술의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면서 후자에 주목하고 있다. 이 사실은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결코 사실주의적 반영일 수는 없음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승화시킬 수 있는 예술적 양식의 존재유무다. 근대인으로서 노동자들의 삶을 조각의 형식으로 표현해 낸 뫼니에의 예술적 탁월성을 인정하면서도 로댕에 필적하는 예술적 위대함을 그에게 부여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점에 있다. 그는 영혼의 근저에서 현실을 직관하게 하는 로댕의 예술적 형식을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짐멜은 예술을 당대의 현실을 이해하는 도구로 국한시키지 않았다. 예술은 모순적이고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영혼에게 안식을 부여하고 궁극적으로 영혼의 해방을 이끄는 힘이다.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로댕의 예술적 형식을 통해 드러난 근대인의 모습, 즉 사회적인 모든 구속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주체적인 개인으로 거듭나고자 했던 욕망과, 영혼을 안착시킬 어떠한 공간도 지니지 못한 채 끊임없이 유동해야 하는 불안한 존재론적 조건은 이제 그들의 회화와 조각 속에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이라면 예술을 결코 짐멜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예술을 생산관계의 반영이거나,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상징적 힘이거나, 또는 사회적 질서와 통합을 위한 기능적 조건의 하나로 파악했을 것이다. 즉, 그들에게서 예술은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이지 결코 철학과 심리학적 분석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짐멜은 고전사회학자(classical sociologist)로 불리는 위의 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근대로 불리는 거대한 사회적 변동을 탐구하고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근대적 생산력, 정치이념과 조직, 사회구조에 대한 관심에 답하기 위해 사적유물론, 이해사회학, 실증사회학 등 거대한 이론적 체계를 구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근대가 제조한 다양한 삶의 양상들-화폐, 얼굴, 식사, 화장술, 심리-을 미학적이고 심리학적인 방식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왜 짐멜이 사회학의 본령에 들어가지 못한 채 주변부의 사회학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인지하게 된다. 짐멜의 예술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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