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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교수들의 근황: 김순겸 전 이화여대 교수
퇴임교수들의 근황: 김순겸 전 이화여대 교수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9.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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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에는 녹색명찰을 가슴에 단 사람들이 있다. ‘자원봉사’ 글자가 새겨진 녹색명찰을 가슴에 단 사람들이 하는 일은 박물관을 찾은 이들을 안내하고, 전시물에 대해 설명하고, ‘주고객’인 어린이들을 ‘친절히’ 응대하는 일이다. 사실, 탁구공처럼 여기저기 튀며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특별한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그 인내심은 때로 귀한 선물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퇴임한지 올해로 5년 째. 매주 월요일 녹색명찰을 가슴에 다는 김순겸 전 이화여대 교수(69세,정치학)는 박물관을 찾은 한 어린아이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를 꺼내며 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어린이에게 배운 봉사의 개념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그를 빤히 쳐다보던 한 아이가 “할아버지 뭐하는 사람이야?”하고 물었단다. 김교수는 “지킴이야.”라고 했고, “뭘 지켜? 도둑놈 지켜?”라고 묻는 아이의 물음에 김교수는 아차 싶어 얼른 말을 고쳤다. “도우미야.” “뭘 도와?” “너희들 화장실 가고 싶을 때 화장실 일러주고, 과자 먹다 부스러기 흘리면 줍기도 하고 그러지.” ‘돕는다’는 개념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는 김교수에게 그 아이와의 대화는 커다란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찾아온 아이들이 박물관 여기저기에서 빚어내는 귀엽고 신선한 광경을 바라보는 것이 자원봉사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즐거움이 됐다.

김교수는 자원봉사를 하게 된 것이 순전히 ‘불순한 동기’ 때문이라고 한다.

“34년을 하루같이 다닌 곳이라 관성의 법칙처럼 멈출 수가 없었지요. 퇴직하면서 ‘청하지 않는 곳은 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학교에 가고 싶은 심정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청함 받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곳을 찾으니, 박물관이 있더군요. 그러니 얼마나 동기가 불순해. 하는 일이 없으니 봉사랄 것까지도 없지,”그의 말대로 봉사랄 것 없는 쉬운 일일 수 있지만, 우연히 박물관을 찾았다가 맘씨 좋은 할아버지를 만나 누에의 일생이며, 별똥별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돌아간 아이에게 그날 하루는 평생 특별한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그 하루는 아이에게뿐 아니라 그에게도 특별한 순간이 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 그 몇 시간이 그에게는 더없이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다. “가만히 앉아서도 도울 수 있는 일이 많더라”는 그의 말처럼, ‘봉사’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아닐까. 기쁨은 지극히 작은 일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 모두는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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