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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식인집단
한국의 지식인집단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9.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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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지식인시대?…정치력 강화 의혹도
지식인의 사회참여는 과연 정책대안 마련인가. 지난 IMF 경제위기 이후 지식인의 책무를 이해하는 방식은 달라졌는가. 내년이면 돌아올 대선정국에 지식인들의 정책대안이 어떤 변수로 작용하겠는가. 의문의 연속이다. 연재 순서 ①지식인 논쟁의 지형 2 한국의 지식인 집단 ③지식담론의 생산, 문제는 없는가 ④지식인 사회의 미래

IMF의 산물, 지식인 정책집단

지식인 ‘싱크탱크’들이 속속 출범하고 있다. 출범 시기를 두고 이견이 많다. 정책대안을 생산하려는 지식인 집단들의 출발이 공교롭게 올해 초 3월과 4월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1년 반 여 남긴 현재, 이들의 행보에 대해‘오비이락’과 ‘유비무환’의 두 가지 해석도 팽팽히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출범은 모두 지난 1997년을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경제위기를 예견하지 못했다는 자책은 지식인들에게 일종의 부채의식으로 남았던 것. 2001년, 이들의 부채의식은 지식의 사회환원이라는 대의로 열매를 맺고 지식인 정책집단 조성이라는 동향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지식인 단체, 정책집단으로 부상

지난 3월과 4월,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정책연대회의’(운영위원장 박진도 충남대 교수·이하 ‘대안연대회의’), ‘미래전략연구원’(원장 윤영관 서울대 교수), ‘비전@한국’(공동대표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 외)이 각각 닻을 올렸다. 한국의 단견적인 정치현실 속에서 정책대안을 생산하는 ‘브레인’의 책무를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학연과 혈연으로 얽히고 현실정치논리로 점철된 ‘정치판’에서 정략이 아닌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지식인 정책집단들은 선명한 이념적 대립구도를 비껴나가고 있다. 지난 세기 지식인 분류법은 이들이 그려내는 지형 앞에서 무용지물인 셈이다. 그 가운데 비교적 입장표명이 분명한 대안연대회의가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공식입장을 내걸고 있을 따름이다. 대안연대회의에서 활동 중인 김균 고려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조원희 국민대 교수, 등은 전통좌파라는 분류에서 거리를 둔 지식인들. 미래전략연구원은 ‘세계화·정보화·남북관계’에 정책적 포커스를 맞추고 있을 뿐 분명한 이념적 지향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비전@한국’의 경우,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석준 교수에 따르면 “21세기 위원회, 정책기획위원회 등의 인사들과 과거 정권에서 정부자문을 해왔던 이들이 많다”는 말에서 정치성향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들 지식인에게 새로운 좌표는 오히려 ‘미래’다. 미래전략연구
원 원장을 맡고 있는 윤영관 교수는 정치권 비판에 미래담론을 도입하고 있다. 윤 교수는 “장기적 역사의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통해 정치적 독립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현재와는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것. 미래전략연구원은 언론개혁 문제에 관해서도 입장을 표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과거 “한국적인 독특한 상황에서 입장표명을 위해 만들어진 한시적 지식인 단체”와의 차별성을 윤 교수는 강조한다.

경쟁력 있는 지식생산을 위해 현실과의 거리는 필연적이라는 주장은 다른 집단에서도 확인된다. ‘비전@한국’에서 활동하는 김석준 교수는 “싱크탱크들이 정치현실과 관계없이 정책을 개발할 때 지속적일 수 있다”면서 당파적인 현실개입의 자제를 지식인의 본령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자기객관화의 시각 필요

그러나 현안을 통해서 지속가능한 정책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입장도 존재한다. 대안정책연대회의에 창립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조원희 국민대 교수(경제학)는 그런 의미에서 ‘시비걸기’와 ‘공론의 장으로 밀어내기’를 주장하고 있다. 대안연대회의는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기조를 견지하며 발빠른 정책대안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최근 대우자동차 매각사태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문제에 관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했던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지식인 정책집단이 생산하는 정책들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드물지 않은 실정이다. 김문조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비전@한국’의 정책대안이 “추상적이고 겉도는 경향이 있지만 쉽게 극복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한다”며, “연구자들의 일상적 담론이 바로 정책대안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정책적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폴리페서 신드롬’(polifessor syndrome)의 발현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적지 않은 실정이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단호하다. ‘비전@한국’의 김석준 교수는 “생산된 정책은 공공의 지식이고 이를 정부나 시민단체, 그리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윤영관 교수 역시 “전문지식인들의 연구결과물들이 다음 대선의 정책결정에 반영되는 것은 2차 적인 일”이라고 못박고 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전문가 지식인의 사회의 책임의식에 대한 변화된 견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지식인 집단의 활동이 일종의 ‘50대 기수론’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정치적 중립과 객관성을 지키는 지식인이라는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50대 초반의 학자들이 사회·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풀이한다. 현재 정책생산을 주장하는 50대는 60, 70대 기존 정치가와 진보적인 30, 40대 사이에서 제자리 찾기를 하는 중이라는 것.

“결국 힘의 논리에 편승해서 지식을 가공해주는 역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는 눈과 반성적 지성”이 필요하다는 조원희 교수의 지적은 정당하다. 지식인 정책집단이 새로운 지식인집단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는 열쇠는 여기에 있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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