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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편식 도를 넘었다
학문편식 도를 넘었다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1.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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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훈 의원, 학부제 부작용 진단
학부제 시행이후 학생들의 전공선택에서 경영학, 영문학, 정보통신공학 등 소위 ‘인기학문’분야로 몰리는 ‘학문편식’이 심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인문학 등 비인기 학문의 존립기반이 위협받고 있으며, 인기 학문분야도 몰려드는 학생들로 인해 교육의 질 저하마저 우려된다. <관련기사 3면>설훈 교육위 국회의원(민주당)이 전국 74개 대학의 최근 3년간 학부전공 배정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일부대학에서 독문학, 철학, 한문학 등 인문학 등 기초학문분야의 18개 전공에 신청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상명대 정보과학전공, 명지대 북한학과, 호서대 대중문화학과 철학, 국민대 환경공학전공이, 2000년도에도 명지대 북한학과, 대전대 철학과 등 7개학과, 1999년에도 고려대 독어독문학전공 등 5개 전공에는 단 한명의 전공신청자도 없었다.

반면, 기초학문 등 취업하기 어려운 학과를 기피한 학생들은 모두 영문, 경영 등 이른바 인기 학문분야로 몰렸다. 1999년 성균관대에서는 산업심리학 전공에 1명이 신청한데 반해 경영학 전공에는 2백70명이, 고려대 재료금속공학부에는 9명이 신청한데 반해 전기전자전파공학부에는 3백37명이, 2001년 동국대 화학공학 전공에는 29명이 신청한데 반해 전자공학 전공에는 4백50명이 몰려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1차 전공인 ‘원전공’을 제외하고 복수전공에서 모집단위나 계열에 상관없이 희망전공을 모두 수용하고 있는 서강대에서는 전공을 신청한 2천6백48명 가운데 경영학(6백24명), 신문방송학(2백56명), 영어영문학(2백39명)을 선택한 학생들이 전체의 42.3%에 이르렀다. 반면 철학, 종교학, 독어독문학, 불어불문학의 전공자를 모두 합쳐도 99명으로 영어영문학 전공자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처럼 학생들이 인기전공에 몰리는 현상이 심화되자 대학들은 전공정원을 제한해 비인기학과로 강제 배정하는 등 임기응변으로 대응을 하고 있어 학부제의 부작용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강제 배정된 학생들이 ‘전공선택권 보장’을 위해 농성을 벌이거나 전공재수, 휴학, 심지어 자퇴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결국 학생의 ‘전공선택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학부제가 제도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사전준비마저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 된 셈이다. 최성만 이화여대 교수(독어독문학)는 “전공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만 가지고 졸업 후 취업가능성만을 고려한 채 선택하는 현재의 전공신청 경향은 인문학의 위기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한편, 학부제로 인해 업무상 하중과 복잡성, 학생들의 전공배정에 어려움이 생기자 관련 업무를 학부에 맡기고 전공선택결과만 취합하는 대학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훈의원측은 “학부제로 인한 업무상의 하중은 학생들과 전공담당교수들이 고스란히 떠 안고 있다”며, “학부제의 철저한 관리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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