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그때 대학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집회와 시위, 그리고 수업 거부로 학교는 개점 휴업,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당시 학생들의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태도가 그리워진다. 그때는 ‘문제학생’일수록 사회적 문제의식이 투철하고, 정규수업을 등한시할수록 독서량이 높은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지하서클에서 무슨 책을 읽었는지 ‘민중해방’과 ‘민족해방’, ‘전략’과 ‘전술’의 차이를 논하며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고, 가끔은 정파 차이로 생긴 논쟁으로 강의실을 ‘사상투쟁’의 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학생운동이 드높던 그 시절, 교수에게 부과된 난감한 과제의 하나가 학생들을 ‘지도’하라는 당국의 요구였다. 운동권 학생을 ‘선도’하라는 것이었지만 이미 자기 확신이 선 젊은이를 어떻게 설득한단 말인가. 가끔 술자리를 함께 하거나 혹여 경찰에 연행이라도 되면 면회나 가는 것이 고작이었을 뿐이다.
새학기가 시작되어 학생들을 다시 만난다. 이맘때면 늘 오랜만에 보는 학생들과의 관계설정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최근에 부쩍 그렇다. 사상적 정치적 확신, 주장, 투쟁이 사라진 대학은 이제 전혀 다른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학생들은 더 이상 나에게 이론적인, 정치적인 딴지를 걸지 않는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연예인 스타의 소식을 아는 일이 더 중요해서일까.
이런 학생들을 만날 때 가장 크게 신경이 쓰이는 것은 내 강의가 과연 관심을 끌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요즘은 어떤 과목이든 재미가 없으면 외면 받기 일쑤이다. 대학 구조조정 추진과 함께 수강생 수가 적은 과목은 가차없이 폐강 조치되는 마당에 학생들의 무관심은 적잖이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강의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연예인처럼 연기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교수신문’이 얼마 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학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되는 책이 판타지소설 종류라고 한다. 1980년대 나에게 당돌한 질문을 퍼부은 그 학생이 자주 읽었을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강의는 이제 판타지 소설과 경쟁을 해야 할 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