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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후기 지식인, 일본과 만나다』
[서평] 『조선후기 지식인, 일본과 만나다』
  • 김태준 동국대 명예교수
  • 승인 2006.12.0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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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地理 효과 돋보여 … 번역투 문장 흠결

>>>서평_ 『조선후기 지식인, 일본과 만나다』 원중거 지음 | 김경숙 옮김 | 소명출판 | 624쪽 | 2006

‘조선후기 지식인, 일본과 만나다’라는 책은 1763년 일본에 통신사절을 수행했던 선비 원중거의 ‘승사록’을 번역한 책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한ㆍ일 사행문학이 주로 正副使 등 三使 중심의 ‘海行摠裁’에 한정되었다면, 이 책으로 당대의 한일 교류가 서얼 중심의 제술관과 서기들로 옮겨간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력이 한미했던 선비 원중거는 진보적 북학파 지식인 사회에서 존경받은 당대의 지식인으로, 이 해행일기를 통하여 투철한 실학정신과 한일 외교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일본을 오간 12번의 통신사절 가운데 11번째가 되는 癸未使行은 江戶까지 오간 마지막 통신사행이며, 정사 조엄을 비롯하여 제술관과 4명의 서기와 군관과 역관에 이르는 9책의 여행기를 쏟아냈다. 그 가운데서도 서기 원중거는 사행일기 ‘승사록’과 함께 ‘화국지’라는 일본 관련 종합저술 등 2책을 이때 남겼고, 같은 서기로 김인겸이 한글 기행가사 ‘일동장유가’를 쓴 것도 이때의 일이다. 특히 원중거의 저작은 일본 사람들과 문학적 문화적 교류를 맡은 서기의 임무에 충실히 하는 한편으로, 선입견을 버린 일본보고와 객관적 평가를 남겨 준 점에서 동시대의 북학파의 연행문학에 비길 만한 노작이다.

이것은 3대 연행록으로 평가된 홍대용의 ‘을병연행록’보다 한두 해 앞서고 박지원의 ‘열하일기’보다 14~15년 앞서 쓴 사행일기이면서, 홍대용의 역외춘추의 역사인식과 박지원의 문화적 성취를 선편했다고 할 만하다. 그는 程朱를 근본으로 일본 학술의 수준을 가늠하여 조래학의 독선을 비판하는 동시에, 일본의 지정학적 장점을 평가했다. 전대의 통신사행이 한시를 唱和하여 한문학의 우위를 자랑삼던 허식을 청산하고, 조선의 처지에서 통신사행의 다섯 가지 이로움과 세 가지 큰 폐단을 과감히 지적한 데서도 그의 균형감각을 가늠할 수 있다.

번역에 대해서 말하자면, 옮긴이(김경숙 박사)는 ‘조선 후기 서얼문학연구’라는 방대한 저서를 낸 통신사 문학의 전문가로, 이 책이 걸 맞는 번역자를 만났다. 그리하여 18세기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속에서 신흥하는 일본의 부흥과 한ㆍ일 관계의 장래를 꿰뚫어 보았던 지은이의 실학적 관점을 잘 살린 장점이 돋보인다. 게다가 일기를 따라 통신사의 여행길을 추체험한 옮긴이의 경험과 직접 찍은 사진자료의 해설에서 문학지리의 효과가 돋보인다. 더구나 이 책과 함께 원중거의 다른 저서로 ‘화국지’(박재금 옮김)와, 같은 계미사행의 제술관이었던 남옥의 ‘일관기’(김보경 옮김)ㆍ서기 성대중의 ‘일본록’(홍학희 옮김)의 번역이 동시에 기획 출간된 일은 기념할 만한 일이다.

이 책들 모두에 언급할 겨를이 없지만, 이로써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일본 이해가 앞으로의 한ㆍ일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리라 기대를 갖게 한다. ‘나고야[名古屋,名護屋]’나 ‘미쓰게[見付]’ 등의 지명 사용법 혼란이 없지 않고, 번역투의 문장으로 고전작품의 맛을 손상하는 문제점은 우리 번역문학의 공통의 숙제임을 강조해 두고 싶다.

이런 고전 번역작업은 정부의 학술진흥정책에 힘입은 바 크지만, 이 번역의 감수자인 이혜순 교수와 이화학풍을 함께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한문학사와 한국여성문학연구를 선편해 온 이혜순 교수는 일찍이 ‘조선통신사의 문학’(1996,이화여대 출판부) 이란 호한한 연구로 사행문학 연구의 길을 열었고, 제자들과 함께 3년이 넘는 강독모임을 이끌어온 학풍이 이런 번역 시리즈로 학계에 이바지한 점을 함께 평가할 만하다.

 

김태준 / 동국대 명예교수·국문학


필자는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유교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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