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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 비무장지대 개발, 이렇게 본다
환경 : 비무장지대 개발, 이렇게 본다
  • 교수신문
  • 승인 200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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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9 15:03:58

강상준 / 충북대·과학교육학부

분단 55년만의 남북정상 회담과 역사적인 6·15 선언은 세기적 뉴스였고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접경지역의 지자체에서는 이미 통일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냉전시대의 이미지를 벗는 새로운 통일 관광지를 만든다느니 공단과 골프장, 심지어 경마장 등 그동안 꿈도 꾸지 못했던 개발사업이 계획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무장지대와 그 인접지인 민통선지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역사적 분단의 현장이면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자연 생태계의 보고인 곳이다.
한강,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교동도, 석모도 일대의 간석지에는 국제 보호새인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저어새 등 희귀조류의 번식지이며, 지난해 홍수에 떠내려온 황소를 구출하는 작전이 벌어졌던 유도에는 해오라기와 백로의 대단위 번식지가 있어 국제적인 학술탐사의 대상지로 꼽히고 있다. 또 지평선이 하늘과 맞닿은 파주 평야지대는 습지가 조성돼 있어 갖가지 동식물이 서식하는 그야말로 ‘생물 천국’이다.
철의 삼각지대로 널리 알려진 철원평야는 두루미, 흑두루미, 재두루미, 독수리 등의 월동지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다는 자연사의 비밀을 간직한 고층습원이 용틀림의 형태를 하고 숨 죽인 채 누워 있다.
향로봉과 건봉산 일대는 금강산과 설악산을 잇는 한반도 생태계의 척추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서로 분포세력을 넓히다 이곳에서 만나 평화로이 공존하는 곳으로 보기 드문 식물다양성을 보이는 곳이다. 그곳에는 한국특산종인 금강초롱이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고 세계적 희귀종으로 알려진 고려집게벌레, 멸종위기의 산양, 사향노루, 곰, 하늘다람쥐 등이 살아가고 있어 생태 특구라 할만하다.

세계 생태학계의 관심 집중
그것 뿐이랴. 열목어와 산천어 등 한국 특산 냉수어종이 유일하게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원시성이 뛰어난 이 지역을 흐르는 물이 두타연 같은 차가운 수온을 가진 계곡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비무장 지대와 그 인접지역 어느 곳 하나 생태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세계의 눈이 이곳 비무장지대에 집중되고 있는지는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는 60년대 말부터 이곳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영국 왕실협회에서도 최근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묶였던 그린벨트가 풀리어 마구잡이 개발이 예상되고 있는 마당에 50여년간 금단의 땅이었던 비무장지대마저 개발이 된다면 ‘금수강산’이란 말은 그야말로 허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 시기에 가장 바람직한 것은 비무장지대와 그 인접지역을 지금처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만약 개발이 필요하다면 비무장지대의 개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낸 뒤에 시작해야 한다. 국토는 공공재로서 국민모두에게 소중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개발에 대한 원칙과 철학이 있어야 하고, 지자체는 몇푼의 수익금과 개발이익을 위해 개발허가를 남발해서는 안된다. 이 지역은 登陟覽遠이란 말처럼 후대에 물려줄 자연유산이기 때문에 장기적 안목으로 개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비무장지대는 핵심지역이며 인접지역은 완충지역이라는 생태학적 판단에 기초해 개발돼야 한다. 유네스코에서는 전 세계 283개 지역을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했고 1982년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설악산이 지정됐다가 불행하게도 1996년 해제돼 버리는 수모를 겪은바 있다. 비무장 지대를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 생태계 보전 선진국의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접경지대의 개발은 어떻게 하면 환경친화적이며 생태계의 단절을 최소화하며 개발하느냐가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비무장지대의 개발은 비무장지대 전체의 디자인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자체마다 수익성과 개발이익이 높은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전체적인 시각은 반드시 필요하다. 넓은 지대에 있는 농경이 가능한 평야는 4천7백만 인구와 굶주리는 2천5백만 북한 주민의 미래의 식량원이 될 지역이고, 산지와 구릉지 등 다른 지역이 비록 경제성없는 잡목으로 형성된 지역 같이 보여도 종 다양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통일이 된다면 비무장지대는 베를린 장벽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세계적인 역사 관광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관광지로는 판문점이나 통일전망대, 철조망이 쳐진 일부 지역만으로도 충분하다. 남북 정상회담 성공의 들뜬 분위기를 이제는 차분히 가라 앉히고 조용히 미래를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영원히 씻지 못할 개발의 죄를 저지르지 말고 전 국민 모두 비무장지대 생태계의 보전을 결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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